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전 경영

60대 제조업 사장님 승계의 골든타임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늦는다 : 50년 기업을 지키는 마지막 전략

by 김용진

1. 지금, 왜 ‘승계’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한국 제조업의 시계는 이미 조용히 ‘승계 대전환기’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중소 제조업 CEO 평균 연령 55.4세, 60세 이상 비중 36.8%. 숫자만 놓고 보면 그저 통계 같지만, 이 수치는 향후 5~10년 안에 우리 주변 수많은 공장과 회사를 이끌어 온 1세대 경영자들이 한꺼번에 은퇴 국면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동안 약 30만 개 중소기업이 승계 국면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준비된 회사라면 이 시기를 ‘2세·3세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회사는 일자리와 기술이 한 번에 사라지는 ‘승계 쇼크’의 한복판에 설 수도 있다. 승계가 더 이상 “우리 집안 문제”를 넘어서, 산업 생태계와 지역경제,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이슈로 다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제조업의 Succession Plan(승계 계획)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소유권(지분)을 누구에게 넘길지, 경영은 누가 맡을지, 그 과정에서 기술·고객·조직은 어떻게 이어갈지까지 한꺼번에 설계해야 하는 종합 경영 전략이다. 상속이나 증여 같은 법·세무 이슈를 넘어서, “누가 이 회사를 이끌 것인가, 어떤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결국 승계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한 번의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라는 유기체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인계할 것인가”에 대한 긴 호흡의 경영 스토리를 기획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장은 돌아가고 매출은 찍히지만, 시간을 조금만 멀리 당겨 보면 결코 미룰 수 없는 의제가 승계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2. 성공과 실패, 승계가 남긴 두 개의 얼굴


승계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먼저 재벌가 뉴스나 세금 문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렌즈를 조금만 더 넓혀 보면, 승계는 아주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다. 어떤 기업은 세대를 거쳐 더 크게 도약했고, 어떤 기업은 준비되지 않은 승계 한 번으로 수십 년 쌓아온 가치를 잃었다.


현대자동차, 삼성, LG 같은 대기업의 사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현대차는 1·2·3세로 이어지는 긴 호흡의 계획적 승계를 통해 비교적 큰 혼란 없이 3세 경영체제를 안착시켰다. 토요타는 창업가문의 상징성과 전문경영인의 실행력을 적절히 조합해, 가족은 비전과 브랜드를 지키고 전문경영인은 변화와 혁신을 밀어붙이는 투 톱 구조를 만들어냈다. LG는 장자 승계 원칙과 투명한 지배구조를 바탕으로, 큰 소음 없이 부자·조카 간 승계를 이어온 케이스로 평가받는다.


중견·중소 제조업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는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삼진어묵은 3세 경영자가 과감하게 제품·브랜드를 재해석해 ‘전통 분식재료’를 ‘베이커리형 간식’으로 재포지셔닝하면서, 매출과 고용을 10배 이상 키워냈다. 쿠쿠전자는 아버지는 R&D와 품질에, 아들은 판매·마케팅과 유통에 집중해 서로의 강점을 극대화하며 자연스럽게 승계를 마무리했다. 승계가 곧 혁신의 계기가 된 전형적인 사례이다.


반대로 쓰리세븐(777)과 대한전선의 이야기는 승계가 왜 “계획 없는 즉흥”을 허용하지 않는지 잘 보여준다. 세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임시방편식 증여를 하다가 상속세 폭탄을 맞고 회사를 떠난 777,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상속세 재원 부재로 경영권을 포기해야 했던 대한전선. 두 회사 모두 기술과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승계 설계 실패”라는 하나의 이유로 가업을 잃었다.


여기에 롯데 형제의 난, 남양유업 사례가 보여주듯, 가족 갈등과 후계자 자질 부족은 단순한 ‘집안 문제’를 넘어, 브랜드와 기업가치를 한꺼번에 훼손하는 위험 요인이 된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메시지는 명확하다.
– 준비된 승계는 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디딤돌이 되고
– 준비되지 않은 승계는 기업 자체를 통째로 흔드는 지뢰가 된다


승계를 “언젠가 자연스럽게 되겠지”라고 방치할 것인가, “지금부터 설계해야 할 프로젝트”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결국 CEO와 오너가 내려야 할 선택이다.


3. 중소·중견 vs 대기업, 그리고 ‘미래 인력 구조’가 던지는 질문


승계 전략을 이야기할 때 기업 규모를 빼놓을 수는 없다. 같은 승계라도 중소·중견기업과 대기업이 맞닥뜨리는 현실은 전혀 다르다.


중소·중견 제조업의 경우 지분은 대부분 가족에게 집중되어 있고, 회사 운영도 창업주 개인 역량과 네트워크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가 많다. 후계자 후보는 대부분 자녀 몇 명이 전부인 경우가 많고, 이들이 승계를 원치 않으면 선택지는 매각이거나 폐업이다. 상속세 규모는 대기업만큼 크지 않더라도, 회사 재무구조와 현금 흐름을 고려하면 ‘몇십억’도 감당하기 어려운 벽이 된다. 그래서 가업상속공제, 가업승계 증여세 특례 같은 제도가 있음에도, 까다로운 요건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제 현장 활용률은 매우 낮다.


