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병실, 식사까지 직접 겪은 입원 첫날 이야기
임신 38주 4일차, 아내는 유도분만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임신성 당뇨로 인해 예정일보다 열흘 정도 이르게 출산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지난 10개월 동안 아내는 서울대병원에서 담당 교수님의 진료를 받을 때마다 1~2시간씩 기다려야 했고, 그 긴 대기시간이 늘 힘들어 보였다. 그런데 막상 출산을 위해 입원하는 순간부터 퇴원할 때까지의 과정을 겪고 나니, 왜 서울대병원이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병원이라고 불리는지 새삼 실감하게 됐다.
집을 나서기 전, 우리는 태어날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핸드폰 영상편지를 남겼다. 우리 곁으로 와 준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고, 한 가족이 되었다는 기쁨과 행복도 마음껏 표현했다. 너무도 벅차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짐을 한가득 차에 싣고 서울대학교병원으로 향했다. 마지막 진료 때 오후 12시에서 1시 사이에 입원 수속을 하라는 안내를 받았고, 산과와 부인과 병동이 다를 수 있다고 해서 산과 병동으로 배정받기 위해 조금 일찍 집에서 출발했다. 서울대병원 본관 1층에 도착하자 아내는 먼저 내려 입원 수속을 밟았고, 나는 병원 한 바퀴를 돌아 어린이병원 옆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때가 오전 11시 30분쯤이었는데도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기존 차량이 빠져나와야만 주차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내 앞에 있던 4~5대의 차량이 먼저 자리를 잡고 나서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아내는 병실을 배정받았고, 다행히 산과 병동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주차를 하면서 정기권에 대해서도 문의했다. 입원 기간 동안에는 하루 1만 원으로 정기권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 경우에는 3월 30일 입차 후 4월 2일 퇴원까지 총 4일 동안 주차를 했고, 정기권 요금으로 4만 원을 지불했다.
다만 정기권을 이용하려면 출차 전에 본관 1층 앞 주차관리소에 미리 이야기해야 했다. 만약 입원 중 출퇴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일 출차 전에 미리 알려주고 마지막 퇴원하는 날 한꺼번에 정산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입원 기간 중간에 차를 뺄 일이 없었기 때문에 퇴원하는 마지막 날, 출차 전에만 주차관리소에 들러 4일치를 한꺼번에 계산했다. 참고로 입원하는 날과 퇴원하는 날은 각각 4시간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특히 퇴원하는 날에는 4시간 무료 혜택이 꽤 유용할 것 같았다.
다만 우리 가족은 산모의 퇴원 시간이 오전 11시였고, 아이의 퇴원 시간은 오후 5시로 달랐다. 그래서 결국 퇴원 당일까지 정기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입원 환자에게 하루 1만 원의 주차 정기권을 제공하는 제도는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주차를 마친 뒤 캐리어와 온갖 짐을 챙겨 지하 6층 주차장에서 지하 1층으로 이동했다.
지하주차장에서 올라와 지하 1층 대한외래 쪽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대한외래와 본관을 연결하는 통로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나 잠시 헤맸지만, 몇 번 오가다 보면 금세 익숙해질 동선이었다. 지하 1층 대한외래에는 식당, 카페, 편의점이 있어서 나는 간식을 사거나 편의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아내는 출산 전후로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싶어 했지만 병원 밖으로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외래 1층을 천천히 걸으며 운동을 대신했다. 그러면서 아내는 출산 후 먹고 싶은 빵을 미리 골라보기도 했고, 10개월 동안 참아야 했던 커피 향을 맡으며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다.
