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를 벗어난 천재들이 일궈낸 새로운 기업 문화
역설적이게도 쇼클리가 꿈꿨던 실리콘 밸리의 이상은 그를 떠난 사람들에 의해 실현되었다. 직접회로의 유용성이 증명되면서, IC 칩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기업들도 분화되었는데,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독립한 사람들이 인텔(Intel)과 AMD 등을 창업했다. 모두 쇼클리 연구소에서 수백 미터 내에 자리를 잡아서, 이 지역은 하나의 거대한 IC 칩 연구소 겸 공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근처의 산타 크루즈 산맥 전망대에서 보면, 하나의 거대한 계곡, 즉 밸리가 생긴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배신자들이 잘 나가는 모습은 쇼클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그는 우생학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능이 인종에 따라 다르다는 주장을 펼쳤고, 이런 정신나간 주장은 과학계와 사회로부터 그를 완전히 고립시켰다. 1989년, 79세의 나이로 쇼클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례식에 참석한 옛 동료는 거의 없었다. 브래튼과 바딘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페어차일드의 배신자들은 끝내 초대받지 못했다. 그의 부고 기사는 허망할정도로 짧았다. “트랜지스터 공동 발명자,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쇼클리 사망.” 세상을 바꾸고 문명을 도약시킨 천재는 그렇게 조용히 사라졌다.
쇼클리의 이야기는 천재성의 역설을 보여준다.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위대한 과학자였다. 트랜지스터가 없었다면 현대 문명은 지금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의 이론적 통찰력과 물리학적 직관은 누구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인간적 결함은 그의 천재성 만큼이나 컸다. 그는 통제에 집착했고, 의심이 많았으며, 도무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다. 자신의 지적 우월성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고 믿었다. 고든 무어는 2005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쇼클리 없이는 실리콘 밸리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리콘 밸리가 번영한 것은 우리가 쇼클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성공은 단순히 기술적 우수성 때문이 아니었다. 배신자들은 쇼클리에게서 배운 것을 충실히 실천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로버트 노이스는 ‘반독재적 리더십’을 실천했다. 페어차일드에는 임원 전용 주차장이 없었다. 모든 사무실 문은 열려 있었다. 젋은 엔지니어가 CEO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할 수 있었다. 고든 무어는 ‘듣는 경영’을 강조했다. 그는 실험실을 돌아 다니며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물었다. 실없어 보였지만,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현명한 결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했다. 이것은 실리콘 밸리의 문화가 되었다. 수평적 조직, 개방적 소통, 실패에 대한 관용, 청년들에 대한 신뢰. 이 모든 것은 쇼클리에 대한 반작용으로 탄생한 것이었고, 실리콘 밸리의 성공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다.
쇼클리의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천재를 역사 속에서 박제하고, 영웅으로 묘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을 찬양하고, 결함을 가리는 것이 천재에 대한 예의같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쇼클리의 사례는 위대한 천재도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지능이 지혜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뛰어난 과학자가 끔찍한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의 이야기는 희망적인 면도 있었다. 독재자가 떠난 자리에서 새로운 혁신이 피어났다. 억압에서 벗어난 젋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창의성을 분출했다. 실리콘 밸리는 쇼클리가 심은 씨앗에서 자랐지만,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번영했다. 그것은 천재 한 사람이 아니라, 자유롭게 협력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생태계였다.
오늘날, 실리콘 밸리 역사 박물관에는 페어차일드의 ‘배신자 8인’을 기리는 대형 전시물들이 있다. 반도체 산업이 중요한 한국의 과천과학관에도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진, 그들이 쓴 메모, 그들이 만든 첫 번째 칩이 전시되어 있다. 쇼클리에 대한 전시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작고, 구석에 있다. 노벨상 메달 사진과 간단한 설명문. “트랜지스터의 공동 발명자. 실리콘 밸리의 창시자.” 그리고 덧붙여진 한 줄. “그를 떠난 사람들이 그의 꿈을 완성했다.” 천재의 공헌과 결함, 성공과 실패가 이렇게 한 문장으로 요약되어 있다. 역사는 잔인하게 정직하다. 벽에는 로버트 노이스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쇼클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발명할 수 있는지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배웠다. 둘 다 중요했다.”
뉴욕타임스는 2006년 기사에서 배신자 8인이 쇼클리를 떠난 날이 곧 '실리콘 밸리가 탄생한 날'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이 실리콘 밸리의 창업 문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들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이 지역에 생겨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기업들을 통틀어 '페어 칠드런(Fair-Children)'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8인의 배신자 중에서 유진 클라이너는 1세대 벤처 캐피탈 기업인 '클라이너퍼킨스'를 공동 창업했다. 기술과 함께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제이 라스트, 진 호어니, 셸던 로버츠는 '텔레다인 테크놀로지'를 설립했고, 빅터 그리니치, 줄리어스 블랭크는 여러 기업을 창업하고 매각하는 일을 반복하며, '연쇄 창업자'라는 명칭을 받기도 했다. 이들 외에도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하던 제리 센더스는 반도체 기업인 AMD를 창립했고, 돈 밸런타인은 세쿼이아캐피탈을 창업해 세계 최대의 벤처캐피탈 회사가 되었다. 세쿼이아캐피탈은 후에 엔비디아에 초기 투자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들의 활약 속에 실리콘 밸리는 혁신의 연구실이자 사업화의 촉진제가 되었고, 과학적 발견과 경제적 효과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야기의 최정점에는 무어와 노이스의 인텔이 있었다.
작가 소개
작가는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반도체 설계를 담당한 후 다수의 다국적 화학 기업에서 신사업 설계와 글로벌 확장 전략을 담당했다. 녹색 기술혁신의 글로벌 사업화를 담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지속가능 사업 전략과 순환 경제 확산에 관한 해법을 모색하고 컨설팅하고 있다. 또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면서 시민사회 단체와 함께 공동체의 기술 시민성과 회복 탄력성 향상 방법을 연구중이다. 주요 저서로 <기후위기+행동사전>, <브레이킹 바운더리스>, <혁신기술 마케팅 전략>, <화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