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 하는 것만큼 나 먼저 사랑하길 바랍니다.
기도는 민원창구창이 아니다.
아무리 상대방을 위해 기도해도 나의 마음이 평안해 지길 기도해야 한다. 누군가 상대방을 위해 위해 매일 같이 기도하지만 내가 기도한 대로 상대방이 되지 않으면 절망에 빠진다. 기도의 제목, 대상, 상황이 사라지면 기도한 주체인 내가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 나와의 대화지, 민원창구창이 아니다. 안 좋은 상황이 있어도 그 상황에서 나와 하나님과 대화는 지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민원을 가진 채 번호표를 뽑아 놓고 기다려야 한다. 설령 내 차례가 와서 민원을 얘기한다 해도 수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론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하여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의 상황이 안 좋거나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간절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나를 위해 기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 저 그동안 당신과의 관계가 좋았으니 제 아들을, 제 부모님을 이제는 제가 기도하는 대로 해주세요"라고 한다. 이것은 과거 우리 어머니들이 달 빛 아래 물을 떠놓고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나의 구원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 처음 교회에 갈 때 천국과 지옥, 사망과 구원을 배운다. 이 배움에 과정에서 각자의 쓰임에 맞게 실천해 간다. 이때 누군가는 '비나이다 비나이다'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 하지만 구원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일대일로 이루어진다.
정말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회개를 해야 한다. 이쯤 되면 구원은 따놓은 당상이니, 나 말고 이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나서는 것은 위험하다. 성경은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했다.
상대방을 위해 기도의 마음을 정하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이 내 구원의 본질보다 앞서가는 것은 혹여 본인의 만족이거나 다른 이들에게 영광 받길 원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이들이 구원에서 멀어져 간구히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 그에게 늘 기회를 줄 것이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님은 선하기 때문이다. 다만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응답하실 것이다. 그 방법까지 제시하고 내 뜻대로 주님께 상대방의 구원을 이끌어내서는 안 된다.
나는 묻고 싶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대상이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천국에 가길 원하는지 아니면 이 세상 것을 다 이루고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을 원하는지 말이다. 상대방이 천국에 가는 것만큼 나 먼저 천국에 가길 소망하고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