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일본의 질주와 추락

반도체 산업을 지배했지만, 반도체 리듬을 잃어버린 일본의 사례

by JBO

1986년 도쿄. 제국호텔 대연회장. NEC 창립 87주년 기념식이 있는 날이었다. 축사를 위해 고바야시 고지 회장이 단상에 올랐다. 78세의 노인이었으나, 아직도 당찬 모습이었다. 그는 NEC를 반도체 산업의 강자로 만든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 말과 함께 뒤의 스크린을 가르켰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하나의 문구가 등장했다. “NEC, 세계 반도체 매출 1위.” 그들이 인텔과 모토로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를 제치고 세계 반도체 1위 회사로 등극한 것이었다. 고바야시는 감격에 찬 목소리로 계속했다. “30년 전, 우리는 미국에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선생이 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연말이 지나면서 드러났다. 매출액 기준으로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순위가 발표됐는데, 1위 NEC, 2위 히타치, 3위 도시바, 6위 후지쯔, 7위 마츠시타, 그리고 10위에 미쓰비시가 자리잡은 것이었다. 글로벌 10위까지의 반도체 기업 중 무려 6개가 일본 국적의 기업이었다. 메모리 분야를 보면 더욱 압도적이었다. DRAM 시장의 점유율 중 일본 기업들의 점유율은 80%, 미국 기업은 15%에 달했다. 칩의 불량률을 보면, 일본 제품들은 미국에 비해 10%에 불과했다. 당연히 영업 이익률도 미국 기업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성적표였다. 그러나, 시간을 훌쩍 건너뛰어 2024년을 보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2024년 세계 10대 반도체 회사 순위를 보면, 7개가 미국, 2개가 한국, 그리고 1개의 대만 기업을 볼 수 있다. 일본 기업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980년대 반도체 산업을 지배하던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 사라졌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누군가에게는 큰 역사적 교훈이 될 수도 있는 일본 기업들의 질주와 추락, 영광과 오만의 이야기를 들여다보자. 결론을 미리 말한다면, 이것은 잃어버린 기회의 이야기이다.


image.png 출처: 미래에셋증권 매거진


1952년 도쿄의 한 사업가가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소니의 공동 창업자인 이부카 마사루. 그의 목적지는 뉴저지의 벨 연구소였다. 당시 벨 연구소는 무수한 혁신의 중심에 있었지만, 모기업인 AT&T는 유선 전화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다.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엄청난 혁신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업적 용도로는 확신하지 못한 상태였다. 긴 고민없이 그들은 트랜지스터의 기술 라이선스를 팔기로 했다. 2만 5천 달러가 그들이 요구한 금액이었다. 독점적 사용권이 아니었기에, 많은 미국 기업들이 앞다투어 이 라이선스를 구매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청기 생산같은 작은 용도로만 사용했다. 이부카는 달랐다. 그는 더 큰 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 트랜지스터를 활용해 라디오를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라디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작게 시작한 소니에게는 큰 돈이었지만, 이부카는 소니의 꿈을 위해 모험을 강했했다. 소니의 이야기는 이부카로부터 시작해 이와마 카즈오를 정점으로 흥미로운 성공 스토리가 되었다. 1955년 소니는 일본 최초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출시했고, 1957년 드디어 주머니에 들어가는 포켓 사이즈의 라디오를 만들었다. 이 제품은 미국과 유럽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트랜지스터를 다루는 능력 만큼은 소니가 최고라는 인식을 각인시켰다. 소니의 성공에 자극받은 다른 일본 기업들도 1960년대를 지나면서 너도나도 전자 및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었다. 일본의 중흥기가 꿈틀대던 시기였다.


