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담양 죽녹원 — 작아져도 괜찮다는 깨달음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했다

by 하늘바라기

전주에서 담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노트를 펼쳤다.

지금까지 메모한 문장들을 읽었다.


"나를 찾으러 간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

"살아 있을 때 사랑하자."


세 문장. 짧았다. 그런데 무거웠다.

이 여행을 시작하며 적은 것들.

각 장소에서 느낀 것들. 이제 나는 무엇을 적어야 할까?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질문을 적고, 펜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갈 것인가?


서울에서는 명확했다. 승진, 연봉, 인정, 성공. 그런 것들.

목표가 있었다.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생겼다. 끝이 없었다.

계속 달렸다. 그런데 행복했나?

아니었다. 목표를 이뤄도 허전했다. 채워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방향이 틀렸거나, 목표가 틀렸거나.


담양에 도착해 죽녹원으로 향했다.

대나무 숲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약 16만㎡의 울창한 대숲으로 담양군이 성안산 일대를 조성하여 2003년 5월 개원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추천했다.

"꼭 가보세요. 힐링돼요." 힐링..

나도 그게 필요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세상이 초록으로 바뀌었다. 대나무가 하늘을 가렸다.

빛이 잎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람이 불자 대나무들이 흔들렸다.

소리가 났다. 바스락, 사각사각.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가. 조용했다. 나와 대나무와 바람뿐.

대나무는 높았다. 그 대비가 선명했다.

나는 대나무 사이를 지나는 작은 존재였다.


서울에서는 성공하고 싶어 모든 일에 신중했다.

더 많이 이루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크게 보이려고.

크면 인정받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더 크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그런 존재였다.

그렇지만 불안하지는 않았다.

그냥 작은데 초라하지 않았다. 보는 그대로다.

벤치에 앉았다. 하늘을 봤다. 대나무 사이로 하늘이 조각나 보였다.

파란 조각들. 구름이 천천히 움직였다.

노트를 꺼내 다시 메모를 봤다.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답을 적어보려 했다. '돈? 명예? 사랑?' 지웠다.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뭘까? 한 가족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빠, 엄마, 어린 딸. 딸이 깔깔 웃었다.

"아빠 봐! 나무 되게 높아!"

아빠가 딸을 안아 올렸다. "너도 이렇게 크면 저것보다 높아질 거야."

엄마가 웃었다. "무슨 소리야. 나무가 얼마나 큰데."


그들이 지나가고 다시 조용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저 가족은 행복해 보였다. 뭔가 대단한 걸 이뤄서가 아니었다.

그냥 함께 있어서. 웃고 있어서.

행복이란 뭘까? 무엇을 이루는 것? 아니면 무엇을 느끼는 것?


나는 지금까지 '이루는 것'만 생각했다.

학교 졸업, 회사 입사, 프로젝트 성공, 승진.

이루고, 이루고, 계속 이뤘다. 그런데 행복하지 않았다.

이룬 것은 많은데 느낀 것은 없었다.

설악산에서 만난 준혁이 떠올랐다.

"사랑했는데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 말이 이해됐다.

사랑도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하지 않다.

사랑은 느끼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느끼고 싶은가?

바람이 불었다. 대나무가 흔들렸다. 나도 눈을 감았다.

바람을 느꼈다. 피부에 닿는 바람.

귀에 들리는 소리.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

이런 거였다. 느끼는 것.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순간을 느끼는 것.


노트에 적었다. '나는 느끼고 싶다.

살아 있음을. 행복을. 사랑을. 지금을.'

적고 나니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슬퍼서?

아니었다. 뭔가 찾은 것 같아서. 오랫동안 찾던 것.


나는 지금까지 잘못된 길을 걸었다. 이루려고만 했다.

채우려고만 했다. 커지려고만 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느끼는 거였다. 작아져도 느낄 수 있다.

이루지 못해도 느낄 수 있다. 지금 여기서 느낄 수 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제는 안다.

이루는 삶이 아니라 느끼는 삶.

채우는 삶이 아니라 비우는 삶. 커지는 삶이 아니라 깊어지는 삶.

그게 구체적으로 뭘까? 생각해 봤다.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공기를 느끼기.

출근길에 하늘을 보기. 점심 먹을 때 음식의 맛을 느끼기.

퇴근하고 사람들을 만날 때 진짜로 대화하기.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하기.

천천히 걷기. 자주 웃기. 많이 사랑하기.


거창하지 않았다. 대단하지 않았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삶. 크지 않지만 깊은 삶.

서울로 돌아가면 달라질까? 다시 바빠질 텐데.

다시 일에 쫓길 텐데. 다시 목표에 매달릴 텐데. 그래도 괜찮을까?

모르겠다. 아마 다시 흔들릴 것이다. 다시 잊힐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순간의 느낌을 간직한 채로.


한 할아버지가 지나가셨다. 혼자였다. 천천히 걸으셨다.

대나무를 보시며 미소 지으셨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웃을 수 있는 분.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분.

나도 그렇게 늙고 싶었다. 이룬 게 많아서가 아니라,

느낀 게 많아서 행복한 사람.

크게 성공해서가 아니라, 공감하며 만족하는 사람.


일어나 다시 걸었다. 대나무 숲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출구에 다다르자 다시 세상이 넓어졌다.

하늘이 보였다. 햇빛이 쏟아졌다. 세상이 밝아졌다.

아니, 내가 밝아진 것 같았다. 뭔가 무거운 것을 내려놓은 기분.

짊어지고 있던 짐. '이뤄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는 짐.


이제는 가볍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꿈이 없어도.

거창한 목표가 없어도. 그냥 오늘을 살면 되는 것이다.

오늘을 충실히 살고 느끼면 되는 것이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노트를 다시 펼쳤다.

"나는 작아도 괜찮다. 느낄 수 있으니까. 사랑할 수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적고 나니 웃음이 났다. 이게 답이었다. 간단했다.


그런데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울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었을 답.

버스에 올랐다. 창가에 앉았다. 담양이 멀어졌다.

대나무 숲이 작아졌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는 그 숲이 그대로 있었다.

초록색 숲. 바람 소리. 작아도 괜찮다는 깨달음.


거창하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꿈도, 크게 성공하는 꿈도 아니었다.

그냥 나를 찾는 꿈. 나로 사는 꿈. 행복한 꿈.

그게 내가 진짜 원하던 것이었다. 10년 동안 찾던 것.

서울에서 잃어버렸던 것. 이제야 찾은 것.

창밖을 봤다. 들판이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진 들판.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길이든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마음가짐이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느끼며 살 것. 사랑하며 살 것.

작아도 괜찮다고 믿을 것.

그렇게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확실하게.

담양의 대나무 숲이 가르쳐준 것.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

작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작아도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

작아도 충분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초라한 존재다.

세상 앞에서. 자연 앞에서.

시간 앞에서. 그런데 괜찮다. 나는 느낄 수 있으니까.

사랑할 수 있으니까. 살아 있으니까.

그것만으로, 나는 충분하다.


버스 안에서 나는 조용히 웃었다. 행복했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서가 아니었다.

그냥 나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아서.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여수로, 남해로, 통영으로, 부산으로.

그리고 언젠가 다시 서울로.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어디를 가든 나는 나라는 것. 작아도 괜찮다는 것.

느끼며 산다면 어디든 천국일 수 있다는 것.

담양이 내게 준 선물. 작아져도 괜찮다는 용기.


그리고 그 작음 속에서 찾은 나의 꿈.

크지 않지만 진실한 꿈.

이루기보다 느끼는 꿈. 채우기보다 비우는 꿈.

이제 나는 진짜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