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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Oct 24.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17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순례자 확인서를 받고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하다.


2월 24일 월요일 카미노 제14일.

산 마르코스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4.6Km


  평소보다 이른 8시에 길을 나선다. 11시 이전에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있는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해야 그동안 순례자 증명서 Credencial de Peregrino에 받은 스탬프를 근거로 순례자 확인서를 받고 매일 12시에 열리는 순례자를 위한 미사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의 해 뜨는 시각은 늦은 편이어서 8시인데도 어둑하다. 신 씨는 내가 발을 헛디딜까 봐 휴대용 랜턴을 비춰준다. 나는 배낭의 무게 때문에 꼭 필요한 것도 안 가져갔는데, 젊은이들은 이것저것  챙겨 와서 타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젊음이 부럽다. 이런 배려를 받을 수 있는 것이 고맙다.

  어제저녁 고소산에서 바라본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하던 5Km 거리에 있는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 그동안의 카미노 상에 있던 나의 심신을 치유해 주던 경치는 곧 끝나고 문명 세계의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사는 곳처럼 실용을 중시하여 지어진 건물들, 월요일을 느끼게 하는 빠른 속도의 차량들. 이제 카미노 기분은 모두 끝내고 나의 카미노 일정을 마무리하는 일만 남았다.

  시내에서 여러 차례 길을 물어 산티아고 대성당의 베드로 광장에 도착한다. 이미 도착하여 흥분한 사람들 틈에 섞여 우리도 그간의 카미노를 완성하는 기념 촬영을 한다. 광장은 겨울이라 그리 많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례를 끝낸 우리 같은 큰 배낭의 순례자 외에 산티아고에 관광 온 여러 나라의 순례객들이 있다.   

 광장에서 이틀 전 헤어진 리포, 3일 전 헤어진 촐루카, 그리고 독일여성 리사와 에버린도 만난다. 우리는 서로 진한 포옹을 나눈다. 

  대성당에 들어가 그동안의 순례길을 안전하게 지켜준 나의 신께 감사하고 우리나라와는 다른, 그리고 역사가 긴 대성당의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12 사도들의 조각상에 손도 대어 본다.

  다시 광장으로 나와 숙소를 잡으러 가는 사이 그동안 걱정했던, 카미노 상에 만난 사람 중에 나보다 유일하게 연장자였던 프랑스 70대 할아버지를 만난다. 어려운 조건에 나랑 거의 같은 속도로 카미노를 완성하셨구나. 그도 나를 반긴다. C'est va? 프랑스어로 그의 안녕을 묻는다. 나도 무사한지 물어온다. 물론 무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앞으로도 무사히 잘하시고 그리운 가족 품으로 돌아가시길 기원해 준다. 

  옆에서 여러 사람이 자고 있는데도 큰 소리로 새벽에 하느님께 기도하고 순례길을 떠났다고 하던 독일 청년을 광장에서 만나 순례자 사무실 안내를 받는다. 나는 304Km를 인정받았지만 내 친구 리포나 신 씨는 800Km 이상의 순례를 인정받았다. 도보로는 100Km, 자전거로는 200Km 이상을 순례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순례 완성을 인정받고 증명서를 받는다. 시대에 따라 천주교의 힘이나 영욕에 차이가 있긴 했으나, 이 순례완성 증명이 있으면 연옥을 면제받는다고 한다. 나도 죽어서 가게 될 연옥을 면제받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 본다. 


  안녕 산티아고! 내 남은 인생에 언제 여기를 다시 올 수 있으랴?

  안녕 내 친구들!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지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감사하고, 또 자신을 오로지 자연과 신에게 맡기면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내 친구들이여.

  내가 탄 스페인 고속철 Renfe 차창 바깥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린다. 차창으로 비가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행자 리포를 놓치고 아찔했던 일, 바로 전날 일본인 한 명이 조난당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한 채 30Cm 이상 눈 쌓인 레온 산맥을 넘었던 일, 배낭의 무게가 아니었으면 내 한 몸 날아갈 정도의 강한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레온산맥 꼭대기를 지나가던 일,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에 휘청하여 위험했던 일, 난방 꺼진 사립 알베르게에서 모직 내복 입고 두꺼운 겉옷까지 입고 오리털 침낭에 누웠으나 뼛속까지 파고들던 추위, 손을 뻗으면 배낭 속의 온열찜질팩을 꺼내어 따뜻하게 할 수 있었으나 손을 뻗을 힘조차 소진되어 추위에 떨며 잘 수밖에 없었던 일.

  여러 명이 자는 알베르게에서 날마다 일찍 잠이 깨어 내가 있을 작은 공간은 얼마나 절실했던가. 옆에 빈 방이 있으면 더없이 고마웠고 불을 켤 수 있는 주방이나, 리셉션 장소에서 「오늘의 미사」를 읽고 묵상하고, 일기를 쓰는데 볼펜의 잉크가 흘러나오지 않을 정도의 추위와 싸운 일.

  내 카미노 상의 숙소는 산속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인구가 몇 안 되는 마을의 숙소여서 식당이 없는 곳이 많았고, 따라서 한두 끼 정도의 먹을거리나 간단한 식재료는 준비해 다녀야 했는데, 나는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 책자를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알베르게에 같이 묵게 된 카미노 친구들은 주방이 있는 곳에서는 각자의 식재료로 함께 식사를 준비했고, 나처럼 식재료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카미노 친구에게도 기꺼이 함께 먹게 해 주었다.

  처음 만나는 동양인 중년 여성의 동행 제의를 거절하지 않고 나의 카미노 처음 이틀을 안내해 준 프랑스 여인들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젊음의 한가운데를 세계일주로 채워 나가고 있는 대만 청년 리포. 서양에서 만난 동양인. 내가 카미노 상에서 만난 어떤 서양 사람들보다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카미노에 임하는 자세도 누구 못지않게 진지했었다. 그는 영어를 거의 원어민처럼 잘하는 친구여서, 나의 부족한 영어도 넉넉히 이해해 주어서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한자문화권의 일원이어서 영어로 표현이 안 되는 것은 한자 필담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언어 장벽이 있음에도 우리는 열흘 이상을 같이 먹고 같이 자면서, 스페인 산골의 아름다운 길과 스페인 사람들의 친절과 넉넉한 인심에 대한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나의 카미노 중 최고의 경치로 손꼽는 이끼 덮인 돌담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도 크게 감탄했었다. 카미노를 다녀온 후 나는 우리나라의 길을 걸으면서도 머릿속은 그 이끼 덮인 돌담길을 걷고 있는 나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이탈리아 청년 졸루카도 잊을 수 없다. 그는 리포와 달리 즉흥적이고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일 년이 지난 지금도 페이스북 상에서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너의 아름다운 고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말을 전해오는 젊은이다. 마지막 이틀을 남겨 두고 만난 유일한 한국인 미스터 신, 마지막까지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해 주었다. 이런 멋진 젊음들과 여러 날을 오롯이 함께한 기억들, 너무 소중하게 생각된다. 

  나는 목표로 하고 갔던 카미노 여정을 목표한 시간에 완주할 수 있었다. 나이나 계절 조건이 많이 불리했지만 완주를 가능하게 한 것은, 비교적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왔고, 카미노 상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카미노에 집중했다는 것, 그리고 카미노 상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덕분이다.     

  이 모든 것이 이제는 내 인생의 아름다운 한 페이지가 되어 넘어가고 있지만 남은 인생도 이러할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오히려 내 인생은 순탄하게 완성되어 가리라 생각해 본다. 내 인생은 내가 주관한다고 믿었던 나의 무지와 교만에 종지부를 찍는 여행이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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