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러 유럽에 간건 아닌데...21화

by 배종훈

나는 바르셀로나 해변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을 그리기도 하고 정박해 있는 요트를 그리기도 하면서 그녀와 다시 만나기로 한 저녁시간을 기다렸다. 그녀는 파밀리아 성당에서 찍은 재미난 표정의 셀카 사진을 내게 보내왔다. 나는 스케치하고 있던 그림을 찍어 보냈다. 이내, 성당과 람블라스 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그녀의 투정어린 문자가 도착했다.


아직도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 커피라도 마셨느냐, 시시콜콜한 문자도 뜨문뜨문 날아왔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는 그녀의 마음 씀씀이가 그대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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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으로 넘어오면서부터 그녀가 나를 꽤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여행하는 동안 그녀는 자동차 안에서 한 번도 중앙 콘솔박스에 팔을 올리지 않았다. 자세를 고쳐 앉으면 오히려 문 쪽으로 몸을 기댔다. 간식은 늘 챙겼지만 내 손이 닿는 곳에 올려두는 정도였고, 굉장히 졸려 보이는데도 절대 잠들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내가 팔을 올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콘솔박스를 팔걸이로 쓰기도 하고, 초콜릿이나 오렌지 껍질을 벗겨 직접 내 손 위에 올려주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한 시간은 자야 한다며 의자를 젖히고 잠들기도 했다.


여행의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와 나는 한결 스스럼없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채화 캔버스에 물감이 스미듯 어느 결엔가 서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두렵거나 혹은 아쉬운 마음이 겹쳐지고 엇갈렸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1m 정도로 간격을 유지하세요.’ ‘두 사람 사이에서는 30cm 이하로 간격을 유지하세요.’ 관계에 따른 알맞은 거리를 조정해 주는 어플리케이션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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