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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Oct 15. 2018

일상과 여행이 공존하는 곳, 구라시키 미관지구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여행하다

구라시키까지의 여정이 가볍지는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약300년 전 에도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지역을 찾아가는 시간여행이라 그런 것일까?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오사카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오카야마역까지 3시간 30분, 다시 전철로 30분을 더 이동해야 구라시키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빡빡하게 연결된 도시 이동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오사카를 벗어나자마자 버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겨울 풍경은 고요함과 느긋함으로 가득했다. 도시여행을 즐기지 않는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구라시키역의 풍경은 일상 그 자체였다.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의 번화함과 학교를 마친 학생들의 왁자한 웃음과 이야기, 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지침과 들뜸이 뒤섞인 그런 풍경이었다.

어제까지의 내 일상의 모습을 여행자가 되어 타인의 삶을 구경하듯 바라보고 있으니 마치 나를 제외한 모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는 타임리스 영상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구라시키역에서 미관지구까지는 도보로 약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전철역과 연결된 육교를 내려오면 왼쪽으로 미관지구 방향을 표시하는 여행 안내판이 있었다. 일본의 대부분이 그렇듯 지붕이 있는 시장 골목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전철역의 풍경과 다르게 시장 골목길은 아직 활기가 없었지만 저녁 영업을 준비하는 음식점 내부의 불빛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그림자가 예열 중임을 살짝 보여주고 있었다.     



겨울이라는 계절 탓이겠지만 해가 넘어가는 한산한 미관지구의 저녁 풍경은 내게 더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책과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 속 미관지구는 아름다웠지만 항상 사진 안에는 여행객들이 가득해 답답했다.


어쩌면 그 순간 그 유명한 것을 나도 해봤고, 가봤음을 드러내고 싶은 보통의 마음이 내게는 없다고 말하고 싶은 자기 기만에 스스로 거북했던 것일까? 사실 그 유명한 사진의 순간에 나도 들어가 있고 싶으면서 말이다.    




일상과 여행의 순간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행이고 누군가에겐 매일 만나는 사람과 장소일 뿐이다. 먹고사는 문제와의 연관이 그것을 결정하겠지만 여행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여행과 일상이 어떻게 다를까 생각해본다. 


여행이 삶과 일치하면 ‘여행’이 라는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멈추지는 않을까?    


하루 종일 골목을 돌고 돌았을 자전거도 이젠 걸음을 멈추고 쉬는 시간이 되었다.

태양의 마지막 작은 열기도 사라지고 어둠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는 사람이 만든 불빛이 하나둘 열기를 더해가기 시작했다.


약속된 체크인 시간에만 문을 연다는 게스트하우스 입구에 배낭과 캐리어를 끈 여행자들이 속속 몰려들었다. 어느 골목에서도 마주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각자가 사랑하는 공간에 녹아 있다가 슬며시 모습을 드러낸 유령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유령들 말이다.     


시장 골목을 빠져나와 미관지구로 들어서자 두근거리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 에도시대 말기의 쌀 창고를 개조해 만든 구라시키 고고관 건물 옆으로 난 큰 길을 걸어가면서 눈을 감고 싶어졌다. 구라시키의 중간에 있는 멋진 다리인 나카바시 앞에서 펼쳐질 풍경을 한번에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일부러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흰 벽의 고고관 건물을 살피며 걷지만 온 신경은 나카바시 너머 풍경에만 쏠려 있었다.   



강을 따라 걷다가 골목 끝 전통 소품을 파는 작은 가게가 눈에 띄어 그 길로 들어섰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시대,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이어지는 시간 여행이 혼을 빼놓는 것 같아 이러다 길을 잃지나 않을까 잠시 걱정하다가 차라리 길을 잃고 다른 세계로 이동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 걱정을 덮었다.


지도를 접어 가방에 넣고 눈과 마음이 가리키는 길로 돌아 들어섰다.    


내가 구리시키에서 두 번째로 기대한 순간은 낮보다 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미관지구의 야경이었다. 하늘이 완전한 어둠으로 덮이고 가로등과 상점의 불빛, 달빛만이 가득해진 시간에 골목을 빠져나와 다시 구라시키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조명이 은은하게 반사된 강물과 빛이 닿지 않는 그늘진 공간이 최고의 장면을 위한 나름의 배역을 소화하고 있었다.


조명을 밝힌 미관지구는 낮과는 다른 공간이 되어 있었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낮에 숨죽이고 있는 나룻배와 무심하게 놓인 돌, 나무, 아기자기한 간판, 수레 등이 모두 눈을 뜨고 일어나 움직일 것만 같았다.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낯선 문을 통과해 만나는 풍경이 이런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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