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의 일출과 새벽에 취해 아직은 어두운 광장에서 서성이다가 론다에 예약해둔 호텔을 취소할 수 없어 시동을 걸었다. 나는 여행에서 너무 마음에 드는 곳을 만나거나 또는 마음에 들지 않은 곳을 만났을 때 경로와 일정을 쉽게 변경하기 위해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론다의 숙소는 위치도 가격도 모두 좋아 미리 해두었는데 피카소 미술관만 살짝 보고 지나치려던 말라가의 광장에 이렇게 끌릴 줄은 몰랐다. 하지만 론다의 숙소를 취소하고 말라가의 숙소를 당일 예약하기엔 출혈이 너무 컸다. 다시 올 이유를 남겨둔다는 마음을 먹고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자동차가 달리는 중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점점 거세졌다. 차창과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아주 컸다. 음악을 크게 켜고 속도는 조금 늦추었다. 비가 내려 론다로 가는 길이 오래전 다녀온 낯익은 곳처럼 느껴졌다. 구불거리는 산길은 미끄러워 속도를 더 늦출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