일본 기업들은 모두 같은 전략을 취했다. 일단, 이들은 기초 과학과 기반 기술이 부족해, 미국의 기업으로부터 기술 라이선스를 구매했다. 덕분에 페어차일드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같은 기업들은 직접회로 설계와 제조 공정, 반도체 재료 개발 등의 기술을 팔아 일시적으로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라이선스를 구매한 기업들은 순진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미국의 칩을 하나하나 분해하면서 기술 원리를 익혔고, 이를 적극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들은 특허권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법을 찾았다면, 이후에는 끊이없는 개선 작업이 진행되었다. 수율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키고, 비용을 절감할 많은 노하우가 차곡차곡 축적되었다. 이와마 카즈오 같은 선구자들의 탁월한 리더십과 헌신적인 헌신적인 연구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통상산업성이 주축이 된 일본 정부의 지원도 한 몫을 차지했다. 성과는 점차 분명해졌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기업들은 반도체 제조 공정 만큼은 가장 강력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고가의 반도체 칩에 몰두하고 있었기에, 범용 트랜지스터를 활용하는 분야는 일본 기업들이 장악했다.


일본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다. 정부의 주도 하에 반도체 산업 부흥 정책이 집행되었기에 경쟁과 협업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미국 기업들에게는 여러 개의 일본 기업이 아닌 하나의 덩어리가 시장을 잠식하는 모습으로 비춰졌다. 일본 주식회사.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정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에 미국 기업들은 이런 비아냥을 퍼부었다. 일본 기업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미국 기술을 따라잡는 것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반도체 칩의 설계 능력은 약 5년의 차이가 있다고 판단했다. 미국 기업들이 훨씬 앞서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격차는 향후 10년동안 빠르게 좁혀졌다.


