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 하면 우선 무엇이 떠오를까? 뭐니 뭐니 해도 소설 <별>이다.
루베롱 산 목장에서 홀로 양 떼를 돌보는 양치기 소년은 점심 나절에 내린 소나기로 강물이 불어나 마을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아름다운 주인집 딸 스테파네트와 밤을 지새우게 되는데 이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와 비슷한 감수성으로 오랫동안 내게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멀리 언덕 위에 빛바랜 빨간 지붕 풍차가 조그맣게 보였다. 파란 하늘 밑에 붉은 풍차. 애틋한 풍경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는 내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이었다. 풍차는 작은 산을 공원으로 만든 곳에 있었는데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시야가 탁 트인 곳에서 들을 내려다보고 서 있었다. 바로 이 풍차가 알퐁스 도데의 작품 ‘별’에 등장하는 장소로 도데가 실제로 이 풍차가 있는 언덕에 올라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풍차 방앗간 편지>는 알퐁스 도데의 첫 단편 소설집이자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1866년 ‘레벤 망’ 지에 <프로방스의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12편의 글과 1868년 <피가로> 지에 연재한 12편을 모아 1869년에 출판한 것으로,24편의 단편들은 대부분 프로방스의 인물, 풍경, 날씨, 풍속, 민요, 전설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풍차 방앗간의 여러 상황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방앗간에 입주하는 날>을 시작으로 아비뇽 유수 시대의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교황의 노새>, 시인 미스트랄을 통해 프로방스어와 이곳의 소박하고 자유로운 주민의 생활을 생생히 전해주는 <시인 미스트랄>, 16세기 중세 가톨릭 교회의 부패함을 비판하는 <고셰 수사의 불로장생 주>와 같은 단편을 다양한 구성 방식으로 표현해 프로방스 사람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생활상과 싱그러운 풍경까지 아름답게 묘사했다. 특히 프로방스의 순진한 청년 장의 비련을 그린 <아를의 여인>은 후에 3막의 연극으로도 상연되었으며, 오페라 작곡가 조르주가 아름다운 곡을 붙여 더욱 유명해졌다.
풍차 옆에 앉아 도데의 <별>을 검색했다. 단편이라 다시 읽기에 부담이 없었다. 어린 시절 지나치듯 읽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자연을 사랑한 도데가 바라보는 비 온 뒤의 싱그러움, 산과 들판의 풍경, 별이 쏟아지는 밤 풍경 등을 다시 읽으니 그림 그리듯 섬세하게 눈 앞에 펼쳐지는 기분이었다. 특히 숲의 밤 풍경은 너무나 생생해서 낮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요정처럼 일어나 움직이듯 그려져 있었다. 어린 목동과 그의 어깨에 기대 잠든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기분, 그들의 꿈같은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결국 살아보지 않은 삶과 시간에 공감하는 일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짧은 소설의 내용도 어린 날에는 이게 왜 감동적이지? 그래서 둘이 어떻게 됐다는 거지? 하는 정도의 의문이 전부였다. 학생들에게 소설을 읽어주고 양치기와 스테파네트 아가씨의 감정에 대한 설명과 도데의 표현력을 열강 하셨던 국어 선생님의 수업에 시큰둥했었던 내가 눈앞에 떠올랐다. 15년 정도를 살아온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세상은 울고 웃는 더 긴 시간을 지난 다음에야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인생은 공부로 배울 수 없다. 서른, 마흔, 쉰, 예순이 되어야만 자물쇠가 열리는 일들과 감정이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애틋하고 복받치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생에게 다시 도데의 <별>을 가르치고 있다. 예전 나를 가르친 국어 선생님이 하신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제야 그 시절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 알아가고 있다.
한 겨울의 퐁비에유는 우리나라 늦가을 정도의 기온이었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을 벗어날 수는 없는지 모든 것이 쓸쓸해 보였다. 해가 서둘러 떨어지는 오후, 너무나 작은 언덕, 작은 풍차 앞에 서 있다. 그 빛나는 노을을 온몸으로 맞고 있음에도 초라한 풍차 주변을 한 바퀴 빙 돌아봤다. 뼈대만 앙상한 풍차의 날개 사이로 강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데가 이 자리에 왔을 때도 이미 풍차는 멈추어 있었다고 하니 그나마 도데로 인해 생명을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