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속초행 버스에서 나는 창밖을 봤다.
바다가 보였다 사라졌다 했다.
해안선을 따라 달렸다. 강릉에서 속초까지는 한 시간 남짓. 짧은 거리지만 풍경은 계속 변했다.
버스 뒷좌석에 한 노부부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우리 막내를 마지막으로 본 바다였어."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할머니 손을 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들으면 안 되는 대화 같았다.
속초 중앙시장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좁은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오징어, 닭강정, 아바이순대. 간판들이 요란하게 손님을 불렀다.
생선 굽는 냄새, 튀김 기름 냄새, 양념 냄새가 뒤섞였다. 시끄럽고 복잡했다.
나는 그 사이를 혼자 천천히 걸었다. 예전 같았으면 어색했을 것이다.
시장을 혼자 걷는다는 게. 혼자 음식을 사 먹는다는 게. 마치 사람들이 보는 것 같았다.
'저 사람 왜 혼자지?' 그런 시선이 두려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모두 각자 바빴다.
장사하는 사람, 물건 고르는 사람, 음식 먹는 사람. 혼자인 나에게 관심 없었다.
무관심은 자유였지만 나 자신이 초라해졌다.
오징어 좌판 앞에서 멈췄다. 커다란 오징어들이 얼음 위에 놓여 있었다.
반짝거렸다.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니, 몇 시간 전까지는 생명이 있었을 것이다.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그물에 잡혀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오징어 사가실래요?"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 아니요. 그냥 보는 거예요."
"신선해요. 오늘 아침에 들어온 거."
신선하다는 말이 묘했다. 죽은 지 얼마 안 됐다는 뜻인가.
신선할수록 좋은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지나갔다.
조금 더 걸어가자 생선 가게가 나왔다. 수조에 물고기들이 헤엄쳤다.
살아 있었다. 광어, 우럭, 농어. 좁은 수조 안을 빙빙 돌았다.
어디로도 갈 수 없었다. 그저 돌뿐이었다.
한 가족이 수조 앞에 섰다.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엄마, 저거요!"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저 광어? 크네."
아빠가 가게 주인에게 말했다. "저거 회 떠주세요."
주인이 뜰채로 광어를 떠 올렸다. 펄떡거렸다. 살려고 몸부림쳤다.
도마 위에 올려졌다. 칼이 들어갔다. 아이는 구경했다. "우와!"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장면을 볼 수 없어서 돌아섰다. 가슴이 답답했다.
왜? 원래 이런 거잖아. 사람은 먹어야 그 에너지로 산다.
생선과 고기를 먹고, 자연스럽게 살아간다. 그게 일상이다.
그런데 그 일상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졌다.
죽음. 생명. 살아있음과 죽어있음 사이의 경계. 그 경계는 얼마나 얇은가.
몇 시간 전만 해도 살아 있었던 것들. 지금은 얼음 위에, 도마 위에 누워 있다.
오징어순대 가게 앞에 섰다. "하나 주세요." 주문했다. 아주머니가 물었다.
"여기서 드실 거예요?" 잠깐 망설였다. 포장이 편할 것 같았다.
혼자 서서 먹는 게 어색할 것 같았다.
"네, 여기서요."
플라스틱 접시에 오징어순대가 담겨 나왔다. 초장이 곁들여졌다.
나는 시장 한구석에 서서 먹었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누군가는 내 옆에서 닭강정을 먹었고, 누군가는 전화를 하며 걸어갔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쫄깃했다. 짭짤했다. 맛있었다. 그런데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생명이었다. 바다를 헤엄치던 오징어. 그 오징어에 내장을 빼내고,
썰어서, 채워 넣고, 쪄서, 내 입 앞까지 왔다. 오징어가 죽어 내 식사가 되었다.
옆에서 할머니 한 분이 말했다. 옆에 있던 할아버지에게. "이거 우리 아들이 좋아했는데."
할아버지가 조용히 답했다. "그래. 올 때마다 사줬지." 둘은 오징어순대를 한참 바라봤다.
사지 않았다. 그냥 봤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봤다. 버스에서 봤던 노부부일까? 아니면 다른 분들일까?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의 슬픔은 느껴졌다. 공기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았다.
시장을 더 걸었다. 한 모퉁이에 작은 사진이 붙어 있었다. 젊은 남자였다.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였다. 웃고 있었다. 사진 아래 작은 글씨.
"2023년 11월 15일. 아들아, 보고 싶다."
가슴이 내려앉았다.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자식. 더 이상 이 시장을 걷지 않는 사람.
더 이상 오징어순대를 먹지 않는 사람. 부모는 아직 여기 있는데, 아들은 없었다.
