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잇는 다리
2화 옥좌대
며칠 후, 최공은 한 달간 강원도 삼척도호부로 유람을 갔다. 청지기가 그를 따랐다. 패배의 쓰라림 속에 있던 그에 대한 임금의 배려도 있었거니와 기분전환 겸 바닷바람이나 쐬고 올 요량이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전수 아닌가?”
관아(官衙)에 들어서자 삼척도호부사 김명률은 신도 신지 않은 채 버선발로 최공에게 뛰어왔다.
“하풍(夏風)! 잘 있었나? 오늘 날이 기가 막힌걸. 여름 바람이 너무 좋아. 흐흐.”
하풍은 김명률의 호(號)였다.
“크크. 입담이 살아있는 걸 보니 한 잔 해야겠는걸. 크크.”
여기는 삼척도호부 관아. 작년 초에 부임한 수령 김명률은 최공과는 막역지우였다.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한 그들은 무슨 일에서든 서로 거리낌이 없었고 속엣말을 터놓는 친구였다.
내아(內衙)에 들어간 그들은 술상을 앞에 두고 서로 그간의 사정들을 이야기하였다. 안채에는 호방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호…. 천원화에게 패했다고?”
김명률은 깜짝 놀랐다. 최공은 바둑에 관한 한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됐네. 주상 앞에서 얼마나 자존심이 구겨지든지…. 혼났네 그려.”
“혁인의 무십법은 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지…. 그래도 자네는 천하무적이지 않은가? 마음을 풀게…. 어쩌다 한번 질 수도 있지 뭘 그러나.”
사람들은 독고혁인 천원화를 ‘혁인(弈人)’이라고 줄여 부르곤 했다. 혁(弈)은 바둑을 뜻했다. 최공은 탄식하듯 말했다.
“무심법… 듣던대로 명불허전이더군….”
“아 참. 이곳에 참으로 전망 좋은 누각이 있어. 동헌(東軒) 옆에 있네. 가 보지 않겠나? 마음이 좀 풀어질 거야.”
“죽서루(竹西樓)는 조선 제일의 누각 아닌가? 어디 한번 가보세.”
그들은 밖으로 나와 관아 바로 옆에 있는 죽서루에 올랐다. 바로 앞에 오십천(五十川)이 내려다보였다. 오십천은 동해안으로 흐르는 하천으로 곡류가 매우 심하여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 번 정도 건너야 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명성 그대로, 죽서루에서 바라본 경치는 정말 놀랍도록 수려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넘실거렸다. 최공은 편안함을 느꼈다. 새들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는 오십천을 바라보며 자신의 군왕 앞에서 천원화에게 대마를 잡혀 패배했던 충격을 삭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난 최공은 청지기에게 물었다.
“그래… 필상아. 오늘은 하늘이 뭐라고 하더냐? 조선에서 가장 크다는 동굴로 갈 생각이야.”
유필상은 하늘의 별을 볼 줄 아는 천문(天文)에 대한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점성술(占星術)에 능했다. 더군다나 주역(周易)에도 박식해 이른 아침에 그날의 운을 알아보곤 했다. 중인 신분이던 그는 어릴 적부터 사서삼경을 익혔을 만큼 배움이 남달랐다. 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나리. 오늘이 하지(夏至)입니다. 조금 전 지평선에서 태양과 천랑성(天狼星)이 함께 떠올랐습니다. 천랑성은 불길한 별입니다. 조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어젯밤 삼수(參宿)는 어땠지?”
“삼수는 아주 밝아서 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밝은 건 처음 봤습니다. 하지만 오늘 괘를 보니 감위수(坎爲水)가 나왔습니다. 동굴 여행은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감위수 괘는 ‘습감 입우감담흉’(習坎 入于坎窞凶)이다. 즉 ‘거듭 물구덩이 속으로 빠지는 상황이다.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니 흉하다’는 뜻으로 매우 불길했다. 그러나 청지기의 말엔 언제나 깜박 죽는 최공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 무더운 날에 시원한 동굴을 구경 안 할 수는 없지…. 화도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주역이 진정 말하고 싶은 거 아닐까? 허허. 일 없네. 오늘 환선굴(幻仙窟)로 가 볼 생각이야. 짐을 꾸리게.”
최공도 주역에 능통해 있던지라 감위수 괘가 얼마나 안 좋은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음 가는 데로 가는 걸 좋아했다.
환선굴은 대이리 골말 서쪽에 있는 큰 굴이다. 동굴입구는 거대한 반원형 모양이며, 굴 속 길이는 7리(里)를 넘는다.
