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러 유럽에 간건 아닌데..17화

여행 안에 내가 꿈꾸는 여행이 있다

by 배종훈

고르드 가는 길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중세시대 산 위에 만들어진 도시 고르드는 멀리서 보면 돌산을 깎아 만든 마을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 시골 풍경은 어디나 비슷하다. 집집마다 아침을 준비하는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골목길을 걸어 내려가다 보니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사진 속에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늘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풍경이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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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끝을 살며시 덮은 안개도, 누군가의 창틀에 놓인 철 지난 산타클로스 인형도 늘 그리워하던 것들이었다. 내가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공간과 시간인 것 같다.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곳, 내 삶의 공간이 될 수는 없는 곳.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골목 끝에 닿았다. 낡은 가로등과 낮은 돌담 위에 올려둔 화분도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또 저만치 내 그리움이 안개 너머로 숨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언제나 여행 안에 내가 그리워하는 또 다른 여행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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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작아 성당 앞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표정이 밝아 보였다.

성당 옆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차를 시켰다. 카페는 고르드 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었고, 분위기는 동네 사랑방 같이 시끌벅적했다. 여행객은 우리 둘뿐이다. 낯선 동양인이라 그런지 은근히 관심을 기울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녀는 카페 옆에 있는 기념품점에서 스노우볼을 사왔다. 여행 때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스노우볼을 모은다고 한다. 아마도 스노우볼은 그녀가 여행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매개체인 모양이다.


여행의 순간을 기록하는 방법은 사진부터 그림, 영상, 엽서, 메모, 기념품 등 다양하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동원한다해도 그 순간을 온전히 담아둘 수는 없다. 그러기에 또 다시 떠나는 거겠지.


스노우볼을 흔들어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눈이 소복이 내리는 고르드의 모습이 벌써부터 아련하다. 여행을 마치고 난 후 어느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고르드의 느긋한 아침을 그리워하고 있을 내 모습이 보였다.


어쩌면 스노우볼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그녀도 많이 그리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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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드를 빠져 나오면서 왼쪽 사이드미러를 봤다.

고르드의 전경이 미러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모퉁이를 돌아서면 고르드는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될 것이다. 아쉬움이 한없다. 늘 이런 식이다. 슬프고 아쉬울 걱정에 뒤돌아보고 버리지 못한 채 미련을 남긴다. 그런 내 모습이 싫어 일부러 속도를 내 빠져나오려는데 그녀가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백미러에 언뜻언뜻 보이는 고르드가 너무 예뻐서요. 여기서 사진 한 장만 더 찍고 가요. 괜찮죠?”


어쩐지 내 마음을 들킨 기분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 그래요. 저도 뭔가 아쉬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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