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학군사관후보생)의 추억
대학 3학년 학군단에 입단해 첫 훈련을 받을 때의 일이다. 처음으로 하는 군사훈련은 재미있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다. 훈련이 시작되고 사흘째 되는 날 새벽 불침번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심한 배탈이 났다. 되도록 근무시간이 마칠 때까지 참아보려 했으나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불침번 근무자가 두명이니 내가 화장실을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워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료에게 사정을 말하고 화장실을 다녀왔고 돌아오니 당직 훈육관이 순찰을 하다가 근무자가 자리를 비운 것을 보고 화장실을 다녀오면 훈육관실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훈육관의 질책은 심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근무자가 어떠한 이유든 자리를 이탈하면 안되는데 지금이 전시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나를 매우 이기적인 성향을 지닌 후보생으로 기억해 두겠다고 했다. 그때 생각에는 모든 훈련과 규칙이 전시를 대비해 하는 것이라지만 작은 실수 하나에 너무 큰 낙인을 찍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후보생과정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면 잘못된 낙인을 스스로 인정하고 영원한 흉터로 남겨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보생과정을 마치고 장교로 임관하는 날까지 스스로에게 가혹할만큼 규정을 준수하고 공동을 위한 행동이 무엇일까를 먼저 생각하려 노력했다. 처음에는 훈육관의 성급한 판단이 옳지 않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시작했으나, 시간이 지나 2년차 후보생이 되고 후배에게 모범을 보여야하는 위치가 되면서부터 훈육관의 냉정한 질책이 내게 큰 약이자 밑거름이 되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임관 후 다시 학군단을 찾았다. 소대장의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이런저런 군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 길에 훈육관이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이제야 하는 이야기지만, 내가 기초군사훈련 때 자네에게 했던 말 기억하나? 자네를 매우 이기적인 후보생이라고 생각하며 지켜보겠다라고 했던 것 말야.”
“네, 훈육관님 기억하시네요. 처음 들었을 땐 너무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그 말씀이 제 행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어 지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가? 하하하. 내가 자네를 성급하게 판단했음을 오래전에 인정했네. 좀 늦었지만 내가 성급했어. 미안하네. 자네는 훌륭한 장교의 자격을 갖추었어.”
나는 뭉클한 감정에 약간 목멘 소리로 경례를 하고 웃으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