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잃어버렸을까

직함이라는 화려한 수의(壽衣)를 입은 책임에 대하여

by BizManna

조직의 크기가 커질수록 리더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C-레벨부터 팀장, 파트장,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은 리더라고 불리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거친 파도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리더는 점점 더 보기 힘듭니다.


화려한 직함은 도처에 널려 있는데, 왜 그 직함에 걸맞은 '책임'은 이토록 희귀해진 것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도덕적 해이일까요, 아니면 시대가 설계한 구조적 비극일까요. 역사의 궤적과 인간의 본성, 그리고 신앙적 역설을 통해 그 심연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구조가 설계한 '책임의 익명성'


고대 사회에서 리더십은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부족의 리더는 언제나 위험을 먼저 감당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냥의 선봉에 서야 했고, 전쟁이 터지면 가장 먼저 적의 칼날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기근에서는 먼저 나누었으며, 공동체가 흔들릴 때는 원망과 실패까지 떠안았습니다. 실패의 대가는 곧 죽음이거나 추방이었습니다. 광야에서 백성의 원망을 홀로 삭여야 했던 모세나, 왕관을 썼음에도 전장을 누볐던 다윗에게 리더십은 달콤한 권력이 아니라 '생존을 담보로 한 거대한 부채'였습니다. 그 시대의 리더십은 권한이 아니라 부담이었고, 직함은 목적이 아니라 책임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근대 국가와 관료제의 등장으로 이 직관적인 리더십은 서서히 해체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조직은 거대해졌고, 리더십은 인격보다 직위로 정의되었습니다. 군대식 계급과 기업의 직급 체계 속에서 리더는 관계적 책임의 자리에서 점차 제도적 권한의 자리로 이동했습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기보다, 경력의 한 단계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시스템은 효율을 극대화했지만, 동시에 책임을 잘게 쪼개어 증발시켰습니다. 이제 리더는 화살을 맞는 '표적'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는 '방탄벽' 뒤에 숨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가장 무거운 사람'이 아니라 그저 '가장 높은 칸을 점유한 사람'이 된 리더는, 결과가 아닌 절차 뒤로 숨어버립니다. 이것이 현대 조직이 앓고 있는 '책임의 익명성'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확장과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 변화를 더욱 가속했습니다. 리더의 자리는 보상과 성공의 상징이 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미지와 브랜딩이 실질적 책임을 대신하기도 합니다. 근대의 구조, 산업 자본의 보상, 디지털 환경의 확대가 겹치면서 우리는 어느새 리더를 ‘책임지는 사람’이 아니라 ‘대표가 되는 사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명사'의 안락함에 매몰된 '동사'의 고단함


철학적으로 볼 때 인간은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존재입니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결국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남이 인정해 주는 모습이 곧 나의 가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눈에 ‘대단한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 합니다. 이때 직함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도구입니다.


직함(Title): 타인에게 나를 과시하기 위해 필요한 안락한 '명사'입니다. 그것은 박수를 부르고, 명함 위에 새겨져 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책임(Responsibility): 타인을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고단한 '동사'입니다. 그것은 고독한 결단을 요구하며, 때로는 비난과 고통을 동반합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책임지는 자리'보다 '드러나는 자리'를 탐합니다. 명사는 고정되어 평안을 주지만, 동사는 변화무쌍하여 불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명사만 남고 동사가 사라진 리더십은 결국 고립됩니다.


“몇 년 전, 팀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마감 직전 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모두가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날 때, 나는 홀로 밤을 새워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직함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오직 책임의 무게만이 나를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은 직함이라는 껍데기에 경례할지는 몰라도, 그 속에 담긴 리더의 진심과 책임감에는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권한만 남고 책임이 거세된 리더는 결국 자기만의 성벽에 갇힌 채 가장 외로운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수직적 상승'을 거스르는 '수직적 하강'의 역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리더십의 모델은 세상의 상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의 수사가 아닙니다. 리더십의 방향성을 완전히 뒤집는 '경이로운 역설'입니다. 세상의 리더십이 더 높은 곳, 더 밝은 조명을 향해 올라가는 '수직적 상승'이라면, 참된 리더십은 타인의 고통과 필요를 향해 내려가는 '수직적 하강'입니다.


박수 소리는 성벽 꼭대기에서 들리지만, 신음 소리는 성문 밖 낮은 곳에서 들립니다. 진정한 리더는 박수 소리를 좇아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신음 소리를 따라 어둠 속으로 내려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죄라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지고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 사건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박수도 없었고, 오직 침묵과 조롱과 피만이 있었습니다. 리더십의 본질은 군림이 아니라 '대신 짊어짐'에 있음을 신앙은 침묵 속에서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리더를 꿈꾸고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리더를 선택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습니까. 유려한 말솜씨, 화려한 이력서, 혹은 숫자로 증명된 성과입니까. 아니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에 우리를 대신해 비를 맞으며 돛대를 붙드는 사람인지를 묻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결국 우리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돌아옵니다.


"나는 왜 그 자리에 서려하는가.
빛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감당하기 위해서인가."


사실, 공동체를 지키는 이는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한 사람이 아닙니다. 모두가 안락한 방주 안으로 숨어들 때, 끝까지 갑판 위에 남아 파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버티는 사람'에 의해 공동체는 간신히 유지됩니다. 지금 당신이 쥐고 있는 그 직함은 책임을 담아내는 숭고한 그릇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비겁함을 감추는 화려한 가면입니까.


리더십의 위기는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의 상실에서 옵니다.


리더십의 위기는 시스템의 부재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야 하는 이유'의 상실에서 옵니다. 직함이라는 화려한 수의를 벗어던지고, 다시 '책임'이라는 거친 옷을 스스로 입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리더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고독하고도 영광스러운 출발선에 오늘 우리가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BizManna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