아내는 내게 지하 1층 대한외래 식당에서 식사를 하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결국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 보호자를 언제, 어떤 이유로 병원에서 부를지 알 수 없었고, 아내의 몸 상태나 컨디션에 따라 내가 계속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식당에 가서 여유롭게 밥을 먹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편의점에서 김밥, 샌드위치, 라면, 도시락 등을 사서 병동 복도에 있는 배선실에서 뜨거운 물과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식사를 해결한 뒤 서둘러 병실로 돌아오곤 했다. 오래 자리를 비우느니 차라리 산모 옆에 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내가 그렇게 부실하게 끼니를 때우는 걸 보며 미안해했지만, 그 선택에 대해 나는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산모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이 모두 병원에서 제공됐다. 국은 미역국이 기본이었고, 반찬은 맵지 않고 순한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오렌지, 사과, 배 같은 과일과 우유, 요플레 같은 간식도 함께 나왔다. 고기 반찬과 생선 반찬이 매번 함께 나오는 것을 보면서, 산모가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식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산모가 잠을 자거나 몸이 좋지 않아 식사 시간이 늦어져 배식판을 복도 밖 이동식 수거함에 제때 넣지 못할 경우에는, 배선실에 두면 된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아내는 세 끼를 모두 제때 잘 챙겨 먹어서 그런 일은 없었다.
식사 전후로 받는 약도 그때그때 산모 상태에 따라 달라졌다. 출산 후에는 주로 진통제 위주였고, 출산 전에는 철분제 계열의 약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몸도 힘든데 약 챙겨 먹는 일까지 더해지니 그것 또한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다.
출산 후 아내는 병원에서 나오는 미역국은 거의 다 먹었지만, 밥은 절반 정도만 먹었다. 대신 간식으로 지하 1층 대한외래 파리크라상에서 빵을 사 먹었다. 임신성 당뇨 때문에 그동안은 저당 간식을 먹었다. 나도 한 번 저당 간식을 먹어본 적이 있지만 아무런 맛이 나지 않든다. 아내는 그마저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았었다. 그래서인지 출산 후 속세의 달콤하고 짭짤한 소보루빵을 밥 대신 먹는 선택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단팥소보루와 땅콩소보루를 밥때마다 먹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가 배정받은 병실은 4인실이었다.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간이침대가 함께 마련되어 있었는데, 보호자용 간이침대는 접었다 펼 수 있는 구조였다. 아이가 수유를 위해 병실 안으로 들어올 때는 간이침대를 접어 소파처럼 활용했다.
기본적으로 옷가지나 위생용품 등을 넣을 수 있는 서랍 공간이 있었고, 냉장고는 공용으로 사용하되 각 침대 번호에 맞춰 음식을 보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틈틈이 간식이나 포카리스웨트 같은 이온음료를 사서 넣어두었다.
환자용 침대는 앞뒤 높낮이 조절이 가능했고, 위급할 때 간호사를 부를 수 있는 호출 버튼도 침대 옆에 있었다. 병실 안에 화장실도 있었지만 산모만 사용할 수 있었고, 샤워도 가능했다. 산모들은 그곳에서 좌욕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퇴원하는 날까지 남편인 나는 병실 밖 화장실에서 얼굴 정도만 씻었고, 제대로 된 샤워는 집에 돌아가서야 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기름진 머리와 푸석푸석한 얼굴로 아이와 찍은 사진이 아쉽지만, 그 마저도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내의 왼쪽 팔에는 포도당과 각종 약물을 투여하기 위한 주사바늘이 연결된 튜브가 꼽혀있었다. 이후 여러 약물이 그 튜브를 통해 들어갔다. 그리고 병실에서는 산모의 몸 상태와 함께 아이의 태동도 계속 확인했다. 조용한 병실 안에서 들려오던 아이의 심장 소리는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이제 곧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아이의 힘찬 박동은 우리 부부의 긴장과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우리는 간호사분께 다음 날인 3월 31일 새벽 5시 30분까지 분만장으로 오라는 안내를 받았다. 저녁을 먹은 뒤, 우리는 본관 1층 앞 작은 공원을 한 바퀴 걸었다. 어느새 벚꽃이 피어 있었다. 봄이 찾아온 것처럼, 우리 아이 역시 만물이 깨어나는 계절의 기운을 타고 태어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기념사진도 남기고, 내일의 출산을 위해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경건한 마음으로 출산 전 마지막 밤을 보냈지만, 사실은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밤 11시가 넘도록 우리 둘 다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긴장된 마음으로, 병원에서의 첫날이 저물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