1976년 일본의 통상산업성은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VLSI(Very Large Scale Integration) 기술 연구조합. 차세대 반도체 기술을 선점해 미국 기업들을 앞서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다. 이미 저 만치 앞서가고 있는 소니를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 NEC, 히타치, 도시바, 후지쯔, 그리고 미쓰비시가 참여했다. 정부와 민간 기업들은 총 2.5억 달러의 연구 기금을 조성해 4년간 전례없는 기술 개발에 들어갔다. 참여한 기업들에게 비밀의 장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연구 결과가 공유되었고, 전문가들의 파견도 매우 자유로웠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들은 반도체 칩 제조의 핵심 공정, 리소그래피, 웨이퍼 제조, 테스트와 평가 장비 등을 개발했고, 짧은 시간 안에 놀랄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1979년 계획된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을 때, 이들은 총 1,000개 이상의 특허를 출원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1 마이크로미터 이하 공정기술, 자동화된 테스트 장비, CAD 설계 등이 이 때 완성되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인재들이 배출되었다. 최첨단 기술 혜택을 흠뻑 받은 이들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식회사 일본’의 자산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결과는 달콤했다. 1980년대 초, 일본 기업들이 DRAM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1978년 30%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했던 일본 기업들은 1982년 50%를 넘어섰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유율을 계속 높였다. 1980년 컴퓨터 제조 회사인 휴렛 팩커드(HP)는 미국과 일본의 DRAM을 비교 테스트했다. 품질의 차이가 크다는 보고가 많았기 때문에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일본에서 생산된 메모리 칩의 불량률이 미국보다 무려 10배나 적었다. 미국과 일본의 칩 경쟁은 이 때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일본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모든 컴퓨터 제조사들은 일본 DRAM을 구매하려고 했고, 부족한 것들만 미국 기업에게 주문했다. 일본의 기업들에게 라이선스를 주며 그들을 가르쳤던 미국의 엔지니어들에게 치욕적인 상황이 펼쳐졌지만, 극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일본 기업들은 이미 저 만큼 앞서가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의 성공에는 끈질기게 카이젠(개선)을 추구하는 특유의 직업 윤리가 큰 몫을 담당했다. 여기에 더해 이와마와 같은 선구자들이 클린룸을 표준화하면서 제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게 된 것도 중요했다. 평생 고용 문화를 가진 기업의 특성 상 한번 입사한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자신들의 업무를 발전시키면서 장기적인 품질 개선에 집중하는 것이 가능했다. 모두 미국에서는 보기 힘든 환경이었고, 이로 인해 일본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개선했다. 1952년 소니의 이부카 마사루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매우 절박한 마음이었다. 인사말과 함께 자신의 제안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무명의 동양인으로서 백인들 사이에서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 있겠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절박한 마음만은 제대로 전달하고, 계약을 따내고 싶었다. 이런 일은 이후에도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1970년대 이후에는 품질 관리 기법을 도입했다. 이번에도 그들의 스승은 미국 사람들이었다. 데밍(W. Edwards Deming)과 주란(Joseph Juran). 이들은 통계적 공정 관리법과 품질 관리 방법 등을 일본 기업들에게 전파했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내용들을 악착같이 학습했고, 이를 개선의 기회로 삼았다. 이 때의 결과물은 후에 거꾸로 미국으로 건너가 식스 시그마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미국 기업들이 도리어 일본의 품질 관리법을 학습하기 시작한 셈이었다. 좁은 비행기 안에서 인사말과 제안을 부족한 영어로 연습하고 연습하던 이부카 마사루에게는 이런 역전 상황이 감격에 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반도체 칩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은 메모리만 잘 한 것이 아니었다. 클린룸에는 다양한 장비가 필요한데, 리소그래피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학 장비들이 중요하다. 이 분야에 Nikon과 Canon 등 카메라를 만드는 기업들이 뛰어들어 놀랄만한 성과를 이뤄냈다. 또한, 공정을 위한 여러 화학제품 분야도 일본 기업들이 선두를 차지했다. 바야흐로 모든 칩 산업 생태계를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것이었다.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돈과 자신감이 넘쳐났다. 1987년 일본의 반도체 산업 연간 매출은 이미 200억 달러를 넘어섰고, 소니와 미쓰비시는 컬럼비아 픽처스와 록펠러 센터 등 미국의 상징이던 기업과 부동산을 인수했다. 모두 이런 좋은 시절이 오래 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1985년 6월. 일본의 급격한 성장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기업들은 반도체산업협회(Semiconductor Industry Association, SIA)로 달려갔다. 거창한 말들이 오고갔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무슨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일본 기업들을 견제해달라는 요구였다. 이 협회는 미국 정치계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협회장은 실리콘밸리의 주역, 로버트 노이스였다. 회의 후에도, 노이스 팀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미국 무역대표부에 1974년 만들어진 통상법 301조 위반 혐의로 일본 기업 및 정부를 상대로 청원서를 제출하도록 유도했다.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받아간 일본이 이렇게 높은 품질과 낮은 가격을 유지하는 것은 뭔가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때부터 미국 산업계는 일본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반덤핑 제소를 하고, 반도체 칩 수출량을 제한하고, 가격의 하한선을 설정해 미국과의 가격 격차를 최소화시켰다. 일본의 성공은 끊임없는 공정 개선의 결과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으나, 미국은 막무가내였다. 어디에도 합당한 근거는 없었고, 미국의 커다란 주먹은 모든 법 규정을 다 무시할 정도로 강했다.


1986년 일본 반도체 업체는 미국에 생산 원가를 공개하고, 일본 내 미국 반도체 업체의 시장점유율을 20%까지 높이기로 하는 <미일 반도체 협정>에 사인했다. 더 결정적인 일도 있었다.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은 당시 잘 나가던 4개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과 회의를 열였다. 여기서 일본 엔화와 서독 마르크화의 고평가를 위해 환율을 조정한다는 협의문이 발표되었다. 그 유명한 <플라자 합의>였다. 회의가 개최된 호텔 이름이 붙은 거의 유일한 국제 협약일 것이었다. 그만큼 머쓱한 회의였다. 객관적 데이터 분석과 합리적 평가 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로지 자국의 이익만을 관철시키려는 미국의 윽박만 있었을 뿐이었다.


