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 외곽에 있는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짐 정리를 마쳤다. 오른쪽으로 프리오 강이 흐르는 곳에 위치한 캠핑장은 유럽 대부분의 캠핑장과 같이 연두색 잔디가 카펫처럼 깔려 있어 텐트 안에 별도 매트를 깔지 않아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저녁 10시에 캠핑장 차량 출입구를 닫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늦어도 9시 30분까지는 돌아오기로 했다. 보안을 위해 캠핑장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략 여름에는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에는 차량이 들어와야 한다. 야간에 취침하는 사람들을 위해 차량 소음과 라이트 이용 등을 제한하기 위해서이다.
세고비아 대성당 뒤편 시장에는 다양한 과일과 기념품, 여름용 옷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북적거리는 시장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일행을 내려주고 골목길을 내려가 알카사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혼자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림동화>는 독일의 언어학자인 그림형제가 전설과 민담을 집대성해 펴낸 것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다. 그 <그림 동화>의 이야기 중 월트 디즈니가 만화영화로 만든 <백설공주>의 성의 모델이 바로 이곳 알카사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 동화는 거의 대부분이 <안데르센 동화>가 아니면 <그림동화> 일 것이다. 그림형제 중 형 야콥은 자존심이 강해 수집된 설화를 변형하는 것은 민족의 자산을 훼손하는 것이라 여겨 <그림동화>의 초판은 잔인하고 외설적인 설화 그대로 출판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동화〈백설공주>는 끔찍하고 반인륜적인 내용으로 가득했는데 대표적으로 백성공주를 독살하려고 하는 인물이 계모가 아니라 친모라는 것만 들어도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결국 동생 빌헬름은 2판부터는 문제가 되는 내용을 수정해 외설적인 묘사를 비롯해 근친상간, 변태성욕, 식인 등의 이야기는 모두 삭제했고 그렇게 대대적인 수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최종판이 나오게 되었다.
알카사르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성’ 또는 ‘궁전’을 의미하는데 아랍어에서 유래했는데 스페인의 여러 도시에서 같은 이름의 성을 볼 수 있다. 세고비아 알카사르는 아랍의 요새가 있던 자리에 까스띠야 왕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성을 증축해 완성되었는데 성을 보면 누구든 이 자리에 군사적 요충 시설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은 당장이라도 백설 공주가 창가에 서 있을 것처럼 동화 속, 만화 속 모습 그대로였다. 성 아래 멀리 펼쳐진 평야로 말을 탄 기사들이 달리고 옹기종기 붙은 마을엔 연기가 피어오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궁의 내부는 사실 그저 그랬다. 중세시대의 무기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는 군사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다리 하나만 끊으면 세상과 단절되는 궁에는 잠시나마 시간을 초월해 동화의 세계에 다녀온 것 같은 상상의 공간이 펼쳐졌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실망으로 서둘러 성에서 빠져나왔다. 다리를 건너며 돌아본 성과 하늘, 평야는 다시 동화의 순간이다. 차라리 밖에서 성을 바라보며 한참 상상에 빠져 있는 것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래도 아직은 내게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 들어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더 이상 놀랄 것도 기대할 것도 없어지는 것 같다. 내가 믿고 있었던 무언가가 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동화나 소설, 영화에 공감해 자신을 투영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고 아낀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내게서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에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늙어버린 자신을 마주하는 날이 아닐까? 다시 기대하고, 무너지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생이 아름답지 않을까? 나를 흔들어대는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왔지만 나를 흔들고, 넘어뜨리고, 배반한 삶을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 여기고 타협해 살아왔다면 내 생이 행복했을까?
내가 여행을 떠나며 다짐한 더 이상 흔들리고 싶지 않다는 각오의 모습이 뒤를 돌아보며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무엇에도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 같은 강력한 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늘 기대하며 믿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무너져도 다시 쌓고 앞으로 나아가는 나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요새와 같은 멘틀을 만든다면 분명 상처 받진 않을지 몰라도 성 안에는 홀로 살아야 할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삶은 모두와 어울려 살아가는 시장과 같은 삶에서 그 안에 있는 내 모습을 흔들리지 않고 인정하고 스스로 믿는 것임을 알았다. 다리의 끝에서 다시 알카사르를 돌아봤다. 난 어쩌면 정말 마법의 성에 다녀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수도교와 세고비아 구시가지가 멀리 보이는 골목길에 주차를 했다. 서울이든 유럽이든 주차는 항상 골칫거리다. 특히 현지 사정을 모르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정식 주차장을 찾는 것이 여러모로 마음 편한 일이지만 여행이 길어지면 주차비가 주유비나 도로 통행료보다 높아지면서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관광지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무료주차장을 찾거나 마음 졸여가며 골목 어귀에 주차하고 벌금 딱지를 떼이거나 견인되지 않기를 바라며 여행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엔 벌금 영수증을 받거나 견인되어 몇 배의 고충을 겪고 나면 다시 정식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벌금도 내보고, 견인도 되어 봤지만 주차장 앞에 세워진 살인적인 주차비용을 보고 나면 무료 주차의 유혹이 다시금 살아난다. 오늘 저녁도 골목가에 길게 늘어선 주차 행렬을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오늘은 행운이 가득한 날이길 무작정 바라면서 말이다.
