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배신하지 않는다

by 배종훈

예약한 파리의 아파트는 1층에 중정을 갖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었다. 낡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지만 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그런데 리셉션이 함께 운영하는 호텔 안에 있는데 아파트와의 거리가 꽤 멀었다. 자동차를 호텔 주차장에 보관하고 우산도 없이 다시 돌아오는 길은 다른 유럽의 도시들과 달리 기분을 쳐지게 만들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유럽의 도시에선 왠지 비를 맞아도 괜찮아, 여행이 아니면 언제 그래 보겠어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파리의 비는 우울하고 쓸쓸했다. 한 번 상처를 입으면 절대 완전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 해는 짧아 강변과 골목을 조금 돌아다녔는데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퐁네프 다리를 다시 건너다 다리의 중간 쯤 난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벤치에 앉아 물들어가는 파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연인이 있었다. 여행 가방을 옆에 둔 남자와 가벼운 차림의 여자는 애틋하게 서로를 안고 있다. 멀리 떠나는 남자와 파리에 남은 여자인지, 함께 이별을 앞둔 마지막 여행을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보는 사람을 너무나 아프고 쓰게 했다. 어쩌면 내가 저들보다 더 아픈 것 같기도 했다. 아무 이유도 모르지만 두 사람의 시간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별 이유도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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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물건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내 사랑은 지나고 보면 늘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상대에게 끌려 애틋해지고 그리워지고 매일 만나고 싶어지면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성급하게 꿈꿨다. 내 모든 시간과 꿈을 기꺼이 맞추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언제나 나 홀로 낯선 곳에서 찬바람을 맞고 서 있었다. 얼굴과 가슴에 몰아친 흙바람도 사랑을 위한 시련이라 여기며 미련하게 견디며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인 일이었는지는 한참 뒤 깨달았다. 온몸이 모래에 파묻혀 더 나아가지 못할 때가 되어서야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보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난 단 한 번도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고 억울하지도 않다. 결실은 맺은 사랑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혼자만 영원한 사랑이라 믿고 애태웠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사랑은 온전히 아름답다. 사랑이라는 그 마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겁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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