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칩 산업을 설계하고 확장한 리더들의 이야기
기술만으로는 불가능했던 산업의 확장, 그 뒤에는 ‘판을 짠’ 사람들이 있었다.
1971년 가을, 캘리포니아 산타 클라라. 인텔의 작은 회의실에서 세 사람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 그리고 앤디 그로브. 그들은 어떤 의사 결정에 대해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어떻게 보면 행복한 고민이었다. 인텔은 DRAM과 프로세서 칩 양쪽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산업은 자신들이 세운 룰, 즉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엄청난 돈과 인력을 투입해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세 사람은, 아니 인텔의 모든 사람들은, 인텔이 두 분야 모두를 동시에 잘 할 수 있는지 확신이 없었다.
무어는 단호했다. 인텔은 DRAM 회사였다. 그들이 개발한 1103은 대성공이었다. 노이스는 프로세서 쪽으로 기울었다. 인텔4004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로브는 전략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둘 다 잘 할 수는 없다. 하나를 선택해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그로브의 주장이었다. 이 날의 논쟁에서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다. 노이스는 현 상태를 유지하되, 기간을 정해 선택을 하자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날의 논쟁은 향후 반도체 산업의 양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1부에서는 반도체 칩 산업을 가능하게 한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 노이스의 직접회로, 강대원의 모스펫. 이 발명들은 페러데이 이후 약 120년 간 축적된 인류 지성의 밑거름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을 바꿨고, 미국을 압도적인 산업의 리더로, 한국을 혁신적인 공급망 파트너로 이끌었다. 하지만, 발명만으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발명을 제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시장을 개척하고 고객을 설득해야 한다. 누군가는 공장을 건설하고 생산 효율을 높여야 한다. 누군가는 인재를 모으고 조직해야 한다. 누군가는 시장을 탐색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 “누군가들”이 전략가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과학자, 엔지니어, 회계사 등일 수도 있고, 때로는 학위가 없는 공장 노동자가 최고의 전략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정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강력한 비전과 유연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 속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위험을 감수하며 미래를 개척하는 사람들이었다.
2부에서는 4명의 전략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인텔의 신화가 가득한 동화의 나라 변두리에서 각자 다른 국가, 다른 맥락, 다른 산업 환경을 극복하고 산업을 개척하고 자신의 국가를 부흥하게 만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들에 관한 영웅신화를 쓰려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완벽하지 않았고, 실수도 많이 했다. 때로는 운이 좋았던 경우도 많았다. 2부의 이야기는 실수하고, 배우고, 적응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찾는 게 목적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담하고 유연하며, 무엇보다 끈질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