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야 말로 사회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나는 래퍼들의 토너먼트 프로그램인 '쇼미더머니'는 꼭 챙겨본다.
힙합 음악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기획사에 의도대로 '더 잘 팔리는 캐릭터'로 만들어지기보다 설사 촌스럽더라도 자신들만의 개성을 확실하게 살린 참가자들의 모습이 흥미롭기 때문이기도하다.
그런데 시즌을 거듭할수록, 쇼미더머니에서 보여지는 여러 모습들이 인생 그리고 비지니스 세계의 현실을 상당부분 투영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끝나고 남아있는 여운을 지금 내가 살고있는 현실과 대조할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위기감을 느끼기도 한다.
농담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자극적이고 오락성에 포커스를 둔 프로그램이 어떻게 현실과 연결되냐고?
한번 같이 살펴보자.
영원한 승자는 없다
쇼미더머니가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참가자들의 '재수' 비율이 꽤 높다는 점이다.
이전 시즌에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출연진들은 물론이고, 프로듀서로 참가했던 래퍼 그리고 시즌 우승자도 재참가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특징이다.
사진 출처: Mnet
예로 더블케이는 시즌1에 프로듀서(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치면 심사를 해 주는 사람)로 참가하여 로꼬라는 신예 래퍼와 함께 우승을 한 래퍼다. 그는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시즌6에는 지원자로 참가했고,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가사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하며 중도탈락하였다.
이처럼 재도전 하였으나 처음 나왔을 때 보다도 더 좋지않은 결과를 얻는 지원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그루브 있는 랩을 선보였던 면도도 재참가 때에는 큰 빛을 보지 못했고, 독특한 스타일의 랩으로 중간 탈락했음에도 팬덤을 형성했던 해시스완도 다음 참가에서는 예전보다 덜 주목받았다.
그만큼 쇼미더머니에서는 예전에 성공을 거머쥔 사람도 다시 도전해서 같은 성공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첫째로는 성공이 실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고(운, 타이밍, 당시의 경쟁자들 등), 둘째로는 어제의 성공방식이 오늘에는 정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며, 셋째로는 세상에 더 강한 경쟁자는 매일같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사람이나 기업이나 찬란한 순간은 정말 한 때임을 절절하게 느낀다.
심사를 하고 조언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더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입시 중심의 교육 시스템에서 자란 우리들은 보통 '스승'이 항상 '제자'보다 더 실력이 뛰어나다고, 아니 뛰어나야만 한다고 믿고있다.
그러나 학교만 벗어나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김연아 같은 최고 수준의 선수를 키우는 코치가 김연아보다 스케이팅을 더 잘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경영대학의 교수가 실제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인보다 더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사를 하고 조언을 하는 사람은 보통 더 깊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지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찾고,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것에 최적화 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터득하려면 재능, 노력, 환경 등이 필요하다.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사진 출처:Mnet
쇼미더머니를 보면 이미 심사위원들은 자신들을 내려 놓았다. 명칭도 심사위원이 아닌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나 참가자나,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이나 이미 프로듀서가 참가자보다 랩을 더 잘한다는 생각은 하고있지 않다.
단, 이들은 비트를 만들 줄 알고, 공연 기획을 할 수 있다.
이들의 역할은 잠재력이 뛰어난 참가자를 찾아내고, 이들의 장점을 찾아낸 후, 거기에 맞는 음악과 공연컨셉을 입혀주는 것이다. 이들은 랩을 더 잘 하지 않아도 심사를 하고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회사에서 나를 코칭해주고 매니지하는 상사가 꼭 나보다 더 실무를 잘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경쟁우위는 한 끗 차이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는 드라마적인 요소가 시청률을 높일 수 있음을 알기에 실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영웅'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이와 경쟁할 수 있는 강력한 '다크호스'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그저 개성을 뽐낼 수 있는 조미료처럼 방송에 활용된다.
그러나 시즌이 거듭될수록 참가자들의 실력이 상향평준화 되면서 이런 구도를 잡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투브 등을 통해 영상이나 음원이 빠르게 공유되는 세상이다보니 나이가 어린 친구들도 트렌디한 테크닉을 익혀 자신의 랩에 적용한다. 아니, 새로운 테크닉을 익히는 속도는 솔직히 어린 래퍼들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그만큼 좋은 것들은 빨리 공유되고, 금방 카피된다. 그리고 카피가 되면 누가 이것을 처음 시작했는지도 알 수 없게되고, 사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에 대한 사실도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현재 가장 잘나가는 기업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마존이 최초의 온라인 상점은 아니었고, 구글이 최초의 검색엔진도 아니었으며, 페이스북 역시 최초의 SNS가 아니었다.
경쟁우위는 한 끗 차이다.
어마어마한 차이로 승부가 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시기에 한 끗 차이로 승부가 나고 이 결과가 결국 이후의 Gap을 넓혀간다.
트렌드를 따라가되 차별화가 필요하다.
쇼미더머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참가자들은 트렌드를 따라간다.
랩 실력이 좋아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프로듀서들은 'Old 하게 느껴졌다'며 가차없이 떨어트린다.
그런데 이 트렌드가 너무도 빠르게 바뀐다는 것이 문제다. 불과 1년 전의 트렌드가 Old하게 느껴지는 곳이 힙합 장르다.
그러나 트렌디한 랩을 하기만 하는 참가자들은 많다. 그리고 이들 역시 속절없이 떨어진다.
최근 시즌을 보면 예전처럼 가사를 까먹거나, 긴장하거나, 랩 자체가 아주 어설퍼서 떨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이 눈에 보인다. 대부분 트렌디한 랩을 구사하지만 자기 색깔이 없어서 떨어진다.
만약 개성이 없고 트렌디만 하다면 듣는 사람이 느끼기에는 '지루하다'.
이는 제품, 서비스, 경영철학에도 적용된다.
혼밥집이 뜨거나, 수제맥주 집이 뜨거나, 디저트 카페가 뜬다는 것은 트렌드이고 이는 시장에 수요가 충분히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비슷한 컨셉으로 비지니스를 오픈하면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요즘 트렌드를 반영하는 가게'라는 첫 번째 테스트까지는 통과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트렌드가 되었다는 것은 또 한편으로는 이미 고객에게 익숙함과 진부함의 경계선에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만약 그 가게만의 '차별화'가 포인트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수 많은 트렌디한 대안 중에 그 가게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좋은 음악과 개성, 그리고 오락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에 꼬박꼬박 챙겨보는 프로그램.
어떤 프로그램보다 매 시즌마다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 주는 프로그램.
그러나 그 격세지감이 요즘의 현실을 너무나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생각에, 이 프로그램은 즐거우면서도 두렵게 만든다.
[어차피 쇼미더머니 관련 글을 읽은거...... 이번 시즌 현재까지 가장 재미있게 본 다음 영상도 보면 좋겠다]
https://tv.naver.com/v/4108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