반도체 협정과 플라자 합의로 일본 산업계, 특히 반도체 산업은 직격타를 맞았다. 일본에서 생산된 칩의 국제 가격은 상승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산 설비와 연구 개발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졌다. 1987~1988년 일본의 DRAM 가격은 평균 2~3배 상승했다. 현장에서 아무리 비용을 줄이려해도, 협정에 의해 설정된 국제 가격은 현장의 모든 노력을 희석시켰다. 여기에 더해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일본보다 산업화가 늦게 시작된 옆 나라, 한국의 기업들이 반도체 시장에 슬금슬금 들어오기 시작했다.


미국에는 곰과 여우가 있었지만, 일본은 강아지만 있었다. 미국은 한 편으로는 무식하게 힘으로 일본 기업과 정부를 윽박질렀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반도체 칩 산업의 질적 변화를 모색하고 있었다. 특히, 인텔의 선택이 중요했는데, 일본에게 빼앗긴 DRAM의 자리르 되찾는 것보다 컴퓨터 CPU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 기업들까지 진입하면, DRAM의 범용화는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반면, 일본은 변화를 모색하지 않았다. 국제 시장에서는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강아지로 안주하며, 내부적으로 더 쥐어짜서 비용을 낮추려고만 했다. 그러나, 일본 메모리 칩의 시장 점유율과 이익률은 해가 갈수록 하락했다. 특히, 1990년대 초 DRAM 가격이 다시 폭락하면서 일본 기업들은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받았다.


인텔을 중심으로 미국 기업들은 반도체 칩의 다양화에 눈을 돌렸다. 198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컴퓨터를 구매해 집에 두고 쓰는 퍼스널 컴퓨터(PC)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미국 기업들은 이런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인텔-IBM-마이크로소프트의 삼각 동맹은 PC 시대를 적극적으로 앞당겼다. 1995년이 결정적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출시한 윈도우95는 모든 사람을 열광시켰고, 인텔의 CPU와 윈도우95가 설치된 IBM의 PC는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DRAM도 중요한 부품이었으나, 조명받지 못했다. 이미 상당히 범용화가 진행되었고, 한국의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일본 칩 산업의 몰락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이 산업은 여전히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었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가 선행되어야 했다. 제때에 투자해 앞서가지 않으면, 순식간에 뒤쳐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일본 기업들은 투자를 줄여야 했다. 미국의 견제로 PC 부문의 수출이 줄어들었고, 한국의 도전으로 범용 시장의 대부분을 잃고 있었다. 안정적인 기업 분위기, 평생 고용 문화, 연공 서열 중심의 의사결정 등 칩 산업을 이끌었던 장점들이 모두 단점이 되어 기업들을 옥죄었다. DRAM을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옮겨간 인텔처럼 획기적인 전략이 필요했으나, 어떤 방법도 도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혹독한 개선과 기존 사업 방어에만 몰두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위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누구도 정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일본 경제와 칩 산업은 빠르게 경쟁력을 잃어 갔다. 1980년대 후반 최고의 자산 거품을 기록한 후, 일본은 빠르게 가라앉았다. 부동산과 주가 등 자산 가치가 폭락했고, 은행들이 부실해지면서 자본 시장이 경색되었다. 후에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등장했지만, 실제로는 이후 30년 이상 일본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칩 산업은 더욱 심했다. 은행들이 대출을 축소하면서 가뜩이나 영업 이익이 줄어든 기업들은 투자를 망설였다. 이 대가는 참혹했다. 1990년대 내내 삼성전자는 선도적인 투자로 DRAM 시장을 선도해 나갔고, 대만의 TSMC는 시장의 빈틈을 메워나갔다. 1990년대 후반,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들은 DRAM 시장의 선두가 되었다. 잘 나가던 일본 기업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 혁신도, 날카로운 전략 설정도, 심지어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뉴스도 없었다. 지금도 반도체 칩 산업의 미스테리로 남아있는 현상이었다. 일본의 기업들은 가라앉고 있었으나, 어떤 비명 소리도 없었다. 그냥 질서정연하게 산업 주도권을 미국에 양보했고, 한국 기업에게 추월당했다.


