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새해를 맞이하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1월 1일이 되기 전에 열정적으로 카운트다운을 하는 모습이 없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는 당연히 없었다. 연말 파티로 성수기를 누려야 할 식당과 술집도 대다수가 텅텅 비었다. 오죽하면 새해를 맞아 매년 해오던 보신각 타종 행사도 취소되었다. 대신 명동 성당 종소리가 쓸쓸한 거리와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다들 새해를 맞이해 어떤 소원을 비셨는지? 아마 대부분이 백신을 하루빨리 맞아 일상을 되찾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올해는 기운 빠지게 하는 암울한 소식이 벌써 들린다. 일일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대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는 와중에 서울은 이제 500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작년 사망자 수가 (30만 명) 출생아 수를 (25만 명) 넘기면서 사상 첫 인구 감소를 맞이하게 되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작년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기운 빠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가 알던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시점이 최소한 하반기에야 가능하다. 몇몇 전문가는 11월이나 돼야 집단면역을 형성할 거라고 전망했다. 대면이 필수인 직업에 속한 사람들한테는 청천벽력이다. 대면이 필수가 아닌 사람들은 생사가 갈릴 정도는 아니지만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1년을 또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피로감으로 절은 몸과 마음을 1년 더 끌고 가야 된다는 생각에 진절머리 난다. 벌써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한다. 어쩌면 2021년이 아니라 2020년을 다시 재현한 듯한 느낌이 든다. 새해인데 새해 같지 않는 아이러니한 느낌은 뭘까?
그래도 새해를 맞이해 뭔가 특별한 걸 하고 싶어 가족과 통영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했다. 그러다 중간에 식당을 들렀다. 일부러 사람이 없을 만한 늦은 시간대에 도착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이 많아서 바깥쪽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손님들이 전부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심지어 몇몇은 빈 테이블이 여럿 있는 곳을 놔두고 굳이 사람이 많은 쪽으로 가서 앉으려고 했다. 카페에서도 이러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손님들이 일제히 따뜻한 실내 자리를 차지하면서 따딱따닥 붙어있었다. 내가 갔던 카페는 프랜차이즈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내에 있는 손님들한테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리고 싶어서 난리 부린다며, 저 사람들 때문에 확진자가 줄지 않는다며 화가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생각했다. '얼마나 사람들이 답답하면 일부러 저렇게까지 하나? 피로함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겠지. 인파가 있는 곳에 서로 침 튀기며 자유롭게 얘기하고 싶겠지.' 물론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를 준수하지 않고 붙어있는 걸 정당화하는 게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 나 또한 코로나 감염을 고려했기 때문에 식당에선 바깥쪽 테라스에 앉았고 카페에선 테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하지만 실내에 있는 사람들을 무작정 비난할 것 또한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피로함으로 가득 차 저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그런가? 모처럼 웃고 떠드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지 않는 그늘이 존재했다. 오히려 더 크게 웃고 떠들수록 '나는 피로감으로 지쳤어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게 아닐까?
오늘 신문 기사에서 컨설턴트와 석학이 제시한 올해 키워드로 회복을 언급하면서 다시 힘차게 시작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나라나 산업 기준으로는 적합한 키워드일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으로 들어가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내심이 대표 키워드가 돼야 한다. 회복은 결과물에 불과하지 그에 도달하기까지의 힘든 과정을 전혀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상이 돌아오는 그 날까지 희생자는 계속 나올 것이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더라도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쭉 생길 것이다. 전방의 의료진은 수많은 환자를 돌보느라 본인 건강을 돌볼 수 없을 것이다. 사업을 접거나 정리해고를 당하는 사람들도 속속들이 나올 것이다. 불확실한 현재와 포스트 코로나라는 미래를 안고 가야 되는 부담감은 모두가 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고통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고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전문가들은 냉혹한 현실을 겪지 않은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가 싶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일부러 회복을 언급한 게 아닌 이상 말이다. 전에도 힘들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힘들다. 현대에 경제뿐만 아니라 생명과 자유의 위협을 이렇게까지 받은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공감이 가지 않을까?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을 대변하는 건지 날씨가 매우 춥다. 하지만 찬 바람 사이로 따스함을 품은 한 줄기 햇살처럼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인내심으로 하루를 꾸역꾸역 버텨간다.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오기를 희망하듯이 우리는 매일을 그렇게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