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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Oct 13. 2018

핑크 도미 열차 타고, 도미 덮밥 먹고

와카야마시 '카다'를 느리게 여행하다

와카야마시에는 특별한 열차가 둘이다. 하나는 고양이 열차, 하나는 도미 열차.


나는 특히 바닷가 작은 마을로 가는 핑크빛 도미 열차가 궁금했다. 캔커피를 뽑느라 가방을 뒤적이는 사이 내가 예상했던 방향의 반대편에서 핑크색 도미 열차가 들어섰다. 색깔도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밝고 진했다.


시작부터 예상을 벗어나는 여행에 또 두근두근해진다.    



여행의 감동과 특별한 순간에 얻는 감성,

그리고 그 공간의 향기와 이곳에서 떠올린 사람의 얼굴,

스치고 지나간 그때의 생각들을 오래 기억하는 방법을 무엇일까?


그 장소와 순간에 어울리는 노래를 고르고 아주 오랫동안 한 곡을 반복해 들어보는 것이다. 언젠가 일상에 지쳤을 때 그 음악이 다시 여행의 순간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를 찾아 걷다가 근처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만나거든 다른 골목으로 걸어가 보자.

항상 계획을 벗어나는 순간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작은 일탈이 여행을 더 신나게 만든다.     




소나기를 피하느라 열차를 타기 전 마신 첫 번째 커피 다음으로 어느새 네 번째 커피를 마시고 있다. 머리는 멍하지만 기분은 좋다.


갑자기 쏟아진 비는 그쳤고 젖은 옷도 모두 말랐다. 카메라의 배터리도 떨어지고, 예상치 못한 지출도 생겼지만 소소한 여행의 풍경에 즐거움 지수가 계속 상승하고 있다.     


지도를 들여다보아도, 길을 물어보아도 찾지 못하면 잠시 모든 걸 멈추고 앉아 눈을 감는다. 부산하고 불안하던 마음이 안정되고나면 이런저런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늘 이 모양이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여유를 갖기를 남들에겐 당연한 듯 늘어놓으면서 막상 내 자신은 안절부절이다. 지금 여행 중임을 잊어서 그런가보다.   


여행은 온통 낯선 것으로 가득하다.

어딜 가나 새롭고 처음 보는 풍경이니 낯선 지도, 낯선 도로표지판, 낯선 길에 초능력에 가까운 집중력을 발휘해도 놓치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그나마 자동차를 운전해 이동하는 여행에서는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순간 내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어색한 발음의 여인이 있다.


“전방에서 유턴하세요.”


길을 잘 못 들었으면 돌아가는 게 가장 빠른 답이다. 물론 위험하지 않은 곳에서...


삶도 그렇더라.     


앞서 걷던 한 여행자가 돌로 쌓은 난간에 올라 푸른 하늘이 가득한 골목과 고양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난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 눈으로 사진을 찍었다.


가만히 귀 기울여 그의 셔터소리를 들었다. 파인더를 통해 어떤 순간을 기록하고 있을지 상상하면서. 찰칵찰칵하는 셔터음을 촬영하는 그도 듣고 있을까? 오후의 이 골목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셔터음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여행을 기다리면서 퇴근길의 어느 터널을 지날 때, 인사동이나 삼청동 거리의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 터널의 건너편, 골목길의 모퉁이가 내가 꿈꾸는 여행의 어느 곳이길 늘 바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여기서 본 것과 닮은 들꽃 하나, 표지판 하나에도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골목이 오후의 낮은 해를 받기 시작하면 땅에 가까운 것부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지저분하고, 황량하고, 쓸쓸하고, 서늘한 골목도 얼굴에 불그스름한 빛을 받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길로 변한다.


시간과 빛이 부리는 30분의 마법이다.    


해가 지고 골목에 가로등이 깜빡이며 켜지는 순간, 이 골목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선 반복되는 매일이 지루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국의 땅에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고 행복하다니.


이 마음 기억해 두었다가 일상에서 꺼내봐야겠다.

다시 와카야마시로 돌아가는 기차가 출발한다.    





<미니 여행팁>

1. 오사카에서 ‘와카야마시’로 가는 전철을 탄다. (주유패스, 간사이쓰루패스 등 사용이 가능)

2. 와카야마시역에 하차하여 ‘카다’역으로 가는 열차 시간 확인 후 패스 구입(도미열차는 로컬열차로 카다역까지 모든 역에 정차하며 이동한다.)

3. 종착역인 카다역에 도착하여 도보로 ‘아와시마신사, 와카야마 카다 온천 가이게츠’ 방향으로 골목길을 천천히 걸으면 소도시 여행의 정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일본 소도시 드로잉 에세이-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더 보러가기- http://www.yes24.com/24/goods/638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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