반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암울했던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 초, 드디어 몸부림이 시작되었다. 이들이 선택한 해법은 뭉치자는 것이었다. 개별 기업이 경쟁하기에는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이 너무 멀리 앞서나갔다는 상황 인식이 주효했다. 그 결과, NEC와 히타치의 DRAM 사업부가 합병해, 엘피다(Elpida)가 되었고,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비메모리 사업부가 합병해 르네사스(Renesas) 테크놀로지가 탄생했다. 남아있던 도시바와 후지쯔도 파트너십을 체결해 몸집을 불리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들이 망설이고 갈등하는 사이에, 신흥 경쟁자로 생각했던 삼성전자가 너무 앞서 나갔다. 일본 기업들의 눈에, 삼성전자는 미친 기업이었다. 아무 대책없이 투자하고 규모를 늘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결과, 2000년대 초반 일본 전체 DRAM 생산 규모는 삼성전자 한 기업의 1/3에 불과했다. 일본의 성공 열쇠였던 공정 개선과 높은 효율은 삼성전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몸집을 불리는 것도 실패했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기업들이 대책없이 뭉치다 보니,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그 결과, 원래도 느린 의사결정이 더 느려졌다. 어떤 면에서는 전략적 의사결정을 해야할 리더십이 없는 것 같았다. 간당간당하던 그들의 목숨줄을 끊은 건 모바일 시대의 등장이었다. 스마트폰과 클라우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이들은 완전히 몰락했다.


2012년 하나의 뉴스가 칩 산업을 강타했다. 일본의 엘피다가 파산했고, 이후 미국의 마이크론에 인수됐다는 것이었다. 르네사스는 여전히 칩을 생산했지만, 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서만 경쟁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과 미국의 정치적 관계에 의해 치명타를 입은 후, 빠르게 변하는 산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어려워진 외부 환경을 극복하려면 과감한 내부 혁신이 필요했으나, 일본 기업 특유의 느리고 관료적인 의사결정은 역동적인 칩 산업과 맞지 않았다.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삼성전자의 질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엘피다의 파산으로 일본의 메모리 산업은 종말을 맞았다. 이후, 소니는 반도체 사업부를 분사시켰고, 르네사스는 설비를 매각하면서 근근히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특화된 영역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소니는 이미지 센서에 집중하고, 르네사스는 자동차 반도체, 그리고 로옴(Rohm)과 같은 중소 반도체 기업은 전력용 반도체 부문에서 굳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2020년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7%에 불과했다. 1990년 50%를 넘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리고, 일본의 질주와 몰락은 다른 기업, 다른 국가들에게는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자칫하면 같은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은 칩 산업과 정확하게 클릭되는 표현이었다.


2022년 일본 정부와 8개의 기업이 모여 칩 산업의 부흥을 논의했다. 그 결과 Rapidus 프로젝트가 탄생했다. 목표는 2나노 공정을 개발해, 다시 선두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TSMC는 이미 2나노 공정 준비를 거의 끝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이들의 의사결정은 경쟁자보다 한참 뒤진 셈이고,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1950년, 폐허의 땅에서 산업을 일구려는 선구자들과 그들의 동지들, 그리고 적절한 외부 환경으로 인해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1등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 일본은 무적처럼 보였다. 놀라운 품질과 공정 개선, 새로운 혁신은 누구의 도전도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까지 일본은 절벽에서 떨어지듯이 추락했다. 그들에게 유리했던 국제 산업 환경은 순식간에 악화되었고, 그 틈을 파고드는 도전자들은 예전의 일본처럼 신속하게 과감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이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그들은 결코 그들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성공과 몰락은 한국을 비롯한 산업 관계자들에게 큰 교훈이 되고 있다. 전략적 방향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혁신과 민첩한 적응 만이 생존과 성공을 지탱해준다. 과거를 답습하고, 느리게 반응하면 순식간에 뒤쳐질 수 있다. 일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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