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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자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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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Apr 02. 2017

남자 혼자 카페

심장에 꽂힌 멀티탭을 뽑는 곳

  가방에 노트북 하나만 넣고 터덕터덕 집 밖으로 나왔다. 해는 지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시간도 장소도 정해져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 가기로 마음을 먹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에서 약간 떨어진 카페의 이름은 ‘소르르’였다. 소르르에는 ‘바람이 천천히 보드랍게 불어오는 모양’이란 뜻이 있다. ‘몽치거나 얽히거나 걸린 물건이 쉽게 잘 풀리거나 흘러내리는 모양’이란 뜻도 있다. 이 카페는 뒤의 뜻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곳에 가면 얽힌 문제들이 소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카페에 혼자가기 시작한 습관이 생긴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했을 때는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에야 카페에 오는 남자 손님도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끼리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 혼자 오는 경우는 더욱 적었다. 난 왜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했지? 기억의 실타래가 엉켜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쨍그랑’


  종소리가 들렸다. ‘소르르’에 도착했다. 이 카페는 2층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올라가는 나무 계단 중간쯤에 종이 매달려있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계단에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왜 계단 중간에 종을 매달아 놨는지가 궁금했다. 손님이 오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기엔 카페 내부와 거리도 있었고 항상 카페 문도 닫혀있었으니 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추측만을 해볼 수 있었다. 종소리를 사이로 카페와 밖을 나눠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종소리란 소리의 경계가 나에게 알리는 것이다. 순간 정신이 또렷해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해주세요.

  이 카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만은 샷 추가가 무료라 했다. 진하게 먹는 것이 습관인 나에겐 참 좋은 카페였다. 아, 혼자 카페에 가는 습관이 생긴 이유가 떠올랐다.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한 것은 학교를 다니면서였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었고 그 때문에 난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도서관에도 갈 수 있었지만 도서관은 나에겐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습관은 외부환경에 의해 강제로 생긴 습관이었다. 뭐 가끔은 외부적인 요인덕분에 뜻하지 않게 습관이 생기기도 한다. 


  혼자서 카페에 가는 것이 좋은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혼자서 카페에 가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노트북, 책, 작은 공책하나 아니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난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혼자 커피를 마시며 자리에 앉아 저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나만의 세계를 상상할 수도 있다. 카페가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사시사철 꽃이 피는 들판이 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은 무엇이든지 될 수도, 할 수도 있다. 


  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거나 그것조차도 하기가 싫다면 책상에 엎드려 짧은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많은 것을 하는 우리에겐 꼭 필요한 시간 중 하나이다. 치열하게 사는 우리네에게는 그 정도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몇 시에 일어나자.’든지, ‘이제 일어날까?’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저 말들은 누구와 함께 카페에 있으면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상용구다.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있는 그 무엇인가들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름의 신호다. 신호를 받은 상대방 또는 나는 그 신호에 답해야한다. 나가고 싶다면 자신도 같이 그 무엇인가들을 정리하는 척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어지르거나 더 주문하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면 된다. ‘뭐 더 먹을래?’ 같이.


  혼자 카페에 있으면 그런 행동은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면 된다. 어설픈 신호 같은 것은 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스스로에게 작은 마음의 신호만 주면 된다.

  콘센트에 꽂힌 노트북 어댑터를 뽑았다. 카페에서 떠난다는 나에게 하는 작은 신호다. 한 개의 구멍에 3개짜리 멀티탭이 꽂혀있었다.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나만 꽂아야하는 것에 3개를 꼽게 만든 그것이 편리하지만, 또 너무 유용하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단 하나만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리는 10개를 꽂을 수 있는 멀티탭을 심장에 꽂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혼자 있는 카페는 이 10개짜리 멀티탭을 잠시 빼놓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만이라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글.사진 곽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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