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메트리오 Oct 17. 2020

코로나로 인한 여행과의 이별 그리고 재회

올해 2020년 3월, 인도에서의 인턴십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었다. 코로나라는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인도에서 최초로 델리 공항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한국은 1월에 최초 확진자가 나왔고 3월에는 일일 확진자가 900명이 넘기도 했다. 하지만 인도는 그때만 해도 코로나 청정국이었는데 현지 언론이 인도의 높은 기온이 코로나로의 방패가 되어준다는 말을 들은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확진자 숫자가 점점 많아졌다. 내가 일하던 싱크탱크 사무소는 곧바로 재택근무로 들어갔고 나는 5월까지 지속되는 인턴십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신 짐을 싸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다.


 아그라의 타지 마할 (사진 = shutterstock) 
'핑크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자이푸르.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하와 마할. (사진 = shutterstock)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쉬운 게 인도에 거주했을 때 수도 델리를 제외하고 여기저기 여행을 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겨울에는 미세먼지로 타지 마할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봄에 가는 게 좋다고 해서 3월에 가기로 했는데 코로나로 투어를 취소하게 되었다. 일부러 타지마할 보려고 인도로 가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인턴십으로 몇 개월간 지냈으면서 타지마할도 보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핑크 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자이푸르는 현지인이 추천을 많이 한 곳이라 정말로 가고 싶었는데 그 또한 못 가게 돼서 안타깝다. 언제쯤이면 갈 수 있을까?



집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가족하고 오래간만에 지내게 돼서 편안하고 행복했다. 한국은 인도와는 차원이 다르게 많은 게 편안하게 세팅이 되어 있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자 슬슬 지겨워지더니 한동안은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졌다. '코로나 블루가 이런 건가?' 싶어 섬뜩했다. 코로나 블루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무기력함이 있다. 실제로 한 게 별로 없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그렇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올해 2020년과 이전의 거리감이 (아님 괴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도 멀게 느껴지면서 가끔씩 시간이 뒤죽박죽 되기도 한다. 작년에 여행을 간 게 머나먼 과거의 일로 느껴지고 사소한 일들이 기억에서 하나씩 사라져 간다. 제일 힘든 점은 코로나로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에 적응함과 동시에 우리의 습관을 한순간에 바꿔야 한다는 점.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지인을 만나면 안 된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에서 먹는 것을 자제하고 포장이나 배달로 해야 한다. 쓰기 답답한 마스크를 실내에서 꼭 착용해야 한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족쇄가 우리 모두의 몸과 마음을 휘감고 있다. 이러한 억압받는 느낌은 코로나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회자될 것이다.



이처럼 코로나로 인한 제약은 사회적으로 무수히 퍼져 있고 여행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해외여행을 못 가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기존의 단체여행은 꿈도 꿀 수 없고, 마스크 없는 실내 여행은 사람 생명을 담보로 걸게 되었으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 애쓰는 기현상을 만들었다. 거의 모든 행사나 컨벤션은 무한정 연기가 되었으며 언제 재개할지 모른다는 불확실함은 많은 여행객에게 불편함을 넘어 불안함을 낳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하게도 코로나로 인한 장점도 있다. 물론 단점이 장점을 앞지르지만 말이다. 앞에 말했듯이 자잘한 일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면서 기억이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가 되는데 여기서 본인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나는 기억을 되짚어 보면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 간 게 많이 떠오르고 학업을 어디서 할지, 어떤 전공을 택할 건지, 어떤 커리어를 쌓고 싶은지 등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내린 결정도 떠오르게 된다. 그만큼 여행은 내 인생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사람마다 기억을 하는 영역은 다르겠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기억을 해야 되는 것이거나 기억을 하고 싶어서이다. 코로나와 같이 외부의 무언가가 너무 영향력이 강해서 기억을 안 할 수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어쨌든 코로나가 나로 하여금 과거의 기억을 재구성하고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필터링을 강화하고, 정말로 중요한 가치관이 무엇인지 생각을 요구해온 것은 틀림없다. 당신이 자주 기억하거나 잘 떠오르는 기억에는 무엇이 포함되어 있는가? 그러한 기억이 내포하는 가치관은 무엇인가? 


같은 공원에서 찍은 사진. 왼쪽은 오후 4시경, 오른쪽은 오후 6시경에 찍었다.


또 다른 장점으로는 여행에 대한 새로운 면모를 알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도시를 선호하곤 했다. 나 스스로 도시 사람이라 믿기도 했고 사람과 건물 구경을 하는 것도 재밌고 문화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상륙한 이후 여행지가 소도시 혹은 시골로 변경되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언제부터 재미가 붙으면서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특히 자연의 다양한 색감에 꽂혀있는데 단순히 꽃만 포함된 게 아니다. 풀잎이나 나뭇잎도 방금 땅에서 나온 새순과 같은 연둣빛 초록색부터 파슬리와 같은 짙은 초록색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에메랄드 빛이 나는 바다가 있는 반면 제복을 연상하는 짙은 남색의 바다도 있다. 그리고 시간에 따라 같은 공간이라도 느낌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런 관찰은 도시에서도 할 수 있지만 자연에서 빛의 강도나 각도에 따라 보이는 모습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코로나가 여행 방식을 바꾸게 하면서 기존의 여행지나 방식으로는 알 수 없었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코로나 전과 후의 여행 방식은 많이 변해왔다. 최근 미술관과 콘서트가 한 곳에 모이는 기존의 포맷에서 벗어나 각자의 공간에서 따로 즐기는 랜선 여행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듯이. 백신 개발과 배포로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지 이전의 여행 방식을 고수할 수 없고 어쩌면 코로나가 끝난 이후에도 다른 여행 방식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여행 자체를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잃는 게 많다. 일하고 집으로 와서 저녁을 배달이나 간편식으로 때우고 유튜브 영상이나 넷플릭스를 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마무리하기엔 단조롭고 가끔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특히 요즘처럼 무기력함을 느끼기 쉬울 때일수록 움직여야 한다. 몸과 머리 둘 다. 지금 당신의 여행 방식은 어떠한가? 바뀌게 되었다면 어떻게 바뀌었나?


작가의 이전글 미술관으로 바라보는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