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오늘도 창밖은 소란스럽고, 내 마음은 그보다 더 어지러운 하루였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우리는 정말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감사하며 사는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하는 생각 말이죠.
삶이 바닥을 치고 있을 때 "감사하라"는 말처럼 공허한 소리는 없습니다. 당장 내일이 두렵고, 등 뒤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데 어떻게 감사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수 있겠어요. 그건 어쩌면 모든 걸 가진 사람들의 여유로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중에 형편이 좀 나아지면", "이 고비만 넘기면" 그때는 나도 근사하게 감사하며 살겠노라 다짐하며, 오늘의 감사를 자꾸만 뒤로 미뤄둡니다.
하지만 제가 오래전 곁에서 지켜보았던 한 사람의 뒷모습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전 글 (성경이 클라우드라고요?)에서 언급했던 그는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대표였습니다. 매일이 성장이었고, 세상의 박수가 끊이지 않았죠. 하지만 비즈니스 시장의 계절은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한두 번의 뼈아픈 실책은 도미노처럼 모든 것을 무너뜨렸고, 결국 남은 건 굳게 닫힌 사무실 문과 감당하기 버거운 채무뿐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마치 불이 꺼진 방에 홀로 앉아 있는 사람 같았습니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다"던 그의 고백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감사할 조건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던 그 상황에서, 그는 기이하게도 '감사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답하더군요.
"믿어서 쓰는 게 아니에요. 이제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쓰는 겁니다."
그가 적어 내려간 문장들은 참으로 사소했습니다. '오늘 커피가 생각보다 따뜻했다', '편의점 직원이 인사를 건네주었다', '창가에 비친 노을이 예뻤다'. 남들이 보기엔 민망할 정도로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었죠.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상황은 단 1퍼센트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그 작은 문장들이 모여 그의 시선을 조금씩 옮겨놓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을 향한 원망의 화살을 거두고, 아주 작더라도 내가 '해석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을 찾아내기 시작한 거죠.
우리는 흔히 감사를 고통을 지우는 지우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감사는 고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의미'라는 보석을 찾아내려는 처절한 용기입니다. 현실을 예쁘게 포장하는 위선이 아니라, 무너진 폐허 속에서도 내가 서 있을 자리를 다시 정하는 힘인 거죠.
감사는 마음의 관리가 아니라 삶의 '방향 설정'입니다.
감사를 선택하는 사람은 문제의 압도적인 크기보다 그 틈새에 숨은 가능성을 먼저 발견합니다. 타인을 탓하며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오늘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감사는 낙관주의자의 노래가 아니라, 가장 치열한 삶을 사는 이들의 '생존 전략'에 가깝습니다.
거창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세요. 오늘 하루를 닫으며 딱 한 줄만 적어보는 겁니다. "오늘, 이것 하나는 고마웠다."
성과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큼 멋진 문장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내가 내 삶의 주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선언이면 충분합니다. 감사의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내가 '감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그 방향이 중요합니다.
어쩌면 당신의 삶이 유독 힘겹게 느껴지는 이유는 감사할 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의 방향을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 아주 작은 감사 하나를 선택해 보세요.
그 선택이 당신의 내일을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바꾸어 놓을지도 모르니까요.
감사합니다.
- BizM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