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러 유럽에 간건 아닌데..9화

또 조급해지면 안돼

by 배종훈

구교황청은 생각보다 넓었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여유가 없다. 교황청 건물 내부를 모두 둘러보고 생베네제 다리에 들렀다가 아비뇽 구시가 골목에서 시간을 보내려면 시간이 빠듯하다. 휴게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 서둘러 마시려다가 멈칫 했다.


모퉁이에 놓인 무심한 나무벤치가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늘 무언가 조급해하는 내 모습이 쑥스럽고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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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일정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여행자이기에, 어쩌면 여유가 없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은 빠듯한 생활을 멈추고 여유를 찾고자 온 것이 아닌가.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를 다시 생각해야지.

여행에서조차 일정에 쫓겨 종종대지는 말아야지.

나는 부러 한 걸음이라도 느리게 걷고, 커피도 천천히 들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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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두어 번 지나고 성벽을 벗어나니 멀리 생베네제 다리가 보였다. 다리 위에 올라섰다. 바람이 강해서 몸이 계속 강 쪽으로 쏠렸다. 난간을 붙잡고 다리가 끝나는 부분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섰다. 비스듬한 햇빛으로 렌즈 플레어가 생긴다. 하지만 마음에 든다.


언제든 이 사진을 보면 뷰파인더 가득 빛이 들어오던 눈부신 아비뇽을 기억할 테니까.


다리 중간 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예배당이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그곳에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꾸르륵 꾸르륵 이야기 중인 그들 곁을 지나 강물이 더 가까이 보이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돌벽에 기대 햇살을 받으니 나른해져 스르르 눈이 감긴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야 바람 부는 소리에 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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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만난 여자와 소심한 남자의 짝사랑 이야기--- 유럽을 그리다 http://www.yes24.com/24/goods/23312190?scode=032&OzSran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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