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3화 느랏의 돌

별을 잇는 다리

by 구름과벗

3화 느랏의 돌


밤하늘에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시리우스. 그곳에 있는 행성 아카리스에 한반도 2배 면적의 작은 대륙이 하나 있다.


그 대륙의 한 가운데, 어떤 바위산 중턱에 큰 동굴이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즈음, 그 동굴 안에 있는 평평하고 넓적한 돌 위에서 ‘느랏’이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대륙에 흩어져 살던 부족들을 하나로 모아 ‘아루’라는 나라를 세웠다. 그는 최초의 ‘라’였다. 이는 시리우스 말로 왕이란 뜻이다. 그의 백성들은 같은 언어를 썼고 부유하게 살았다. 왕을 칭송하는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는 백 년을 살고 자신이 태어났던 평평한 돌에 다시 누웠다. 사람들은 그 돌을 ‘느랏의 돌’이라고 부르며 신성시했다. 동굴은 봉인됐고 금역(禁域)으로 선포됐다.


느랏의 뒤를 이은 왕, ‘모앗’은 동굴이 있는 바위산 중턱에 신전을 지었다. 왕에게 신권(神權)을 부여받은 여사제와 8명의 신녀가 신전에 머무르며 그 동굴을 지켰다.


느랏의 돌 주위는 불이 한시도 꺼지지 않고 타올랐다. ‘게브’라 불리는 여사제와 신녀들은 늘 ‘블랑톤’이라는 광물을 준비해야 했다. 블랑톤은 불을 붙이면 푸른빛 불길이 타며 서서히 산화되었다. 신전 입구에는 10명의 병사가 등에 활을 메고 장검을 허리에 찬 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켰다.


밤하늘의 별빛이 신전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자, 마치 과거와 현재가 한데 어우러지는 듯한 고요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기운 속에서, 신녀들은 정해진 의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끄응…. 바퀴가 찌그러져 앞으로 나가질 않네. 미쳐….”


막내 신녀 크리탈은 블랑톤을 가득 실은 작은 수레를 낑낑대고 밀며 투덜거렸다.


“크리탈! 똑바로 못해? 블랑톤이 떨어지잖아!”


“네 게브님…. 주의하겠습니다….”


얼굴이 잔뜩 찌그러진 채, 크리탈은 젖 먹던 힘까지 내며 수레를 밀었다. 그래도 수레는 요지부동이었다. 여사제 게브는 보다 못해 수레를 앞에서 붙잡고 힘껏 당겼다. 그제야 수레가 덜컹하며 움직였다.


오늘은 블랑톤이 외지에서 오는 날이다. 이곳 남아루 왕국에는 블랑톤이라는 광물이 넘쳐났는데 사람들은 장작 대신 블랑톤을 땔감으로 썼다.


이 왕국의 돌 개수보다 블랑톤의 개수가 더 많았다. 그것은 화력이 엄청 좋았다. 어른의 주먹만한 블랑톤 서너 개로 하룻밤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크리탈은 간신히 수레를 제단 근처로 이동시킨 후, 창고에 블랑톤을 적재했다. 제단 한가운데 있는 느랏의 돌 주위로 동서남북에 4개의 석등(石燈)이 있다. 석등 안에 블랑톤이 푸른빛을 내며 타고 있었다.


“크리탈! 오늘 밤 첫 근무지?”


“네. 게브님.”


“어떻게 하는지는 다 익혔겠지?”


게브는 이곳 신전의 제사장이며 모든 책임을 짊어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보통 키에 몹시 뚱뚱했는데, 눈에 쌍꺼풀이 짙게 배어 있었다.


크리탈은 신녀 한명이 심한 열병으로 죽자, 10일 전에 이곳에 신녀로 들어왔다. 신전 생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바로 위 선배인 히야스 신녀가 자상히 가르쳐 주어서 하나하나 익혀가는 중이었다.


“네. 게브님. 걱정 마세요.”


