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각은 새벽 2시 15분. 여기는 볼리비아 우유니 ‘아베니다 호스텔’이다. 낮에 신청한 사막 선 라이즈 투어 모임은 새벽 4시. 그러니 대략 1시간 45분이 남은 셈이다. 사방은 어둡고 고요하며 들리는 소리라고는 같이 온 일행의 자장가 같은 나지막한 숨소리뿐이다. 온화한 얼굴을 보니 마치 꿈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난 듯하다.
새벽 투어를 위해 밤 9시부터 잠을 청했으니 꼬박 5시간 이상을 침대에 누워 있다. 그리고 낯선 이방 도시의 모든 것을 오감을 총동원해 느끼고 있다.
꽤 멀어진 시차는 이젠 익숙해졌는데, 왜 잠이 오지 않는 것일까? 언제 세탁했는지 모르는 꿉꿉한 냄새의 베갯잇과 스치면 베어버릴 것 같은 날 선 카펫 재질의 담요 때문일까? 아니면 낮에 진하게 내려 마신 케냐 AA 2잔 탓일까?
아마도 도통 흘러가는 생각을 잡을 수 없어 넘쳐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여러 생각과 걱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여행을 끝난 뒤에 무엇을 하며 살아갈까
이번에 발매할 앨범은 좀 잘 돼야 할 텐데.
아! 내가 앨범 디자인 시안을 넘겼던가?
오늘 먹었던 알파카 고기는 한 번이면 된 거 같다.
그나저나 카메라 배터리 충전을 했나?
그러다 어떤 한 사람의 얼굴도 떠오른다.
낙산공원 담벼락에 앉아 함께 들었던 음악과 수줍게 나의 꿈을 처음으로 얘기했던 날.
하나의 우산을 쓰고 같이 걷던 비 내리던 가을밤과 내 맘 같지 않았던 모진 말들도.
낯선 여행지에 와 처음에는 모든 것들이 새롭기만 하였다. 일상에서는 느낄 수 없던 신기한 것들이 많았고, 그런 까닭에 작은 것 하나에도 나의 감정은 예민하게 날 서 있었다. 마치 어느 가요의 가사처럼 나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지금은 집을 떠난 지 3개월여 지난 시점. 낯설었던 모든 것들이 조금은 익숙해져가고 있다.
카페에 들어가 순진한 얼굴로 “Un cafe, por favor” (스페인어로 커피 한 잔 주세요) 도 여유 있게 말하고, 야간 버스에서 자물쇠를 채운 가방은 누구보다 잘 지킬 자신이 있다.
20kg 되는 배낭을 메고도 거뜬할 정도로 하체 힘이 늘었고, 맥도날드에서 꽤 오랜 시간 기다려도 지루하지 않다. 혹시 모를 배탈에 매일 먹는 유산균까지.
익숙함은 피하고 싶다. 아니 되려 무섭기까지 하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몸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까지도 어느 한 곳에 안주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그것을 피하려 지구 반대편, 이 먼 곳까지 온 것일지도 모른다.
여행이 익숙해지자 나의 생각과 불면에 시달리던 삶의 패턴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필 그게 오늘이라니, 나는 곧 우유니 사막에서 떠오르는 해를 봐야 하는데...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날이 많이 춥기에 가지고 있는 옷들을 다 껴입어야겠다.
그리고 곤히 자고 있는 일행을 깨워 저 문을 나서야겠다.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많은 것들을 담으려 온 이곳에서 삶에 대한 나의 태도는 조금 더 유연해져 간다. 우리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계속 안고 가야 하는 것이 있음을,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