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협재해변을 떠나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 없이. 그냥 표지판을 보며.
'오름'이라는 단어가 자꾸 보였다.
제주에는 오름이 많다고 했다. 368개라고 했다.
아끈다랑쉬오름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이름이 특이해서 들어가 봤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입구로 걸어갔다. 안내판을 봤다.
"정상까지 40분 소요. 경사 완만. 초보자도 가능."
사람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 등산화. 등산 스틱까지. 제대로 준비한 사람들.
나는 일반 운동화에 등산복 차림도 아니었다. 그냥 평상복.
'올라갈까?'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내키지 않았다. 피곤했다.
협재해변에서 바람맞고 온 것만으로도 지쳤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는데 안 올라가면 아깝지 않나?
예전의 나라면 올랐을 것이다.
여기까지 왔으니까. 안 올라가면 손해니까.
나중에 후회할까 봐.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변했다.
올라가고 싶지 않으면 안 올라가도 되는 것으로.
입구 근처 벤치에 앉아 오름을 올려다봤다.
초록색 능선. 완만한 경사. 하늘과 맞닿은 곳.
아름다웠다. 올라가지 않아도 아름다웠다.
그때 옆에 누가 앉았다. 돌아보니 할머니였다.
일흔은 넘어 보였다.
"올라가지 않아요?" 할머니가 물으셨다.
"아뇨. 그냥 여기서 볼까 해요."
"피곤해요?"
"네. 조금."
할머니가 웃으셨다.
"나도 안 올라가요. 나이 먹으니까 힘들어서."
"자주 오세요?"
"응. 일주일에 한 번씩. 근처에 살아서."
"매번 올라가세요?"
"아니, 가끔만. 올라가고 싶을 때만.
안 올라가고 싶으면 여기 앉아 있어. 이것도 좋아."
할머니의 여유가 부러웠다.
올라가도 되고 안 올라가도 되는 여유.
"할머니, 여쭤봐도 돼요?"
"응."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할머니가 나를 봤다. "갑자기 어려운 질문 하네."
"죄송해요. 그냥... 궁금해서요."
할머니가 잠깐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욕심 안 부리면 돼."
"욕심이요?"
"응. 사람이 힘든 건 다 욕심 때문이야.
더 갖고 싶고, 더 되고 싶고, 더 인정받고 싶고.
그러면 끝이 없어. 평생 힘들어."
정확히 나였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가고 싶은 나.
안동 하회마을에서 느꼈던 것.
"그럼 욕심을 어떻게 버려요?"
"버리는 게 아니야. 줄이는 거지. 조금씩.
필요한 것만 가지려고 노력하는 거야."
"필요한 것만요?"
"응. 밥 먹을 만큼, 잘 곳 있을 만큼, 입을 것 있을 만큼.
그 이상은 욕심이야."
간단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상을 원했다.
더 비싼 집, 더 좋은 차, 더 많은 돈.
"그럼 할머니는 행복하세요?"
"응. 행복해. 가진 게 많지 않은데도."
"뭐가 있으세요?"
"집 하나. 작아. 밭 조금. 감귤 키워.
남편. 자식들. 손주들. 그게 다야."
"그게 다예요?"
"다야. 근데 충분해. 더 필요한 게 없어."
충분하다는 말. 나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
"할머니, 그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해요?"
할머니가 웃으셨다. "질문이 많네. 고민이 많은가 봐."
"네... 죄송해요."
"괜찮아. 사람들을 사랑해야지."
"사랑이요?"
"응. 미워하지 말고. 싫어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나쁜 사람도요?"
"응. 나쁜 사람도 이유가 있어서 나쁜 거야.
힘들어서, 아파서, 상처받아서. 미워하면 나만 힘들어.
그냥 사랑하고 놔줘."
깊은 말이었다. 나는 사람을 판단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도움 되는 사람,
안 되는 사람. 쓸모로 판단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냥 사랑하래. 모두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연습이야. 맨날. 나도 처음엔 못 했어. 미웠어.
싫었어. 근데 나이 먹으니까 깨달았어.
미워하면 나만 아프다는 거. 사랑하면 나도 편하다는 거."
한 가족이 오름에서 내려왔다.