“히야스 신녀가 오늘 밤 같이 밤을 세줄 테니 너무 염려는 마.”


“네. 알겠습니다.”


높이 600m의 모아산 중턱에 당당히 서 있는 이곳 옴니아 신전은 아무도 왕의 허락 없인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최초의 왕 ‘느랏’이 잠든 신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히야스 신녀님. 느랏은 어떤 분이셨나요?”


자정이 넘은 시각, 막내 신녀는 히야스 신녀와 함께 네 개의 석등에 불이 꺼지지 않게 지키고 있었다. 느랏의 돌은 두터운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거대한 암석으로, 그 주위에는 동서남북을 향해 네 개의 석등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들은 석등 안에 타고 있는 불을 ‘영원의 불’이라고 불렀다. 불빛 안에 나라와 백성들의 염원이 담겨져 있다고 믿었다. 불의 열기가 전해져 크리탈은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응. 태조께서 이 돌 위에서 태어나실 때, 하늘의 오리온 별들이 엄청나게 밝았대…. 아마도 오리온 별들의 정기를 받으셨나 봐.”


“아… 오늘 오리온 별들이 엄청나게 밝던데요….”


“응. 1년 중 오늘이 가장 밝은 날이야. 1년 400일 중, 딱 절반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


히야스 신녀는 나무로 만든 꽃 모양의 알을 실에 끼워 만든 기도 도구, 무란을 손에 들고 손가락으로 알을 굴리면서 말을 이어갔다.


“느랏은 정말 위대한 영웅이셨어…. 백여 개가 넘는 부족들을 하나로 모아 나라를 세우셨지… 그리고 언어를 통일하셨지.”


4개의 석등에서 비치는 푸른빛과 두 신녀의 노란 눈빛이 어우러졌다. 히야스는 말을 이어갔다.


“비록 지금 나라가 둘로 갈라졌지만 언젠가는 다시 하나가 될 거야….”


두 사람은 석등 안 불빛의 열기 때문에 얼굴이 불그스레해졌다. 따뜻했다. 크리탈이 조그맣게 읊조렸다.


“머나먼 별에서 그가 오리라.

늑대의 푸른 눈을 가진 채,

별의 여인과 함께 빛을 이끌리라.

그들은 우리를 희망의 길로 인도하리라.”


남아루와 북아루의 백성들이 그들을 지긋지긋한 전쟁과 가난에서 해방시켜줄 도광자(導光者)를 바라며 부르던 노래였다. 도광자란 빛으로 인도해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히야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무란을 손에 쥔 그녀의 얼굴이 석등 안에서 비추는 블랑톤의 푸른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때였다. 느랏의 돌이 갑자기 흔들거렸다.


두 신녀는 깜짝 놀랐다. 작은 흔들림이었지만 돌 소리가 굉장했다.


끼이잉… 끼이 끼이잉….


평평한 돌이 점차 이리저리 요동을 쳐댔다. 그들은 다급하게 동시에 일어났다. 그 순간 느랏의 돌 위에 뭔가가 툭 떨어졌다. 사람이었다.


“앗! 사람이에요!!”


막내 신녀는 다급하게 외쳤다.


머리에 둥근 챙이 달린 검은 모자를 쓴 채 그 사람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도포나 모자는 남아루에서는 없는 것이었다. 마치 시간의 경계를 넘은 듯, 그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히야스는 두려웠다. 그녀는 다급히 크리탈에게 말했다.


“크리탈! 어서 가서 게브님을 깨워요! 그리고 초소를 지키는 병사들에게도 알려야 해요!”


“네!!”


크리탈은 숙소로 황급히 달려갔다.


차가운 돌바닥에 쥐죽은 듯 누워있는 그는 최공이었다. 그의 등장으로 동굴 벽과 신전 전체를 감싸던 은은한 빛이 갑자기 깊은 긴장감과 미스터리로 변해갔다.

수요일 연재
이전 02화판타지: 2화 옥좌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