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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병준 Jun 14. 2017

다시다와 청춘

MSG

당신의 청춘 vol.1 (사진 = 개인 촬영, 일본 가마쿠라시)

다시다와 청춘


얼마 전 친구와 우스갯소리를 한 적이 있다. 요즘 무슨 말이나 청춘이란 말만 갖다 붙이면 그럴싸해진다는 얘기였다. 모든 말에 청춘을 붙일 수 있다. 청춘 음악, 청춘 영화, 청춘 커피 등등. 최근 자주 쓰이는 비슷한 용어로는 청년이 있다. 청년 창업, 청년 수당 등등. 요리에 넣기만 하면 감칠맛이 난다는 다시다처럼 언제부턴가 청춘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청춘이란 말을 가벼이 쓰면 안 된다고 하려고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단어의 무게가 있는 것도 아닌데 구태여 그런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경계해야 한다. 우리가 청춘이란 말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단어의 경중은 없을지언정 생각의 경중은 분명히 있다. 생각은 행동이 되고 현실이 된다. 우리가 청춘을 가볍게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고 그런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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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다시다가 된 까닭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

먼저 청춘이라 할 지금의 청년들은 청춘을 보내지 않았다. 26년을 살면서 지금까지의 나를 포함한 주변의 청춘의 삶을 떠올려보면 단번에 기억할 수 있다. 한국의 10대의 대부분은 학교와 학원에서 12년을 갇혀 지낸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그렇게 청춘을 보냈으며 앞으로도 보낼 것이다. 공부가 세상에 전부인 듯 여기거나 돈이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학교에선 청춘을 알려주지 않는다. 청춘을 알려주지도 않으며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청춘이란 것은 관념적인 것에 머문다. 초, 중, 고등학생은 아이돌을 보며 열광한다. 그들을 보며 자신의 청춘을 대입시킨다.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강렬하다. 20살이 넘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TV 프로그램에서는 여행 프로그램이 갈수록 늘어난다. 또 젊은 도전자, 예술가들을 집중 조명하며 도전하는 청춘을 보여준다. 20살이 넘어서는 그것을 보며 대리만족한다. 이들에게 청춘은 관념적이며 추상적인 것이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은 청춘을 이용하기에 급급하다. 청춘이란 것이 사회에 결핍되어 있고 이에 많은 사람이 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애정결핍에 치료약은 애정이듯이 청춘결핍에 치료약은 청춘이다. 그러나 청춘을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상품가치가 충분한 청춘을 대신 이용하고 가짜치료약을 양산한다. 본질을 이해하고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청춘이 다시다가 되는 마지막 공정과정이다.


진짜 청춘이 사라진다. 그 자리를 가짜 청춘이 대신한다. 청춘이란 단어에 노란색(또는 초록색) 디자인을 해서 그럴싸하게 만들어낸다. ‘청춘, 떠나라!’, ‘ITX 청춘열차’와 같이 난립하는 (가짜) 청춘을 보고 있으면 MSG를 통째로 먹은 것 마냥 입이 씁쓰름하다. MSG는 몸에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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