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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Jul 23. 2020

퇴근 후 절에서 하룻밤

틈.

사람이든, 일이든 틈이 있어야 안정감이 있다.


빈틈없이 완벽한 사람이 주는 거리감과 답답함이 그렇고, 틈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업무의 효율성을 계속 저하시킨다. 나는 이것저것 해야하는 많은 일로 어쩔 수없이 더 완벽함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다보니 일상도 쉬는 시간, 잠을 줄여가며 꾸려왔다. 그리고 한 두 달에 한번은 어떻게든 작은 틈을 만들고 그것을 여행으로 채웠다. 뼈와 뼈 사이의 연골처럼 여행이 삶을 삐걱거리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내 작은 일상의 틈을 빼앗아 버렸다. 틈을 메운게 아니라 빼앗은 것이다. 틈이 생겨도 여행으로 채울 수 없으니 그냥 남은 시간은 오랜 시간 몸에 익은 질서를 무너뜨렸다. 그것은 증상이 심해져 번아웃 증상까지도 몰고 왔다.

더 견딜 수 없는 순간, 비교적 안전한 여행을 찾아냈다. 그것은 홀로 떠나는 산사 템플스테이였다. 이왕이면 멀리 가고 싶은 생각에 충청 이남 지역을 찾다가 경주가 떠올랐다. KTX로 접근하기도 쉽고, 가까이에 바다도 있고, 가벼운 트레킹도 가능한 곳. 적절한 위치에 '기림사'가 있었다.


바로 기림사 템플스테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고 예약을 마쳤다. 가능하면 1인실을 부탁하려 했는데 코로나 상황으로 가족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1인실을 배정한다는 말이 반가웠다. 템플스테이가 아니라 단순히 여행으로 생각해도 5만원에 1인실 숙박과 3번의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 있을까?


퇴근하고 서울에서 KTX타고 2시간, 경주역에서 쏘카(렌터카)로 30분을 달려 말그대로 순식간에 경주 기림사 경내에 들어섰다. 간단한 사찰 이용 규칙을 듣고, 숙소로 이동했다.


흙길을 걸을 때 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흙을 밟는 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기분을 좋게 만들었던가? 계속 걷고 싶단 생각이 들어 숙소 주변 자갈길도 한참 서성이다 방으로 들어갔다.


선풍기와 작은 탁자, 베게 하나, 요 하나, 이불 하나가 전부인 방이 좋았다. 빈 바닥에 드러누워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좋았다. 오랜만에 내 틈이 말캉말캉한 여행으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만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인공으로 만들어진 소리는 없는 곳이었다. 방 밖이 보이는 벽에 기대 앉아 멍하니 있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자유여행에 깊이 빠져 들 것만 같다.





관련 영상 바로가기 https://youtu.be/5XQ2do-Cv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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