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 영어를 배우는데 쏟는 시간을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언어 공부에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공교육에 영어를 포함한지도 한참이 지났는데, 사교육 영어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으며 교육 대상의 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더 어린 나이부터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직 한글도 익숙하지 않은 나이때부터 영어교육을 시키고 있다.
중, 고등학교 내내 영어를 공부하고 시험까지 치러 대학에 간 성인들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껴 졸업 후에도, 심지어 취업 후에도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국가적 낭비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으로 사는데 영어가 뭐 그리 중요한가'라고 비난한다.
나는 이 의견에 딱 절반만 동의한다.
내 의견을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 사람으로 사는데 영어가 중요하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교육 수준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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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어 공부는 중요한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국가의 성장전략과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인구도 적고 천연자원도 적은 나라는 그냥 우리끼리 자급자족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먹고 살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뤄왔고, 함께 성장한 소득수준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도 발전해왔다.
제조무역으로 쑥쑥 자라나다가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경제가 휘청이던 경험을 몇번 한 후에는 내수경제, 서비스 경제에 대한 중요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조금씩 진행되더라도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은 앞으로도 '무역'이 될 것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좋은 물건을 만들어 해외에 판매하든, 최근 한류와 같은 영화, 음악 같은 창의적 컨텐츠를 만들어 해외에 판매하든, 몇몇 선진국들이 하는 것처럼 세계최고의 기술을 만들어 로열티를 받고 판매하든, 대한민국은 무엇이든 만들어 해외에 판매해야 먹고 살 수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는데 영어는 중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영어는 지금과 같이 고도로 세계화 된 사회에서 '인터넷'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터넷은 무엇인가?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정보의 전파성'을 뜻한다.
당신이 어떤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꼭 인터넷이 필요하지는 않다. 도서관에 있는 책과 잡지들만 참고해서도 어느정도의 정보를 얻을 수 는 있다. 다만 접근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속도면에서 인터넷이 주는 장점이 크기 때문에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당신이 다녀왔던 휴양지에서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도 꼭 SNS가 필요하지는 않다. 주변의 한명 한명에게 전화를 걸고, 사진을 우편으로 보내서 경험을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시간 내에 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차원이 다르기에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SNS를 활용하는 것이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한국어로 쓰인 정보들만 이용해도 무언가를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전세계에 퍼져있는 방대한 정보의 아주 일부분만 접근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최신 기술들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은 한글이 편하더라도 영어로 자료를 탐색한다.
정보를 전파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당신이 천재성을 발휘해 정말 좋은 제품을 아주 저렴한 원가로 만들었다고 하자. 이 제품을 한글 사이트에 한글로 홍보하는 것과, 전 세계인이 몰리는 영어 사이트에 영어로 홍보하는 것 중 어느 방법이 전파성이 높겠는가?
더욱이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미래의 경제발전 방향이 단순 제조에서 기술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발전이라면 '영어를 이용한 정보 접근성과 전파성'의 중요도는 더욱 높아진다.
다시 한번 정리한다. 영어는 인터넷이다. 인터넷이 정보를 교류하는데 우리를 더욱 자유롭게 해 주듯이, 영어도 더 큰 세상에서 정보를 주고 받는데 자유롭게 해준다.
[이렇게 공교육 + 사교육에 매달릴 정도로 영어가 중요한가?]
영어는 중요하다. 이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니 공교육, 사교육 할 것 없이 영어교육이 활성화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중요한 그 다음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의 영어실력이 중요한가?" 에 대한 질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영어의 장점, '정보의 접근성과 전파성'을 위해서라면 솔직히 우리나라의 공교육 수준의 영어도 '오버스펙(Over-spec)'이라고 생각된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불필요하게 높은 기대수준'을 만들어 놓고, 전 국민이 이를 맞추기를 강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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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은 교육의 초반부터 지나치게 문법과 단어암기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문법의 정확성과 고급단어 및 어휘가 불필요 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논문이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정확한 문법과 고급 어휘 사용이 중요하다. 그리고 일반 기업에서도 고급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좋은 이미지를 먹고 들어간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에 영어로 논문쓰고 타임즈에 글을 기고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 외국인으로써 어차피 불리한 입장인데 고급 영어를 배워서 영어실력을 자신의 핵심 경쟁력으로 가져가는 것이 과연 옳은 전략적 선택일까?
아니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이 정보의 접근성과 전파성을 위해서 필요한 영어 수준은, 그저 자신이 필요한 정보를 얻고 전하기 위해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일단 공통적으로는 이 정도 수준에 맞춘 후, 본인의 커리어에 영어실력이 중요하다면 추가적으로 공부를 더 하면 된다. 다른 모든 공부가 그렇듯, 영어도 제대로 공부를 하려고 하면 어차피 끝 없이 공부해야 한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걸까?]
그럼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왜 이 모양이 되어버린걸까?
여기서부터는 추측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교육정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명확한 비전, 기대수준, 이에 따른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학자와 전문가들에게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6년에 걸친 영어교육 커리큘럼을 짜 보라고 하면 구조 중심적, 문법 중심적인 커리큘럼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프로그램 언어를 배우는데 아직 한 두줄의 코드도 적기 어려운 상태에서 온갖 메소드와 라이브러리 함수 등을 배우다보면 어느 순간 공부는 암기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다.
당연한거다. 사람은 이해가 안되는 상태에서 기한 압박을 받으면 암기를 시작한다.
비록 오늘은 영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다른 과목의 교육들이라고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국민들을 육성하는 것이 본래 영어교육의 목적이었다면, 일단 교육이 추구하는 기대수준부터 바꿔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영어 문법 전문가'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 부터 영어 교육은 잘못되었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이 이런 니즈를 포착하고 '회화 중심의 영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정반대가 되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받는 공교육은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를,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교육은 영어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고급 문법'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화 시대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영어를 잘못된 기대수준을 갖고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교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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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5
Written by Seung-Hoon Aceit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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