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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Nov 29. 2019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 흐르는 절 , 보은 법주사

#1

짙어진 가을, 오랜만에 팔상전과 미륵불이 나란히 선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의 현생의 이야기를 품은 절집을 앞에 두고 미래에 찾아올 미륵불이 뒤에 선 모습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에게 그 모습 그대로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다.


24시간을 기준으로 어제, 오늘, 내일을 과거, 현재, 미래라 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구별하여 그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편의상 나눈 세 시간대를 동시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결국은 지금 이 순간이다.


노랗게 변한 잎이 가을 볕을 받아 더 밝게 빛났다.    


#2

경내를 산책하다가 잠시 자리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사람들 중 한 중년의 남자분이 내 곁을 지나치며 밝은 웃음과 인사를 건넸다. 갑작스런 인사에 엉거주춤 일어서 목례로 답했지만 내 표정은 그분처럼 밝은 미소는 담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참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평소에도 그리 살가운 성격은 아니었지만 동생의 사고로 내 마음은 더욱더 차가워졌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차가운 마음을 낯선 누구에게 따뜻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 문제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에게 나를 보여주는 것을 왜 스스로 금기하고 있을까? 단단히 닫힌 문 앞에 선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앞서 가던 남자분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돌아보고 다시 웃었다. 나도 어색하지만 웃음을 지으며 합장인사를 했다. 얼떨결에 한 인사가 이상하게 기분을 즐겁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웃음이 내 차가운 마음 어딘가를 조금 녹인 것 같았다. 


#3

무슨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엽서를 사고 싶었다. 요즘은 엽서를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법주사의 풍광이 담긴 빛이 바랜 사진 엽서 몇 장을 겨우 찾았다. 어머님께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샀는데 첫 엽서를 받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온 여행에서 나 스스로에게 보낸 위로의 엽서를 돌아가 일상의 순간에  받는다면 언제든 따뜻한 감정을 느꼈던 이 순간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고 지칠 때, 동생이 그리워질 때,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이 보고 싶어질 때, 엽서를 보면 언제든 법주사의 이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예불을 앞두고 치는 법고 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리면서도 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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