광장을 가로질러 있는 수도교는 2000여 년 전, 기계장비나 측량장비 하나 없이 무거운 돌을 나르고, 정확하게 경사를 계산하고, 아무런 접착제 없이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다리이다. 우리가 텐트를 친 캠핑장 옆의 프리오 강물을 세고비아로 끌어오는 수도시설인데 서기 50년경 로마시대의 건축물이 거의 훼손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참 대단했다. 알카사르와 고딕 성당이 있는 구시가지, 수도교가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나는 항상 오래된 건축물을 보면서 그 건축물의 규모나 가치, 역사적 의미보다는 선조의 유산을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지켜오는 후손의 노고에 놀란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사람은 아슬아슬하게 벽 틈에 붙어서야 하는 좁은 중세시대의 길이나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오래된 건물에 살면서도 집을 새로 짓는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경이롭다. 무엇이든 편하게, 빠르게를 우선의 가치로 두어 불편하고 느린 것을 없애는 내 삶의 터전이 안타깝다. 구시가를 그대로 유지하며 신시가지를 발전시키는 효과적인 선택은 없었을까 궁금해진다.
광장과 수도교의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연인이 큰 피자 한판을 사이에 두고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앉은 남자에게 여자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양한 표정 변화와 손짓을 더해 열렬한 설명을 하고 있지만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남자는 계단 끝에 장식된 석상처럼 보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늘 행복하고 실수하지 않고 불편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것이 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 연인에게, 학생에게, 동료나 후배에게, 때론 선배에게 충고나 조언의 말을 꺼내 든다. 그 시작의 마음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안다. 하지만 이해하고, 고마워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에 대한 타인의 이야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 스스로 조언을 구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의 오해와 편견이 느껴지는 순간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 이전에 오롯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상대의 주관적 판단이 불편한 것이다.
내가 그렇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거나 독불장군처럼 고집을 피우는 것은 아니지만 되도록 다른 이에게 내 결정에 대한 의견을 구하지 않는다.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과 행동은 스스로 내린다. 그것이 때로는 소통이 부족한 사람, 자신의 속내를 보여주지 않는 사람, 다른 이에게 무관심한 사람으로 비치지만 그것이 어쩌면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고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한다. 조언이나 충고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말이 주는 상처는 물리적 폭력의 상처보다 깊고 아프며 치유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조언을 듣기를 부탁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으려 한다. 상대가 부탁을 한다고 해도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열해 줄 뿐이다.
어떤 말이든 하지 않을 때보다 좋은 것은 없다.’ 내 대인관계의 원칙 중 하나다.
수도교 광장의 유명한 식당을 예약하고 자리를 잡았다. 해가 지고 하늘의 석양도 사라질 때쯤 광장 주변의 가로등이 켜지고 저녁식사 손님을 받는 카페와 레스토랑 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노천에 길게 펼쳐진 테이블에 앉아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의 향토 음식인 ‘코치니요 아사도(새끼돼지 통구이 요리)’를 주문했다. 음식에 민감하지 않아 맛집 탐방 등을 즐기지는 않지만 여행에서 그 지역의 대표적인 요리를 먹을 기회가 있다면 빠뜨리진 않으려 한다. 어린 돼지를 통째로 구운 요리로 머리 부분도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다소 놀랍기도 했다. 워낙 연해서 고기가 나오면 종업원이 접시로 고기를 해체해 주고 사용한 접시를 깨버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한다. 와인을 곁들인 고기는 정말 부드러웠다. 그날의 여행을 마치고 일행들과 모여 앉아 나누는 여행 이야기와 각자가 촬영한 사진을 돌려보는 시간은 항상 즐겁다. 특히 세고비아의 저녁 풍경은 너무 아름다워 여행의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아쉬웠다. 와인과 가로등 빛으로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일행들과 마지막 잔을 부딪칠 때 누군가가 던진 한마디가 그날의 저녁을 두고두고 기억나게 했다.
세고비아 광장에 저녁에 앉아 있는 것은 위험해.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