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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남자 혼자

남자 혼자 카페

심장에 꽂힌 멀티탭을 뽑는 곳

by 곽병준

가방에 노트북 하나만 넣고 터덕터덕 집 밖으로 나왔다. 해는 지고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시간도 장소도 정해져있는 것은 없었다. 단지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오늘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에 가기로 마음을 먹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집에서 약간 떨어진 카페의 이름은 ‘소르르’였다. 소르르에는 ‘바람이 천천히 보드랍게 불어오는 모양’이란 뜻이 있다. ‘몽치거나 얽히거나 걸린 물건이 쉽게 잘 풀리거나 흘러내리는 모양’이란 뜻도 있다. 이 카페는 뒤의 뜻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 곳에 가면 얽힌 문제들이 소르르 풀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카페에 혼자가기 시작한 습관이 생긴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처음에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했을 때는 부끄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에야 카페에 오는 남자 손님도 많아졌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끼리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남자 혼자 오는 경우는 더욱 적었다. 난 왜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했지? 기억의 실타래가 엉켜 뒤죽박죽인 상태였다.


‘쨍그랑’


종소리가 들렸다. ‘소르르’에 도착했다. 이 카페는 2층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올라가는 나무 계단 중간쯤에 종이 매달려있다. 처음에 왔을 때는 계단에 무슨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왜 계단 중간에 종을 매달아 놨는지가 궁금했다. 손님이 오는 것을 알기 위해서라기엔 카페 내부와 거리도 있었고 항상 카페 문도 닫혀있었으니 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그저 추측만을 해볼 수 있었다. 종소리를 사이로 카페와 밖을 나눠 놓은 것은 아니었을까. 종소리란 소리의 경계가 나에게 알리는 것이다. 순간 정신이 또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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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아메리카노에 샷 추가해주세요.

이 카페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때만은 샷 추가가 무료라 했다. 진하게 먹는 것이 습관인 나에겐 참 좋은 카페였다. 아, 혼자 카페에 가는 습관이 생긴 이유가 떠올랐다. 혼자 카페에 가기 시작한 것은 학교를 다니면서였다. 수업과 수업 사이에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었고 그 때문에 난 있을 공간이 필요했다. 도서관에도 갈 수 있었지만 도서관은 나에겐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습관은 외부환경에 의해 강제로 생긴 습관이었다. 뭐 가끔은 외부적인 요인덕분에 뜻하지 않게 습관이 생기기도 한다.


혼자서 카페에 가는 것이 좋은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질문이었다.


혼자서 카페에 가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노트북, 책, 작은 공책하나 아니 스마트폰 하나만 있어도 난 무엇이든 할 수가 있다. 혼자 커피를 마시며 자리에 앉아 저 멀리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나만의 세계를 상상할 수도 있다. 카페가 에메랄드빛의 바다가 될 수도 있고 사시사철 꽃이 피는 들판이 될 수도 있다. 커피를 마시는 시간만은 무엇이든지 될 수도, 할 수도 있다.


할 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아무 생각없이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거나 그것조차도 하기가 싫다면 책상에 엎드려 짧은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많은 것을 하는 우리에겐 꼭 필요한 시간 중 하나이다. 치열하게 사는 우리네에게는 그 정도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주는 작은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혼자 카페에 가는 일이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몇 시에 일어나자.’든지, ‘이제 일어날까?’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저 말들은 누구와 함께 카페에 있으면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상용구다.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있는 그 무엇인가들을 정리하는 척하면서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름의 신호다. 신호를 받은 상대방 또는 나는 그 신호에 답해야한다. 나가고 싶다면 자신도 같이 그 무엇인가들을 정리하는 척하면 되고,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어지르거나 더 주문하는 것 같은 행동을 취하면 된다. ‘뭐 더 먹을래?’ 같이.


혼자 카페에 있으면 그런 행동은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조용히 일어나면 된다. 어설픈 신호 같은 것은 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스스로에게 작은 마음의 신호만 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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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센트에 꽂힌 노트북 어댑터를 뽑았다. 카페에서 떠난다는 나에게 하는 작은 신호다. 한 개의 구멍에 3개짜리 멀티탭이 꽂혀있었다. 갑자기 어색하게 느껴졌다. 하나만 꽂아야하는 것에 3개를 꼽게 만든 그것이 편리하지만, 또 너무 유용하지만 어색하게 느껴졌다. 단 하나만 꽂을 수 있는 구멍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리는 10개를 꽂을 수 있는 멀티탭을 심장에 꽂고 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혼자 있는 카페는 이 10개짜리 멀티탭을 잠시 빼놓는 공간이 아닐까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만이라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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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곽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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