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에 휘둘리지 않는 나 되기
대인관계가 중요한 사회생활을 오래 지속할수록 모순적이게도 마음 닫는 법을 더 자주 배우게 된다. 초반에는 이래서 저래서 활짝 열었던 마음이 누군가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먼저 닫히게 되면 뒤늦게 스스로 삐둘빼둘한 선을 그었다. 어떤 때는 선의 길이가 고르지 못했고, 어느 때는 모양이 고르지 못했다. 그렇게 나만의 선이 그어졌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미운 우리 새끼>라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종국이 정신과 전문의 ‘양재진‘에게 상담을 받는데 작은 원 안에 나를 넣고, 그 원을 다른 반경으로 가족, 친구, 지인의 범위가 생긴다고 한다. 특정 누군가가 더 넓은 범위에서 ‘나’에 가까워질수록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다. 하지만 짧은 인생 경험을 통해서 느낀 바로는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만의 잣대를 가지고 함부로 누군가를 바꾸려 하는 것도 욕심이지 않을까. (어떤 경우는 그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일 수도 있다.)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도움이 되었던 방법은 뭐든 깊게 생각하지 않기다. 예를 들어, 누군가로부터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말을 들었을 경우 ‘아~ 그렇구나’, 혹은 ‘아~ 그랬구나’ 하고 마는 것이다. 이건 작은 규모의 생각을 덮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의견을 풍선이라고 하면 계속 바람을 넣어 여기저기 많은 의견이 떠다니도록 증폭시키는 게 아니라 그대로 두거나 바늘로 찔러서 축소시키는 행위다. 그러니 자연스레 남아있는 풍선(의견)은 중요한 일이 된다. 내 기준에서 축소시키면 안 될 것이라 판단하여 남겨둔 것이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처럼 내 안에 컨트롤할 수 있는 말만 남아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쉽게 정할 수 있고 한눈에 볼 수 있는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은 그저 흘러가는 잡음으로 남겨두자. 그래 봤자 누군가의 10분 정도일 테고 그 이상이라면 당신이 이긴 것이다.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직접 정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정하게 될 것이다.”
-그렉 맥커운, <에센셜 리즘>
많은 것들이 바뀌는 와중에 내 삶의 우선순위를 직접 매기는 것은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책임도 내가 지게 될 테니 타인을 탓할 필요도 없다. 그럼 자연스레 나는 내가 그리는 나만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