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잇는 다리
제5화 마법의 카드
마법사단에는 열 명의 마법사가 있다. 마법국사 호스를 중심으로 환상술사, 점술사, 자연술사, 치유술사, 루마술사, 심령술사 등이 있었다.
최공은 루마술사에게 맡겨졌다. 루마술은 속성으로 지식 또는 언어를 익히게 해주는 마법을 일컫는다.
“당신은 누구인가요? 이 카드는 ‘루마’라고 해요.”
최공은 젊은 루마술사 ‘마야’ 앞에 앉아 그녀가 펼쳐 놓은 카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야는 긴 머리와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여성이었다.
방은 아늑했다. 벽 쪽, 절구통을 반쪽 자른 것 같은 회색 돌 위에 푸른 돌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 은은한 푸른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며 따스한 온기를 전했다.
‘돌을 태워 불을 밝히다니, 신기한 일이군.’
그녀의 카드는 마법적인 무늬로 가득했다. 최공은 그것을 보며 이방인으로서 호기심을 느꼈다. 최공은 마야를 바라보았다. 긴 머리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의 눈빛은 상대를 꿰뚫어볼 듯 날카로웠다. 그 눈빛에 그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야가 처음 보여준 카드에는 하늘, 땅, 물, 불, 바람, 산, 날개 달린 늑대 등이 그려져 있었으며, 모두 8장이었다. 그녀는 그 카드들을 조합하여 총 64개의 카드를 만들었다. 최공이 어릴 적부터 책이 닳도록 읽고 또 읽었던 주역(周易)의 64괘와 아주 흡사했다.
‘음…? 이거, 주역의 괘와 비슷한데?’
마야는 카드를 하나 숨기고는 그에게 찾아보라는 듯 손짓했다. 최공은 금세 산이 그려진 카드를 찾아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카드를 틀리지 않고 찾아내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말을 못 할 뿐이지, 혹시 루마술을 익힌 자가 아닐까? 아니면 진짜... 느랏의 환생인가?’
최공은 하루 만에 64개의 카드를 모두 익혀 마야를 경악하게 했다. 언어를 빠르게 배우는 루마 마법은 이 64장의 카드를 통해 마법의 힘을 발휘한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담은 카드를 익혔으니, 최공은 단번에 언어 습득의 5부 능선을 넘은 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최공은 마야가 준 아루국 옷을 입었다. 보랏빛 두루마기에 허리에 띠를 둘렀다. 허리띠 한 가운데에는 시리우스별을 나타내는 듯, 둥그렇고 푸른 장식이 달려 있었다. 푸른색 목걸이도 착용했다.
그 날 부터 최공은 아루국의 문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것은 게르만족이 로마자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널리 사용하던 음소 문자, 룬 문자와 비슷하게 생겼다. 최공은 루마 마법을 이용하여 놀라운 속도로 문자를 익혀나갔고, 20일이 지나자 기본적인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 키찰이라고 해.”
최공은 마야에게 날개 달린 늑대가 그려진 카드를 내밀며 그 짐승에 대해 궁금해했다.
“키찰…?”
그녀는 해맑게 웃었다. 최공의 억양이 독특하지만 듣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응. 키찰은 우리 남아루의 수호신이야. 천년을 사는 영물이지.”
최공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에는 용이란 짐승이 있어.”
최공은 빈 종이에 용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곳엔 붓과 벼루가 필요 없었다. 기다란 나무 막대기에 검은 심을 박아 넣은 글 쓰는 도구가 있었다. 휴대가 간편하고 사용이 편리했다. 최공이 다 그리자, 이를 본 마야는 깜짝 놀랐다.
“이건 바르샤! 북아루 왕국의 수호신인데?”
“바르샤…?”
“응. 바르샤라고 북아루의 천년을 산다는 짐승이야. 키찰을 만나면 죽기 살기로 싸우지. 두 영물이 싸우면 목숨을 걸어야 해. 엄청난 대결이 벌어지지.”
갑자기 마야가 재밌는 게임을 하자고 뭔가를 가져왔다. 나무판하고 기물들을 가져왔는데 판이 꼭 장기판처럼 생겼다. 기물들은 키찰과 바르샤가 각각 자기 궁성에 위치하고 나머지 기물들이 위치를 잡아 놓여졌다.
