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잇는 다리
제4화 환생이냐 악마냐?
최공은 신비로운 도시, 남아루 왕국의 수도 ‘유르’로 끌려갔다. 유르는 모아산에서 불과 20㎞ 떨어진 도시였다. 그는 양손을 포박당한 채, 거대한 뿔이 달린 소 같이 생긴 짐승이 끄는 마차에 실려 왕궁으로 이송됐다.
그는 그 짐승이 달리는 스피드에 놀랐는데, 조선의 말보다 2배는 빠른 것 같았다. 그것은 마차를 모는데도 바람처럼 달렸다.
묶인 손목이 저려왔다. 낯선 도시로 이끌려 가는 마차 속에서 그는 목숨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숨이 가빠졌다. 세상이 뒤집히는 듯한 불안감이 들었다. 그는 문득 조선의 하늘을 떠올렸다. 거기엔 이런 기이한 건물도, 뿔 달린 짐승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삶도 거기 있었다.
마차는 푸른빛이 가득한 강을 건너, 은빛으로 빛나는 다리를 지나쳐 갔다.
멀리에 건물들이 보였다. 높이 솟은 첨탑들은 하늘을 찌를 듯이 위엄을 뽐내고 있었고, 건물들은 눈부신 보석들이 박혀있는 돌로 만들어져 있었다. 나무로 지어진 조선의 궁궐과는 확연히 달랐다.
최공은 마차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며, 낯선 도시의 화려하면서도 어딘가 기이한 분위기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는 조선의 소박한 풍경과 이곳의 화려한 궁궐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철문을 통과하길 네 차례, 이윽고 도착한 곳은 왕궁의 가장 큰 건물 앞마당이었다. 마당 둘레엔 형형색색의 나무들과 꽃들로 가득했다. 최공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향기에 취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과 곤충들이 나무와 꽃 사이를 날아다녔다.
그는 병사들에 의해 마차에서 내려져 건물 내부로 끌려갔다.
“허어! 저 복장은 뭐지?”
금색으로 도금된 철제 보호 장구를 입은 한 사람이 넓은 홀 입구 근처에서 신기하다는 듯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그는 대장군 몰루스였다. 그와 함께 20여명의 사람들이 들어오는 최공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홀 안에는 푸른 불빛이 가득했고, 바닥은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다. 벽에는 벽화가 모자이크 되어 있었는데 왕들의 업적을 나타내는 듯 보였다. 벽화는 화려한 색상과 금빛으로 빛났고, 고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최공은 의자에 앉혀진 후 몸이 묶였다.
이윽고 남아루의 군주 ‘오랏’이 들어왔다. 마법사와 제사장 게브, 16명의 신하들과 대장군 몰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나 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왕은 황금 옥좌에 앉으며 난처한 일을 만난 듯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게브. 어떻게 된 일이지?”
제사장 게브는 어젯밤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영원하신 ‘라’이시어. 느랏의 돌 위에 저자가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복장도 이상하고 저희들과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눈동자는 하나인데 검습니다. 악마가 아니면 느랏님의 환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라’는 왕을 뜻하는 시리우스 말이다.
“뭣이? 느랏의 환생?”
왕은 옥좌 손 받침대를 오른손으로 강하게 내리치며 격노했다. 백성들에게 느랏이 환생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나라 전체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게브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걷기 시작했다. 초초해 보이는 그의 발걸음에 신하들은 긴장했다.
“대장군. 그대 생각은 어때? 정말 느랏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나?”
대장군 몰루스는 침착했다.
“영원하신 라이시어. 저자가 환생한 거라면 어찌 우리말을 못하겠습니까? 악마가 분명합니다. 또한 저자는 느랏이 잠든 신성한 곳에 침입했으니 죽여야 합니다. 국법으로 그곳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이 왕국에 ‘라’ 뿐이십니다.”
왕은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오? 저자가 누구라 생각하시오?”
