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사회복지 공무원 아내와 장애인 단체 사회복지사 남편의 이야기
우리 마나님은 5년 차 종사복 사례관리 후 1년을 공부한 뒤 사회복지 공무원이 되었다. 나는 3년을 온라인 마케팅 일을 한 뒤 5년 차 장애인 단체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사회복지 분야로 인해 가까워진 우리. 각자의 일터에서 사회복지를 실현시킨다. 이젠 우리 부부의 복지를 실현시키기 위해 이 일기를 써본다.
나는 회사에 취업 한 뒤 결혼을 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열심히 적금을 부었다. 많지 않았지만 이 자금이 내 결혼자금이란 건 확실히 알았다. 그리고 부모님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어머님이 이런 얘길 해주셨다. "준호야, 엄마는 늘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해. 우리 준호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부모님 두 분은 대학병원에서 평생을 근무하셨다. 개인병원이 아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신 부모님은 대한민국의 여러 경제적 안 좋은 상황 속(IMF 같은)에서도 안전하게 회사 생활을 하셨다. 그래서 배우자가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시길 원했다. 난 이런 부모님과의 대화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을 가졌다.
'아! 나는 사회 복지 분야의 사람을 만나야겠다.'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분야에 사람을 만나야겠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사회복지 분야에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직장에 비해 안정적인 근로 환경이란 걸 알았다. 내 바람과 어머님의 기도가 합심하게 된 어느 날, 아는 분을 통해 소개를 받아 지금의 와이프를 만났다.
을지로에 위치한 '을지다락'이란 곳이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였다. 난 이곳을 찾기 위해서 근처를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조그마한 간판 하나가 있고 좁디좁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찾을 수 있었다. 다행히 프리하지만 부지런한 나는 먼저 줄을 기다렸고, 계획대로만 삶을 살아가지만 계획이 틀어진 마나님은 약속 시간을 늦으셨다.
덕분에 하나 설렜던 것은 있다. 을지다락의 문을 통해 들어오는 여성분 중에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저분인가? 아닌가? 맞나? 하는 설렘과 긴장 가득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만남 전부터 카톡을 통해 대화를 했기 때문에, 글을 통해 느껴지는 사람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매칭하는 순간들이 얼마 되지 않아 오늘 내가 만날 분이 들어왔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2시간도 만난 지 못한 채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