조선의 장기와 흡사했다. 자신이 끌려올 때 타고 온 뿔 달린 짐승도 기물에 포함되어 있었다. 최공이 그것을 잡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이름이 뭐지?”
“‘막토르’라고 해. 마차를 끌고 다니지. 무척 온순해. 이것은 바람처럼 빨리 달릴 수 있어. 막토르가 나이가 다 차면 그걸 잡아 고기를 먹지. 이 게임은 ‘헛도도’라고 해.”
마야가 기물들을 움직이며 게임 방식을 설명해 주었다. 최공은 천원화와 승부를 겨룰 정도의 바둑 고수였고, 장원급제를 할 정도로 천재였다. 헛도도를 몇 판 두지도 않아 그녀를 꺾어 버렸다. 그녀는 크게 놀랐다. 최공의 머리가 생각 이상으로 비상하다고 느꼈다.
“마야. 조선에도 이것과 다르지만 재밌는 게임이 있어. ‘바둑’이라고 하지.”
“바둑? 후후… 발음이 참 거시기하네. 호호.”
“발음?”
“응. 아루에서는 남녀의 거시기를 ‘바두루’라고 하거든, 크흠.”
최공은 폭소를 터트렸다. 그녀도 따라 배꼽 빠지게 웃었다.
최공은 스프와 야채로 저녁을 먹고는 밤새 바둑판과 바둑알을 만들었다. 사각 나무판에 19줄을 가로와 세로로 그어서 판을 만들고, 두꺼운 종이를 동그랗게 오려 바둑알로 만들었다. 바둑알은 조개껍질로 만들어야 하지만 임시변통으로 종이로 만든 것이다.
최공은 루마술사 마야와 친해졌다. 그녀는 최공에게 바둑을 배우며 큰 흥미를 느꼈다. 최공은 열성적으로 바둑의 규칙과 전략을 그녀에게 알려주었고, 둘은 종종 함께 바둑을 두며 시간을 보냈다. 마야는 점차 바둑을 좋아하게 됐다.
그녀는 최공이 가르쳐준 바둑에 열중하면서 그의 지혜를 존경하게 되었고, 최공은 그녀의 진심 어린 뜻과 아름다운 웃음에 매료되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최공은 다시 왕 앞으로 끌려갔다. 그의 가슴은 긴장감으로 크게 두근거렸다. 마야는 옆에서 왕과 최공 사이의 대화를 도왔다.
최공과의 대화를 통해 그가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갑자기 남아루 왕국으로 온 평범한 사람인 것을 알게 된 왕은 그가 악마도 느랏도 아님을 알게 됐고 의심이 풀렸다.
마야는 자신감 있게 조선의 신비한 게임인 바둑에 대해 왕에게 말했다. 왕은 이에 큰 호기심을 가졌다.
“이 게임은 어떤 지혜를 담고 있지?”
최공과 마야는 심오한 바둑의 세계를 왕에게 알려주었다.
그 후로 남아루 왕국은 바둑 열풍에 휩싸였다. 바둑의 깊이 있는 전략과 전술에 매료된 사람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바둑은 남아루를 넘어 북아루로도 전파되었다.
최공과 마야는 왕의 주선으로 결혼을 했다. 2년째 되는 해에 마야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 최공을 기쁘게 했다.
왕은 최공에게 귀족의 작위를 주고, 그의 바둑 선생으로 삼아 늘 곁에 두었다.
어느 날 밤, 최공은 밤하늘에 떠 있는 ‘삼수(오리온별자리)’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이 그리웠다. 그는 종이에 글을 썼다.
쌍룡비천 항룡유회(雙龍飛天 亢龍有悔)
‘두 마리 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너무 높이 올라 후회한다.’라는 뜻이었다.
‘…이곳 아루국에서 내 생을 마감하게 될까? 조선이 그립구나…. 혹시 누군가가 나처럼 이곳으로 오게 될지 몰라…. 그를 위해 내 몇 자 적어 놓아야 겠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공간 이동을 했는지 비밀리에 한글로 적었다. 그리고는 마야의 도움을 받아 쓴 바둑책 ‘쌍룡법’의 말미에 붙여 놓았다. 이 책, 쌍룡법은 남아루 왕가의 보물로 왕들에게 대대로 전해졌다.
최공은 천수를 누린 후, 죽었다. 그의 묘지에는 ‘조선에서 온 바둑 고수 최공’이란 비석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