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를 만나러 내가 왔다네

by 배종훈

빛과 색, 해바라기 등으로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고흐를 알기 전에는 프랑스에 있는 작은 도시 아를은 들어본 일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인상주의와 고흐의 작품에 빠져들면서 아를은 내 그림 여행의 대표 도시가 되었고 떠올리기만 해도 이유 없이 두근거리는 장소가 되었다.


20여 시간에 달하는 경유 비행 후 파리에 도착. 바로 자동차를 렌트해 약 1,000여 킬로미터를 달려 늦은 오후에 아를에 도착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아를은 상상 속의 풍경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색 바랜 건물들과 광장의 회전목마,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잠시 스쳐가는 자동차 안에서 봤을 뿐인데도 애틋하게 기다려 온 연인을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미리 예약한 호텔에 주차만 한 채 짐도 내리지 않고 드로잉북과 펜, 카메라만 챙겨 광장으로 뛰어나왔다.


점점 떨어지는 태양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 걸음이 빨라지다가 거의 달리기를 했다. 처음으로 찾은 곳은 시내에 진입해서 봤던 회전목마가 있는 광장이었다. 낡고 볼품없는 작은 목마가 빙글거리며 돌아가는 광장의 풍경은 영화나 동화 속 장면의 한 순간처럼 보였다. 광장이 잘 보이는 길 건너편 노천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스물일곱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된 남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평생 39점의 자화상을 남겼다.

고흐는 4개 국어에 능통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지식인이었으며, 정말 그림에 미쳐버린 천재 화가였다. 그가 파리에서 아를로 거처를 옮긴 것은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일본 미술에 심취했던 그에게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는 ‘아를의 햇빛이 일본과 비슷하다’는 말을 한 다음이었다. 물론 궁핍하고 피폐해진 파리 생활과 화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그의 꿈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를에서의 생활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동생 테오가 보내주는 돈으로 겨우 생활을 했지만 캔버스 가득 아를의 태양을 칠했고, 밤에는 압생트라는 싸구려 술을 마시며 아를의 별을 스케치했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며 또는 고갱과 함께 다녔을 길을 따라 걸어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니 로마 시대에 지어진 커다란 원형경기장이 보였다. 경기장은 나지막한 언덕 위에 커다란 몸집을 웅크리고 앉은 것처럼 있었는데 약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건물이었다. 로마의 콜로세움에는 부족하지만 경기장에는 무려 60여 개의 출입문이 있어 과거 이 건물을 바라본 사람들이 느꼈을 장대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고흐가 아를에 살았을 때도 원형경기장은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했다. 특히 이 경기장은 부활절 축제 기간에 열리는 페리아 때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데 이 기간에는 밤낮으로 도시가 축제의 물결에 휩싸이고 특히 투우가 이 원형경기장에서 열린다. 고흐가 살았던 때에도 투우가 열렸고 그는 이 투우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그린 <구경꾼들>이라는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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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바로 앞이 레퓌블리크 광장이었다. 원래는 로마의 온천으로 개발되었던 곳을 광장으로 만든 것이라는데 특이하게도 광장의 중앙에 높은 오벨리스크가 하늘로 솟아 있었다. 이 오벨리스크는 17세기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인근 로마 유적지에서 이리로 옮겨 세워졌다고 한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골목을 조금만 걸으면 고흐가 발작을 일으켜 입원한 정신병원인 에스파스 반 고흐가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예전 모습이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마당에는 고흐가 그린 병원의 모습이 인쇄되어 있는데 그림과 실제 풍경을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실제 그림 속 풍경과 같은 위치는 2층으로 올라가서 봐야 한다. 볕이 잘 드는 기둥에 기대 그림을 그리는 여행자의 모습에서 고흐가 병원 정원에서 스케치를 하고 붓을 들었을 모습을 떠올렸다. 이 정신병원을 이야기하면서 고갱을 빼놓을 수 없다. 1888년 고갱은 아를을 찾아 반 고흐를 들뜨게 했지만 10주도 채 안 되는 그들의 동거는 심한 다툼과 자신의 귀를 자르는 고흐의 유명한 일화만을 남기고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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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40의 날씨가 계속되기에 고스란히 햇볕을 견디며 걸어 다니기 힘들지만 고흐의 그림처럼 소용돌이치는 자연과 들판을 가득 메운 해바라기, 햇빛을 담은 화려한 색채를 즐기기엔 제격이다. 또 고흐의 표현대로 ‘창백한 유황빛으로 반짝인다.’는 아를의 태양과 별이 쏟아지는 밤의 론강은 고흐의 자취를 따라온 여행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프로방스의 바람인 미스트랄로 인해 고흐의 그림 속 자연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그려졌다고도 하는데 실제 바람이 부는 계절의 풍경은 일면 설득력을 갖게도 한다. 또 어떤 이는 그가 환각 상태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하지만 반 고흐의 그림 속 실제 풍경을 아를에서 직접 대면한 사람이라면 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은 고흐의 정신은 누구보다 맑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론강을 둘러보고 다시 고흐의 밤의 카페로 갔다. 낡고 빛바랜 붉은색이 많이 쓰인 카페 내부는 쓸쓸했다. 점원으로 보이는 두 여자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자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커피 한잔을 시켜두고 이층과 카페 여기저기를 둘러봤지만 고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흐가 수시로 찾아왔을 때도 그저 평범한 동네 카페고 술집이었을 그곳에 아무런 특별한 점이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억지스럽게 붙여 놓은 조잡한 고흐의 그림 포스터가 여기저기 벽에 붙어 있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과거 유명한 누군가나 영화 등의 행적을 따라 찾은 여행은 실망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책에서 읽으며 느낀 감동과 상상, 스크린의 멋진 영상의 순간을 기대하고 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부분 조작된 상상이고 영상이라는 것을 현장에서 직면하고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의 상상 안에 아름답게 저장된 영상을 다시 실제 위에 얹어 더 아름답게 구성하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를은 언제고 다시 오고 싶은 도시다. 고흐와 관련 없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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