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상프로방스 미라보 광장의 첫인상은 회전목마와 따뜻한 햇살, 그리고 길게 늘어선 플라타너스였다. 광장과 거리를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세잔과 에밀 졸라의 단골 카페였던 '레 뒤 가르송'을 찾았다. 졸라와 세잔의 초상이나 그림으로 장식된 실내를 잠시 둘러보고 햇살이 비치는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플라타너스 사이로 내리쬐는 오후 햇볕이 너무나 좋다. 세잔도 카페 어딘가에 앉아 이런 순간에 행복을 느꼈을 거라 생각하니 이 공간에서의 커피 한 잔, 식사 한 접시가 더욱 즐거웠다. 볕이 좋다는 핑계를 대며 커피를 한 잔 더 마셨다.
1901년 세잔은 엑상프로방스 외곽에 땅을 사서 무화과와 올리브를 정원에 심고, 직접 설계도를 그려 건물을 지었다. 그리 크지 않은 이곳에 들어서면 먼저 뒷마당으로 난 큰 유리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방의 한 면이 모두 유리창이라 해도 될 정도의 큰 통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고 있으니 세잔이 아니라도 이 자리에는 커다란 창을 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채광 좋은 아틀리에에서 세잔은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 하나를 두고 그것이 썩을 때까지 그렸다.
지저분하게 물감이 묻은 세잔의 작업복과 손때 묻은 캔버스들, 그리고 조금 전까지 그가 그렸을 것만 같은 과일과 바구니가 그대로 테이블에 놓여 있다. 세잔은 갑자기 생긴 에밀 졸라와의 점심 약속으로 자리를 비우고, 나는 간발의 차로 그롤 놓쳐버린 손님처럼 할 일 없이 그의 빈 아틀리에를 둘러봤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캔버스 대여섯 개와 벽화를 그릴 때 사용했을 것 같은 사다리,세월이 묻은 이젤과 생김새가 제각각인 의자, 금방 벗어놓은 듯 벽에 걸린 외투, 그리고 평소에 그가 즐겨 쓰던 모자와 지팡이까지 세잔의 아틀리에는 10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창 아래로 정원이 내려다 보였다. 세잔은 아틀리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스스로 가꾼 정원에서 보냈다고 하는데 좁다란 산책로와 그가 앉았을지 모를 무심한 벤치가 곳곳에 남아 있다. 세기의 예술가 세잔의 조각품도 이 정원에서는 마치 그가 심은 나무 한 그루, 손때 묻은 의자만큼이나 정원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세잔 아뜰리에 마당은 겨울의 기운을 그대로 품고 있었다. 낙엽이 가득한 바닥에 놓인 철제 의자는 더 차갑고 쓸쓸한 풍경을 만들었다. 아뜰리에 건물을 둘러싼 작은 산책길을 걷기도 하고 세잔과 관련된 영상이 상영되는 미디어실에 앉아 짧은 홍보 영상도 살펴보지만 세잔의 흔적을 찾아온 여행자의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진한 붉은색으로 변하고 있는 엑상프로방스의 해 질 녘 풍경이었다. 세잔도 매일 이 순간을 보며 하루를 마감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그림을 그렸겠지.
아틀리에는 1906년 세잔의 죽음 이후 15년 동안 닫혀 있다가 마르셀 프로방스라는 사람이 세잔의 아들에게서 사들였다. 하지만 그가 죽은 후에는 이곳이 훼손되는 것을 걱정한 사람들이 모여 세잔 기념회를 설립했고 집을 매입한 후 엑상프로방스 마르세유 대학에 기증했다. 그리고 1969년 이후부터 엑상프로방스 시의 소유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엑상프로방스에서는 세잔의 생가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두 채의 집, 미술을 배웠던 학교와 평소 그가 즐겨 갔던 미라보 거리의 카페 레 뒤 가르송, 그가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와 그의 장례식이 치러졌던 교회, 세잔 아버지의 소유였고 한때 그도 근무했었던 은행과 세잔의 부인과 아들이 살던 집, 세잔 어머니의 아파트, 심지어 세잔 할머니의 집까지 찾아가 볼 수 있다.
해가 기울고 있는 거리 풍경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다. 해 질 녘 여행지에서 건물의 반은 어둠으로 반은 노랗게 물들고 있는 풍경에 넋을 놓고 걸으면 얼마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추고 또 멈추게 된다. 거리 바닥에 표시된 세잔의 표식을 찾아보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다시 미라보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그렇게 또 여행자의 하루가 깊어지고 그리움이 눈을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