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타 알타를 둘러싼 성벽을 빠져 나오니 멀리 베르가모 평야와 치타 바사가 중세의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한참을 해가 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도시를 싸고 있는 외벽 길을 따라 다시 천천히 하부 마을인 치타 바사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 남겨 두었던 계단으로 된 골목길이었다.
골목에 어둠이 내리면 땅에 가까운 것부터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한다. 지저분한 거리, 황량한 거리, 쓸쓸하고 서늘한 거리도 자신의 다리 부분은 어둠 속에 숨기고 얼굴에 불그스름한 빛을 받으면 따뜻하고 아름다운 거리로 변한다. 골목이 가장 따뜻해지는 시간은 어쩌면 해가 지고 어둠이 허리까지 차오르기 전 30분이 아닐까? 이 순간, 이 골목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 안에선 반복되는 매일이 지루하고 벗어나고만 싶었는데 이국의 땅에선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모습이 아름답고 행복하다니 내 줏대 없는 마음에 피식 웃음이 났다.
프랑스의 인상파 작곡가 드뷔시는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1890년경 피아노 모음곡인〈베르가마스크>를 작곡했다. 그가 유학 중이었을 때 베르가모 지방에서 받은 인상을 로맨틱한 감성과 풍부한 감각으로 피아노 선율에 담았는데 모음곡은〈전주곡>,〈미뉴에트>, <달빛>,〈파스피에>의 4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구름에 가린 은은하고 환상적인 달빛은 당장이라도 누군가가 피아노로 <달빛>을 연주해 줄 것 같았다. 하루 뿐인 베르가모의 밤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