엄마, 아빠, 어린 딸. 딸이 뛰어왔다. 넘어져 울었다.
엄마가 달려가 안아줬다.
"괜찮아. 안 아파. 엄마가 호~ 해줄게."
딸이 울음을 그쳤다. 웃었다.
할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거야. 사랑."
"저게요?"
"응. 조건 없이. 아이가 잘못해도,
못해도, 사랑해. 그게 진짜 사랑이야."
나는 조건부로 사랑했다. 상대가 나한테 잘해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럴 때만 사랑했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거래였다.
"할머니, 저는 이기적인 것 같아요."
"다들 그래. 처음엔."
"어떻게 바꿔요?"
"생각을 바꾸는 거야. 내가 먼저가 아니라,
상대를 먼저. 내가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주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때 한 남자가 지나갔다.
등산 스틱을 떨어뜨렸다. 모르고 계속 걸어갔다.
할머니가 일어나셨다. 스틱을 주우셨다. 남자를 불렀다.
"여보세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남자가 돌아봤다. 달려왔다. "아,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조심해서 가세요."
할머니가 다시 앉으셨다. 나는 물었다.
"왜 주워주셨어요?"
"떨어진 걸 봤으니까."
"그냥 두면 안 돼요? 할머니 거 아닌데."
할머니가 웃으셨다.
"내 거 아니라고 안 도와주면, 세상이 차가워지잖아.
다들 그러면 어떻게 살아?"
맞았다. 나는 '내 일이 아니면'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손해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 세상에서 나도 도움받지 못할 텐데.
"할머니, 저도 바뀌고 싶어요."
"뭐를?"
"개인적인 거. 욕심 많은 거. 사람 판단하는 거. 다요."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셨다.
"변할 수 있어. 젊으니까. 아직 시간 많아."
"어떻게 해요?"
"작은 것부터. 오늘 하나. 내일 하나.
친절하게 말하기, 웃어주기, 도와주기. 작은 것부터 하는 거야."
"그럼 언젠가 저도 바뀌겠죠?"
"응. 1년 후면 달라져 있을 거야. 5년 후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야."
할머니가 일어나셨다.
"나 이제 갈게. 집에 가야 해. 남편이 기다려."
"감사했어요. 정말."
"천만에. 좋은 사람 되려고 노력해. 그럼 행복해질 거야."
할머니가 걸어가셨다. 천천히. 그런데 가볍게.
나는 혼자 남았다. 오름 아래에 올라가지 않은 채로.
그런데 오름을 오르지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다른 것을 느끼게 되었으니까.
노트를 꺼내 또 적었다.
"오늘부터 할 것, 적으면서 생각했다. 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는 못 하겠지. 그래도 해볼 만하다.
경주 불국사에서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조금씩. 어제보다 조금만."
그래. 조금씩. 오늘 하나. 내일 하나. 하면 되지 뭐!
자리에 일어나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짐을 들고 계셨다.
무거워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내 일 아니니까.
그런데 멈추고 나서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무거워 보이는데요. 차까지 들어다 드릴게요."
"아니, 괜찮아요. 혼자 할 수 있어요."
"제발요. 제가 연습 중이에요."
"연습이요?"
"네. 친절 연습."
아주머니가 웃으셨다. "그럼... 부탁할게요."
짐이 무거웠지만 힘을 다해 차까지 옮겼다.
트렁크에 넣어드렸다.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조심히 가세요."
차로 돌아가며 기분이 좋았다. 이상하게.
조그만 짐을 든 것뿐인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필요하지 않은 행동에도 그냥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 말이 맞았다. 주면 나도 편하다고. 나도 좋다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다음 장소로 향했다.
오르는 성취감보다 더 많은 것을 느꼈다.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용기. 베풀며 사랑하는 것.
그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것.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삶은 살아볼 만하다고.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되뇌기며.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선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야 함을.
아마 처음에는 실수도 많이 할 것 같다.
그런데 괜찮다. 조금씩. 매일 노력하면 된다.
언젠가는 할머니가 들려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고, 편안하고, 행복한 사람.
그게 내 새로운 목표로 바뀌었다.
돈 많이 버는 것도, 높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선한 사람이 되는 것.
그것 만으로 오늘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