신하 중의 한 명인 마락이 말을 꺼냈다. 마락은 왕궁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영원하신 라이시어. 저자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일단 말이 통해야 하니… 마법사단에 명하여 말을 가르치게 하십시오. 죽이는 건 그 후에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동요하지 않게 저자에 대해서는 비밀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락의 말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왕은 마법사 호스를 불렀다.
“호스! 지금 저자와 대화해 봐. 누군지 알아야겠어!”
“네! 군주님.”
마법사 호스는 최공에게 정신 교감을 일으키는 와까르트 열매 네 알을 먹였다. 최공은 먹자마자 저절로 눈이 감겼다. 열매의 영향으로 마음이 열리며 이런 저런 생각들이 교차했다. 호스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르스트 알루셔 느깔라 맘띠….
주문을 외자 서서히 최공의 마음속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호스는 왕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오랏 왕은 그가 느랏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과 의혹의 시선으로 마법사와 낯선 이방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마법사는 심령으로 그에게 묻기 시작했다.
≪여기는 남아루 왕국이다. 너는 어디서 왔지?≫
≪나는 조선에서 왔어.≫
≪조선? 느랏의 돌에는 어떻게 갔지?≫
≪모르겠어. 어떤 강렬한 빛에 끌려오다가 정신을 잃었어.≫
≪그대는 느랏을 아는가?≫
≪느랏? 처음 들어 보는데….≫
≪이 왕국에 눈동자가 검은색인 사람은 한 명도 없어! 조선은 어디에 있는 나라지?≫
≪음… 조선 사람은 다 눈동자가 검어… 조선은 청나라의 동쪽에 있지.≫
와까르트 열매로는 대화를 오래 할 수 없었다. 심령의 대화력이 약해지자 호스는 대화를 멈췄다. 그리고는 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뭐라고 하느냐?”
“영원하신 라이시어. 이 자는 조선이란 나라에서 왔다고 합니다.”
“조선?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조선에는 모두가 검은 눈이라고 합니다. 느랏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왕은 난감했다. 아카리스 대륙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사람은 아직까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이란 나라는 그럼… 어디란 말인가?
오랏 왕은 마락의 말대로 마법사단에 최공을 맡겼다. ‘마법의 루마’를 써서 속성으로 그에게 말을 가르치게 했다. 그리고 최공의 존재를 비밀에 붙였다. 10명으로 구성된 마법사단의 우두머리인 마법사 호스는 최공을 데리고 그들이 머무르는 곳으로 떠나갔다.
오랏 왕은 집무실로 제사장 게브를 몰래 불렀다. 게브가 들어와 왕께 고개를 숙였다. 날개가 달린 커다란 늑대, ‘키찰’의 푸른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았다.
‘키찰’은 남아루의 수호신이었다. 그것은 천 년을 산다고 알려져 있다. 수명을 다해 박제된 그것은 왕의 집무실 창가에 기형적으로 돋아난 거대한 송곳니를 드러낸 채 늠름하게 서 있었다.
“게브. 항간에 도는 그 예언 말이야…. 조선에서 왔다는 그가 예언의 주인공은 아니겠지?”
“영원하신 라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는 눈동자가 검습니다. 예언은 푸른 눈동자가 나타난다고 하고 있습니다.”
“음…. 어쨌든 백성들이 모르는 게 낫겠어.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크게 동요할 거야.”
“영원하신 라님. 키찰은 악마를 잡아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키찰을 데려와 그자를 보여주면 어떻겠습니까? 악마라면 키찰이 죽일 것입니다.”
왕은 얼굴이 약간 상기된 채로 말했다.
“글쎄…. 만약 키찰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면 난리 아니겠나? 키찰은 도광자(導光者)를 알아본다고, 그리되면 신하들도 크게 동요할 거야….”
‘도광자’란 예언이 말하는 아카리스 대륙을 빛으로 이끌 영웅을 뜻했다. 왕은 최공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뇌까렸다.
‘음…. 상황을 봐서 사마법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군….’
사마법은 독으로 사람을 몰래 죽이는 술법으로 남아루 왕국에서 국법으로 엄히 금하고 있는 악랄한 마법이었다. 왕의 흰자위에 핏기가 붉게 번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