최공 일행은 죽마고우인 김 부사의 도움을 받아 동굴을 잘 아는 대이리 사람 돌쇠를 대동하고 동굴 입구에 다다랐다. 최공과 청지기는 입이 떡 벌어졌다. 동굴 입구가 엄청나게 컸기 때문이다.
“나리. 굴속에 들어가면 입이 찢어지실 겁니다. 하하.”
횃불에 불을 붙이며 돌쇠가 말했다.
세 사람은 동굴 입구로 들어갔다. 횃불을 든 돌쇠가 맨 앞에서 걸어가며 길을 인도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기암괴석과 형형색색의 종유석, 폭포, 너른 평지들이 끝없이 나타났다. 실로 절경으로 동굴 안에 이렇게 수많은 볼거리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정말 장관이로구나! 금강산 만물상도 한 수 배우고 가겠구나….”
최공은 감탄했다. 앞서가는 돌쇠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던 최공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기이하게 생긴 석순이 보였기 때문이다. 평평한 석순으로 모양은 계란을 돌바닥에 푼 것 같았고 달리 보면 태양이 불을 사방으로 뿜는 형상이었다. 정말 묘했다. 그 바닥엔 지하수가 흐르고 있었다. 돌쇠가 말했다.
“옥좌대(玉座臺)라고 합니다. 정말 신기하게 생겼죠?”
“그래 신기하구나. 꼭 태양이 불을 뿜는 것 같아…. 필상아. 붓을 준비하거라. 시 한수 읊어야겠다.”
청지기는 봇짐에서 작은 벼루를 꺼냈다. 먹을 갈고 그것을 붓에 담뿍 묻혔다. 최공은 시를 읊기 시작했다.
幻星天狼 仙有夢中 환성천랑 선유몽중
窟中有道 玉生覺悟 굴중유도 옥생각오
座觀天下 臺上覺無 좌관천하 대상각무
환상의 별 천랑성, 신선이 꿈속에 나타난다.
굴속에 길이 있어 옥 같은 생명을 깨닫는다.
앉아서 천하를 보니 세상이 덧없음을 느끼네.
유필상은 받아 적으며 감탄했다. 절묘한 시였다. 앞 글자들이 환·선·굴·옥·좌·대를 가리켰다.
최공은 시를 다 읊은 뒤, 뭔가에 홀린 듯 옥좌대 쪽으로 내려갔다. 발에 축축한 지하수가 느껴졌다. 청지기가 급히 뒤따라오며 걱정스레 말했다.
“나리 위험해요. 올라오시지요.”
최공은 옥좌대 위로 올라가면서 자신의 발 밑에서 지하수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공간이 흔들거렸다.
옥좌대 위에서 비틀거리던 최공의 몸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를 본 청지기는 심장이 멎을 듯한 공포에 휩싸였다. 손은 떨렸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나리, 어디 계십니까!”
허겁지겁 옥좌대 위로 간 유필상과 돌쇠는 횃불을 이리저리 사방으로 비춰보며 찾았지만 최공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최공이 사라진 것이다.
때는 정조 1년(1777년) 열 번째 절기, 하지(夏至)의 일이다.
최공은 자신의 몸이 이리저리 흐느적거리고 귀신의 몸이 된듯한 착각에 빠졌다. 저 멀리서 빛이 보였다. 자신이 그 빛을 향해 끝없이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십여 분이 지나자 속이 우물거렸다. 메스꺼웠다. 그러다 이내 의식을 잃었다.
삼척도호부 : 강원도 삼척시의 조선 시대 명칭.
관아(官衙) : 조선시대 지방행정기관이 있던 건물. 수령 등이 사무를 보던 중심 건물.
하풍(夏風) : ‘여름철에 부는 바람’이란 뜻
내아 (內衙) : 조선 시대, 지방 관아에 있던 안채.
동헌(東軒) : 수령(守令), 즉 사또[使道]라고 불리던 부사, 목사, 군수, 현령, 현감 등의 지방관이 직무를 보는 관청 건물.
하지(夏至) : 이십사절기의 하나. 망종과 소서 사이에 들며, 양력 6월 21일경으로, 북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
천랑성(天狼星) : 시리우스 별. 지구와 약 8.6광년 떨어져 있다.
삼수(參宿) : 28수 가운데 스물한 번째 별자리. 조선 시대 서방 백호의 마지막 별자리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 날의 오리온 자리에 해당한다.
감위수(坎爲水) : 주역의 64괘 중 하나. 불길한 괘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