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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Sep 10. 2018

느긋한 외로움

구마노고도의 최종 목적지, 혼구타이샤에서

내 그림에는 ‘느긋한 외로움’이라는 작품명이 많다. 여행지에서는 누구와도 말하지 않아도 되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많은데 그런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 바로 느긋한 외로움이다. 그렇게 나른한 순간을 담은 그림의 작품명이다.



누구에게나 떠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먼지처럼 소리없이 쌓여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열병처럼 찾아왔다. 내겐 늘 그랬다. 외롭거나 우울할 때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나타났다. 아마 외로움, 그리움이 먼지처럼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로움과 그리움은 곁을 채우고 있는 누군가의 존재와는 무관했다. 혼자가 아니라도 떠남이 필요한 순간은 불현 듯 찾아들었다.    



우르르 가는 패키지 여행이든, 혼자 떠나는 여행이든, 친구와 가는 여행이든, 사람의 고민이 그 여행의 발화점인 경우가 많았다. 뭔가 고민이 있었다. 여행에서 잠시 혼자 있는 순간이 오면 그 고민들이 눈을 뜬다. 


잘 살고 싶은 고민보다는 잘 사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여행이 그 답을 주지는 않지만 생각과 삶을 멈추지 않게 하고 있다.    




여행을 떠나면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일상에서는 학교나 직장, 친구나 가족 등 공동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미 정해진 시간을 빼면 내 마음대로 쓸 시간은 얼마 없다. 그래서 나는 잠을 줄이고 친구와의 만남을 줄여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고작해야 3~4시간 뿐이다. 하루 4시간 미만의 잠을 자면서 얻은 그 시간도 항상 부족하다. 


오로지 내가 시간을 마음대로 쓰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일상의 삶에 억지로라도 넣어야한다.

    

여러 나라의 입국 도장이 찍힌 여권을 들여다보면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늘 삶에 눌려 있어 그것을 좀 덜어내려면 떠남이 그렇게 필요했다. 여행지의 흔들리는 버스나 택시, 유람선 등을 타고 있으면 그 흔들림 사이로 삶의 무게가 조금씩 떨어져 나갔다. 또 하나의 입국 도장이 찍히는 순간 삶의 무게가 100g은 줄어드는 기분이다.    



혼자하는 여행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멀지 않고, 덜 힘든 나라부터 작은 용기를 시작하면 엄청난 에너지가 생겨날 것이다. 내 첫 여행도 그랬다. 낯선 곳에 놓이는 순간 다음은 상황이 끌고가는대로 맡기면 그 모든 것이 여행이 되었다. 


일단 항공권부터 사면 시작이다.    




삶이 객관식 시험일까? 분명히 아닌 것을 아는데도 우리는 항상 몇가지 선택지에서 고르고 정답인지 확인하고 있다. 사회적 도덕과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은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여행이 그 시작이다. 객관식을 주관식으로 바꾸는 것.    




행복을 모아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통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다. 늘 행복할 수도 없고, 혼자만 행복할 수도 없지만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혼자 여행을 떠났다고 하면 멋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다음 반응은 무슨 일이 있냐는 것이다. 심각할만큼 큰 사건이나 아픔을 겪지 않았는데도 그들에게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나야했던 이유를 들려주어야만 그들은 수긍할 것만 같다. ‘그냥’이라는 말도 그냥으로 듣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 안에 깔려 있음을 알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그들도 그냥 혼자 여행을 떠나보면 알텐데...    




<일본 소도시 드로잉 에세이-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더 보러가기- http://www.yes24.com/24/goods/6384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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