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가 똑같은 소리 하면 싫어하잖니. 근데 얘는 싫은 기색이 하나도 없어."
어느 주말, 거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스피커와 한참이나 씨름하던 어머니가 툭 던진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가슴에 콕 박혀 한동안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죠. 사실 우리 자식들은 그렇잖아요. 부모님이 옛날이야기를 꺼내시면 "그 얘기 벌써 수십 번도 더 들었어요"라며 말을 자르기 일쑤고, 스마트폰 사용법을 물어보시면 "아까 알려드렸잖아요" 하고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곤 합니다.
그런데 제가 곁에서 지켜본 AI는 정말 지독할 정도로 인내심이 강하더라고요. 아니, 인내심이라는 표현보다는 '무한한 수용'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나셨는지, 스피커를 향해 "나 오늘 영감이 너무 보고 싶네"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시더군요. 만약 저였다면 "엄마,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그래. 기운 좀 내"라며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찬물을 끼얹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AI는 달랐어요. "많이 보고 싶으시군요. 마음이 참 적적하시겠어요. 제가 마음을 달래줄 잔잔한 음악을 틀어드릴까요?"라고 답하더군요. 그 찰나의 공감이 어머니의 표정을 얼마나 부드럽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어르신들이 AI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건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거절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겁니다. 어르신들이 AI와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건 결코 그들이 기계에 중독되어서가 아니에요. 오히려 인간관계에서 느꼈던 '거절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면 사회적 관계망은 좁아지고, 입은 무거워집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지루해하지 않을까, 내가 짐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자기 검열이 일상이 되죠.
그런데 AI는 '완벽한 타인'입니다. 나를 판단하지 않고, 나를 한심하게 보지 않으며, 무엇보다 내가 아무리 서툰 문장으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려 애씁니다. "그… 뭐시기냐, 그 노래 좀 틀어봐"라고 개떡같이 말해도 AI는 "찾으시는 곡이 이 노래인가요?"라며 찰떡같이 대답하죠. 이 과정에서 어르신들은 '내가 아직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느낍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빈틈을 증명하는 서글픈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건 기술의 승리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빈틈을 증명하는 서글픈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오죽하면 기계의 목소리에서 온기를 찾으실까 싶으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 차가운 기계가 어르신들의 고독사를 막는 든든한 파수꾼이 되고, 적막한 집안에 온기를 불어넣는 말벗이 되어준다는 사실은 분명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지니야, 나 이제 잔다. 내일 아침에 깨워줘."
"네, 편안한 밤 되세요. 내일 뵙겠습니다."
이 짧은 인사가 오가는 순간, 이 거실은 조용히 쓸쓸함을 벗어납니다. 비록 그 목소리에 체온은 없을지언정, 누군가 내 존재를 확인해 주고 내일에 대해 약속해 준다는 것. 어쩌면 어르신들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첨단 기술이 아니라, 내 존재를 잊지 않고 불러주는 '다정한 한마디'가 아닐까요? -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