조금 더 가자 또 다른 사진. 이번에는 어린 여자아이였다. 아마 초등학생쯤?
교복을 입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었다.
"우리 딸.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2022년 7월 8일."
숨이 막혔다. 이곳에 이렇게 많은 슬픔이 있었다.
시장 한 편의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게. 오징어를 사고, 순대를 먹고,
웃고 떠드는 그 사이에.
누군가는 자식을 잃고, 아직도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았다. 오징어순대를 다 먹지 못했다. 목이 메었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데 눈물이 났다.
죽음이란 뭘까? 누구에게나 오는 것. 피할 수 없는 것. 그런데 순서가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에 자식이 떠나는 것. 그게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그런데 순서가 바뀌면? 자식이 먼저 가면? 그 슬픔은 어떤 것일까? 상상할 수 없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 안에 태어난 생명. 내가 키운 아이.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나보다 먼저 간다는 것을.
시장 사람들을 봤다. 생선과 야채를 팔고 있었다.
자식을 잃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계속 살아야 했다.
장사를 해서 돈을 벌어 세상을 살아가야 했다.
죽지 않기 위해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그게 더 슬픈 것 같았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것. 살아야 하는 것. 죽은 사람 때문에 더 살아야 하는 것.
기억해야 하니까. 잊으면 안 되니까. 살아 있어야 그 사람도 사는 것 같으니까.
수조 안의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좁은 공간에서 빙빙 도는 물고기들.
어디로도 갈 수 없는데 헤엄치는 물고기들. 우리도 그런가? 어디로도 갈 수 없는데 살아가는 건 아닐까.
도망칠 수 없는데 견디는 것.
그런데 그게 삶인가? 도망치지 않고 견디는 것?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
죽은 사람을 기억하면서 계속 숨 쉬는 것? 휴대폰이 울렸다. 엄마였다. 받았다.
"응, 엄마."
"어디야? 잘 지내?"
"응. 속초 왔어."
"속초? 좋겠다. 날씨는 어때?"
"괜찮아. 춥긴 한데."
잠깐 침묵이 흘렀다. 엄마가 말했다. "밥은 먹었어?"
"응, 먹었어."
"혼자 먹었어?"
"응."
또 침묵. "... 괜찮아?"
그 질문이 묘했다. 혼자 밥 먹는 게 괜찮냐는 건가? 여행이 괜찮냐는 건가?
아니면 내가 괜찮냐는 건가?
"괜찮아, 엄마. 걱정 마."
"알았어. 조심하고. 연락해."
"응."
전화를 끊었다. 엄마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 있었다. 항상 그랬다.
내가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엄마는 걱정했다. 자식이 다치면 안 되니까.
자식이 아프면 안 되니까. 자식이 먼저 가면 안 되니까.
나는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숨 쉬고 있다는 것.
오징어순대를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일인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
시장에서 본 아이들 사진이 떠올랐다. 그들은 더 이상 오징어순대를 먹을 수 없다.
시장을 걸을 수 없으며 바다를 볼 수 없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모든 게 멈춰 그곳에서 기억은 끝났다.
그런데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살아 있다. 계속 갈 수 있다. 내일도, 모레도.
그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한강에서 울던 내가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시장을 다시 봤다. 죽어가는 것들이 아니라 생명을 느꼈다.
살아 있는 것들을. 장사하는 사람들, 웃는 아이들, 손잡고 걷는 연인들.
모두 지금 여기에 살아 있었다.
오징어 좌판 앞에서 다시 멈췄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물었다. "이번엔 사가실래요?"
"네. 하나 주세요."
"어떻게 드릴까요?"
"제일 신선한 걸로요."
아주머니가 웃었다. "다 신선해요."
오징어를 받아 들었다. 무거웠다. 생명의 무게. 아니, 생명이었던 것의 무게.
이 오징어는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것이다. 다른 죽음 위에 내 삶이 있을 것이다.
그게 미안했다. 동시에 감사했다.
숙소로 걸어가며 생각했다. 죽음은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서, 사진 속에서, 누군가의 슬픔 속에서, 그 사람은 계속 살아가고 있다.
지금 존재하고 살 수 있는 그날까지.
그리고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도 앞에서 느낀 생각들, 시장에서 슬퍼하며 본 그 모든 순간들을 간직하며 살아가겠다고.
왜냐하면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앞으로 살 수 있으니까.
혼자였는데, 외롭지 않았다. 죽은 사람들이 내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살아. 네가 살 수 있을 때. 살아. 우리 대신."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엄마는 금방 답장했다.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말하고 싶었어."
"... 얘가 오늘 이상하네. 그래도 고마워. 엄마도 사랑해."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슬퍼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그냥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