2020년 12월 조선일보 게재
[취재/글: 이준동]
동진쎄미켐(회장 이부섭·이하 동진)은 반도체·디스플레이용 재료, 대체에너지용 재료와 발포제 제조회사로 지난 1967년 설립되었다. 동진은 PVC와 고무 발포제를 국내 최초로 개발, 국산화에 성공하며 발포제 부문에서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에는 반도체 불모지였던 국내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재료 산업에 뛰어들어 ‘반도체용 감광액’을 미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자체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8년 동안 전전한 임대공장 접고 ‘첫 공장’ 준공
동진의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부섭 회장은 당시 집에 화학 반응기와 실험실을 만들고 폴리스타일렌 제조사 ‘동진화학 공업사’를 창업했다. 폴리스타일렌 사업은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정부의 관세 정책이 바뀌어 실패로 돌아갔다. 원료인 ‘스타이렌포노머’의 가격이 더 높아지면서 폴리스타일렌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는 ‘발포제’라는 새로운 소재에 눈길을 돌렸다. 이 회장은 1968년 국내 최초로 발포제 국산화에 성공했고, 해외 수출의 길을 열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1973년 또 한 번의 위기가 그를 찾아왔다. 길동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이 회장은 당시 재산피해액 전액과 사고 기간 모든 손해를 보상받는 보험에 가입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후, 1975년 9월 동진의 첫 공장을 준공했다. 8년간 임대 공장을 전전하다 자력으로 세운 첫 번째 공장이었다.
◇자신만의 전략으로 부도난 ‘동진’을 다시 일으키다
승승장구를 이어가던 1980년, 부산항 선적품에 화재가 발생했고, 발화점이 동진의 발포제로 지목되면서 모든 발포제의 선적·하역 중지 조처가 내려졌다. 수출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던 동진은 엄청난 경영 압박에 시달렸다. 융통어음을 거래하던 거래처, ‘대동화학’이 부도가 나며, 결국 1980년 12월 5일 동진은 최종 부도 처리되었다. 대동화학의 부도는 1979년 발생한 2차 오일쇼크 때문이었다. 당시 대동화학은 동진의 가장 큰 거래처였다. 하지만 오일쇼크의 파동으로 한순간에 무너진 것이다.
부도 처리가 진행되면서 이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말끔하게 자신을 단장하는 일이었다. 언제 회사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채권자들과의 만남을 위해서다.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이 채권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마지막 힘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전략은 적중했다. 채권자들은 이 회장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신뢰를 가지고 동진의 법정관리에 동의했다.
◇6개월 만에 ‘흑자 전환’하며 정상궤도 되찾아
법정관리에 들어간 동진을 뒤로하고 이 회장은 당시 동진의 발포제 경쟁사였던 금양과 ‘적과의 동침’을 시작한다. 동진을 살리기 위한 준비였다. 이 회장은 3년 만에 금양과의 동업을 청산하고 동진을 일으켜 세웠다. 동진은 불과 6개월 만에 흑자 전환되며 정상궤도를 되찾게 된다. 금양은 다시 경쟁사로 돌아섰다. 금양은 해외 거래처에 동진의 부도 소식을 전했고, 동진의 거래처를 그들의 거래처로 확보해 나가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홀로 세계 일주 여정에 나서게 된다. 2개월 동안 고된 일정을 소화해 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경쟁사에서 흩트려 놓은 일들을 자신의 손으로 올바르게 잡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해외 거래처를 일일이 방문한 이 회장의 노력으로 동진의 해외 네트워크는 다시 정상화될 수 있었고, 전 세계 23개의 공장과 법인체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동진, 반도체용 재료의 국산화 시대 열다
발포제 사업이 완전한 안전 궤도에 오르고 이 회장은 새로운 사업 분야에 도전했다. 바로 ‘반도체’다. 이 회장은 반도체의 핵심 소재인 PR(감광성 수지)를 전량 수입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R(감광성 수지)는 이 회장이 서울대학교 대학원 시절 논문을 썼던 분야였다. 이 회장은 1987년 PR 연구 시설을 갖추고 7년 만인 1994년, 마침내 4메가 D램용 PR을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데 성공한다. ‘신기술로 세계를 제패하자’라는 그의 꿈이 반도체용 재료의 국산화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동진은 국내 유일의 반도체 PR 기업으로 명성을 얻게 되면서 삼성전관(현 삼성 SDI)에서 디스플레이용 PR 공급에 성공하며 디스플레이 재료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성장했다.
오는 2021년, 동진은 창립 54주년을 맞이한다. 54년이라는 세월을 활자로 담기에는 많은 고비와 위기, 실패와 좌절이 있었다고 이 회장은 회고한다. 하지만 위기에서 항상 새로운 길을 보게 되었고, 그 길 속에서 성공이 보였다. 좌절의 순간은 이 회장을 거침없이 진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회장은 “어쩌면 지금의 ‘코로나’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우리는 이번 위기를 겪으며 더 강인해질 것이며, 모두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이겨내고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한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약력]
1937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출생
1956 경기고 졸업
1960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학사
1962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 석사
1967 동진쎄미켐 설립
1998 제31회 과학의 날 대통령상 기술상 수상
1999 제3회 한국공학기술상 수상
2002 한국공업화학회 회장
2006 산업자원부 ‘금탑산업훈장’ 수훈
2009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
2012 한국벤처창업대전 대통령 표창
2014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회장
2019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