대기업은 다른 어려움이 있다. 상속세 규모가 수조 원에 이르기도 하고, 언론과 여론, 국회, 규제기관의 감시가 집중된다. 승계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편법 논란이 불거지면, 그 자체가 그룹 리스크가 된다. 그래서 지배구조 개편, 지주회사 전환, 합병·분할 같은 복잡한 ‘승계 공학’이 동시에 돌아간다. 한편으로는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고 ESG·투명경영을 강조하며 “사회적 명분”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규모에 상관없이, 앞으로 승계 전략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요인은 ‘사람의 구조’이다.
–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가업을 이을 자녀가 애초에 없거나
– 있어도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시대
– 동시에 공장 안의 인력 구성은 디지털·소프트웨어·데이터·R&D 인재 비중이 점점 커지는 시대


이 조합은 승계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제 승계의 키워드는 “가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이 회사를 이끌 다음 세대 리더와 핵심인재들을 어떻게 찾고,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가 된다.


이 지점에서 제3자 승계(M&A), 전문경영인 승계, 서치 펀드 기반의 인수 후 경영(ETA·Search Fund) 같은 모델들이 점차 현실적인 옵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처럼 지방은행·공공기관·전문 운용사가 “후계자가 없는 건강한 회사”와 “경영자로 나서고 싶은 젊은 인재”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사례는 한국이 참고할 만한 모델이다.


결국 승계를 “가족의 도리”만으로 설명하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는
– 가족 승계
– 전문경영인 승계
– 제3자 승계(M&A)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고, 기업 상황에 따라 혼합·조합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피를 나눴느냐”가 아니라 “누가 이 회사를 더 잘 이끌 수 있느냐”이다.


4. 승계는 필연, 그렇다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승계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기업이라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언제부터, 무엇을, 어떤 순서로 준비할 것인가?”


보고서의 내용을 한 줄로 줄이면, 승계 로드맵은 대략 이런 흐름을 따른다.


1단계: D-5~10년, 진단과 큰 그림


회사와 경영자의 나이, 후계자 후보의 유무, 재무 상태, 사업 단계 등을 차분히 진단하는 시기이다. 이때 해야 할 일은 딱 두 가지이다.
– 우리 회사는 승계 시점을 언제로 잡을 것인가
– 가족 승계, 전문경영인, 제3자 승계 중 어떤 축으로 갈 것인가

가족끼리, 이사회 안에서, 그리고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와 함께 이 두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때 후계자 선정 기준(리더십, 전문성, 가치관, 책임감 등)을 명문화해 두면 이후의 많은 갈등을 줄일 수 있다.


2단계: D-5년~D-1년, 후계자 육성과 구조 정비


방향이 정해졌다면, 이제 시간과 자원을 후계자와 회사 구조에 집중해야 한다. 가족 후계자라면 회사 안팎의 여러 현장을 경험하게 하고, 일부러 어려운 부서·해외법인·신사업 프로젝트에 참여시켜 “실전에서 인정받는 리더”로 만들어야 한다. 전문경영인을 후계자로 삼는다면, 핵심 사업을 맡겨 성과를 내보게 하고 조직의 신뢰를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재무·지분·법률 구조를 손봐야 한다. 애매하게 섞여 있던 가족 자금과 회사 자금을 분리하고, 불필요한 계열·자산 구조를 정리한다. 상속·증여 전략을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상속세 재원 마련 계획을 하나씩 현실화한다. 이 시기에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맞출지, 아니면 다른 경로를 택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3단계: D-Day, 경영권 이양과 선언


주주총회·이사회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대표이사를 교체하고, 대내외 이해관계자에게 ‘계획된 승계’임을 분명히 알리는 날이다. 임직원 타운홀, 고객·파트너사 서한, 언론 발표를 통해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리더십 체제로 갈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이 날은 단순한 직함 교체가 아니라, 회사의 새로운 서막을 여는 의식이다.


4단계: D-Day 이후, 안착과 Next Succession

승계는 ‘이양’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후 1~2년은 새 리더십이 조직에 뿌리내리는 시간이다. 전임자는 명예회장·고문 등으로 한 발 뒤에서 지원하되, 전면에 나서는 순간을 줄여야 한다. 새 리더십에 대한 내부·외부 신뢰를 쌓기 위해, 성과 관리와 코칭 체계를 병행하고 핵심인재 유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HR 차원에서 세심하게 관리한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새로운 경영자는 자신의 후계에 대해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Succession Plan은 한 번 쓰고 마는 문서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업데이트되는 ‘살아 있는 경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결국 제조업의 Succession Plan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 승계는 언젠가 반드시 도착하는 ‘경영의 필연 이벤트’이고
– 그 필연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기업은 도약하거나, 멈추거나, 사라진다

승계를 ‘불편한 미래’로 밀어두기보다, ‘지금 시작해야 할 전략 프로젝트’로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림이 달라진다. 공장의 소음, 생산 현장의 냄새, 수십 년 쌓아온 기술과 관계, 함께 일해온 직원들의 삶이 한 장의 승계 설계도 위에 놓이게 된다.


그 설계도를 언제, 얼마나 치밀하게 그려 두느냐.
100년 기업의 문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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