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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Jun 08. 2020

밥을 따뜻하게 먹는 방법

한없이 차가웠던 아침

  내가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 살았던 집이 있다.  2층에 있는 집이었는데 구조가 제법 특이했다.  이사 온 후에 집주인이 해준 설명에 따르면 원래 그곳에는 여러 개의 원룸이 있었다.  집주인은 그 집들, 정확히는 방들에 가까운 것들을 하나의 집으로 연결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했다.  각각의 방들을 연결하는 방법이 제법 독특했다.  방들의 가운데에는 컨테이너로 된 조립식 건물을 새로 만들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하나의 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은 했으나,  겨울에 문제가 심각했다.  다른 방들은 벽돌로 되어있었지만, 중앙에 있는 방만은 컨테이너로 되어있었다.  이는 컨테이너로 된 그 공간만은 전혀 난방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는 겨울에 심각한 문제였다.  보일러가 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지만, 그보다 컨테이너라는 특성 자체에 문제가 더 컸다.  겨울에는 실내와 실외가 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보온이 안 됐다.  이 공간이 우리 집의 거실이었다.  추운 날은 거실에 있을 일이 드물었다.  한 가족은 각자의 방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방문을 더욱 단단히 닫아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꼭 하루에 한 번은 가족이 거실에 모여야만 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침을 먹는 시간이었다.  졸린 상태로 아침밥을 먹으러 나가면 얼어붙을 것 같은 공간에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항상 패딩점퍼를 입고 있으셨다.  패딩을 입고 아침을 먹는다는 것이 좀처럼 상상이 안 되지만, 우리는 누구랄 것 없이 그런 차림이었다.  바닥은 너무 차서 앉아 있기가 힘들었고 우린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깔판을 깔고 앉아 있었다.  추울 때면 입에서 입김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가 없었다.


  우리 가족에겐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은 다 같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 원칙이 있었기에 우린 먹기 싫은 아침을 매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조그마한 밥상에서 입김을 불며 함께 밥을 먹었다.  금방 식어버릴 수도 있기에 빠르게 먹어야 했다.  주로 어머니께서 먼저 얘기를 꺼내셨다.  대부분 같은 레퍼토리로 학교에서 있던 일을 묻고 했다.  난 매번 비슷한 학교생활이었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노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렇게 우린 어제 있었던 일을 공유했다.  또 최악의 시간에서도 앞으로 있을 행복한 일들을 서로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행복해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 집에서 이사를 나가게 되었다.  나와 동생은 각자 원룸에서 살게 되었고, 다 함께 아침을 먹는 시간은 이제 손에 꼽는 일이 되었다.  더는 입김을 불며 아침을 먹을 일도 없게 되었다.  찬 바람이 부는 어느 아침을 맞이할 때면 한없이 차가웠던 그 날의 아침을 떠올리곤 한다.  매일 악몽과 같은 날들이었고 불행으로 가득 찼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아침을 먹으며 희망을 잃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가 밥을 따뜻하게 먹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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