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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메트리오 Oct 03. 2020

동네를 산책하면 보이는 것들

 미국 롤리 두 번째 이야기

평소에는 잠꾸러기지만 여행할 때는 다르다. 새벽 6시에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옷을 갈아입고 세면대에서 얼굴을 씻는다. 옆 방에서 자는 친구한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까치발로 2층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와 문 밖으로 나선다. 동네를 한 바퀴 쭉 둘러볼 생각이다.



우리가 동네를 둘러볼 때 재밌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무엇부터 살펴보는가? 단연 집이다.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재질로 지었는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양을 갖추었는지 등 다양한 기준을 갖다 대면서 특징을 잡아낸다. 집에 대한 대략적인 느낌을 알고 나면 조경을 어떻게 꾸몄는지 감상하게 된다. 후 차도와 보행자 도로를 보게 된다. 이런 관찰을 끝내고 나면 그 외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네는 도시의 첫인상을 좌우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주민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고 지역 문화가 어떠한지 엿볼 수 있다. 동네가 주는 단서는 실로 많다.  



밖으로 나오자 쨍한 햇빛이 주위를 환하게 비쳐준다. 5월 말인데도 불구하고 온기를 넘어서 더위가 느껴진다. 예상치 못한 더위에 잠깐 정신줄을 놓다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가는 길에 친구 집을 못 찾아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집 사진을 찍어두고 동 번호를 기억한다. 이제부터는 정해진 길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산책을 한다. 나만의 아침 시간이 시작된다. 시간과 일행에 쫓기지 않고 나만의 템포로 여유로움을 즐기는 것. 같이 여행할 때는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롤리의 주택가 풍경. 2층짜리 집이 도로를 따라 쭉 이어져있고 나무와 잔디가 조경을 이룬다. 성조기도 드문드문 보인다.


산책을 하다 보니 주택가의 일정한 구조가 눈에 띈다. 상아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칠한 집에 우드톤의 갈색으로 칠한 지붕. 흰색으로 창문과 지붕의 테두리를 완성한다. 원색이 아닌 파스텔 톤으로 칠해서 그런지 눈에 거슬리지 않고 주변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 이층 집이 차도를 따라 쭉 이어진 가운데 집을 자세히 보니 창문이 집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집 앞과 뒤에 큰 창문이 위치해 있고 옆면에 창문이 위치해 있는 집도 간혹 보인다. 롤리가 남부에 위치해 있어 원래 날씨가 따뜻한 점도 있지만 햇빛이 충분히 들어올 수 있으며 겨울에도 많이 춥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집마다 작은 잔디밭이 보이고 크기가 제각각인 나무가 심어져 있다. 길을 걸으면서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차가 하나둘씩 보인다. 좀 더 걷다 보니 주민을 위한 야외 수영장이 보였는데 시설이 꽤 괜찮다. 화창한 날씨에 당장이라도 수영장에 뛰어들어가고 싶다.  



수영장을 뒤로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친구 집에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몇몇 가정에 성조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게 된다. 혹시 공휴일인가 싶어서 날짜를 확인해보니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이다. 우리나라는 광복절이나 3·1절, 제헌절 같은 주요 공휴일이 아니라면 태극기를 보기가 어렵다. 요즘에는 공휴일에도 공공 기관을 제외하고는 태극기의 존재감을 알 수 없다. 반면 미국은 평소에도 성조기를 군데군데 볼 수 있으며, 7월 4일 독립기념일에는 공공 기관은 물론 거의 모든 가정에서 성조기를 올린다. 나는 여기서 미국인이 올바르고 한국인이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옳고 그름으로 판별하기보다는 문화적 성향이 다르다고 간주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나 싶다. 분명한 점은 롤리의 시민을 비롯한 미국인이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는 점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미술관 바깥 풍경. 초록 초록한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야외 건축물이 눈에 띈다.


산책하기 앞서 친구 집 호수를 기억하고 사진을 찍은 덕택에 길을 헤매지 않고 돌아왔다. 집에 들어와서 보니 친구가 준비를 다 하고 당장이라도 나갈 듯한 자세를 취했다. 어디 가냐고 물어보니 노스캐롤라이나 주 미술관 (North Carolina Museum of Art)에 가자고 했다. 차를 타고 도착해보니 나무들과 사이사이에 있는 야외 건축물이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미술관이 규모가 크다고 미리 친구한테서 들었지만 야외 공간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초록의 느낌을 간직한 야외 공간에 흐뭇해하며 길을 따라 걸어가니 커다란 유리 건물이 우리를 맞이했다. 유리 건물이 나한테 얼른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나는 그 손짓을 따라 문을 힘껏 열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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