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지난밤 비가 내렸는지 촉촉이 젖은 피렌체의 아침은 고요하고 품위가 넘쳤다. 두오모로 걸어가는 길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이탈리아 여행의 성지가 아닐 수 없었다. 골목을 돌아서자마자 거대한 두오모가 시선을 압도했고 화려한 벽면 문양이 입을 자동으로 벌리게 만들었다. 변치 않는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두오모 앞에 서 있으니 인간으로서의 왜소함을 느껴졌다. 그리고 꺼지지 않는 인간의 예술혼에 취하고 그림에 대한 내 열정도 식지 않기를 다짐하게 했다. 목이 아플만큼 두오모와 종탑을 올려다보다가 두모오 큐폴라에 오르기로 했다.
소설의 준세이가 그랬던 것처럼 두오모 정상에 오르면 만나고 싶은 누군가를 운명처럼 마주할 것만 같았다.
낡고 좁은 계단을 끊임없이 올라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철제 계단 아래 섰다. 계단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한 무리가 지나간 후 위로 올라갈 수 있었는데 누군가를 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되는 상상에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여행객들로 가득한 두오모 정상을 한바퀴 돌면서, 정상으로 올라오는 철계단이 보이는 자리에서 한참이나 혹시나 하는 마음을 붙잡고 있었다. 두오모를 빠져나와서도 그 자리를 쉽게 뜨지 못했다. 그래서 두오모 성당이 전체 모습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는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렸다.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스케치했지만 전체적인 윤곽과 구성을 겨우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틀을 더 그 자리에서 꼬박 작업해서 완성했다.
2007년 피렌체는 세계의 여행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여행지로 지명되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유럽의 명소로 손꼽힌다. 피렌체 역사지구는 도보로 여행하기에 적절한 곳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보면 어느새 아르노 강변으로 움직이게 되는데 탁한 흙탕물이지만 유유히 흐르는 강을 따라 거니는 시간들이 참 매력적이다. 수많은 다리들로 이어져 있고 강둑을 따라 길게 늘어선 건물들은 낡은 장난감처럼 정겨웠다. 사실 아르노 강은 상업으로 이 도시를 번성케 하기도 했지만 홍수로 인한 범람으로 도시를 파괴해 피렌체 시민들에게 고통을 주기도 한 밉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연인이다.
강을 따라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게 되는 곳이 당연히 가장 오래된 다리인 베키오 다리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리 가장자리를 따라 다닥다닥 붙은 낡은 주택들과 금은세공품 가게들이 중세의 느낌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리고 아홉살의 단테가 여덟살의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했고 그들은 우연히 9년 뒤에 같은 다리에서 재회하게 되는데 그 다리가 바로 이곳 베키오 다리다.
그래서인지 다리 중간 쯤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 첼리니의 흉상 아래 쳐진 울타리에는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한 자물쇠들로 가득했다. 내가 사진을 찍는 이 순간에도 어린 연인은 난간 구석에 자물쇠를 걸고 키스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