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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Sep 06. 2024

아름다운 그 이름, 평교사

 "선생님, 오늘도 책 읽어 주실 거예요?" 까만 눈을 반짝이며 애원하듯 바라보고 있는 학생은 민규다. 민규는 1학기 중간에 지방에서 전학 온 학생으로 성적은 상위권이다.

 수업 시작할 때 가끔 짧고 감동적인 글을 읽어 준다. 잔소리를 한두 마디하고 시작하기는 하나, 대체로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해서 듣는다. 그리고 감동을 받는 아이들이 많다. 사람에게 특히 가치관이 형성되어 가는 청소년기에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다시 말해 무엇하랴. 다행히 독서는 내가 가르치는 국어 교과의 일부분이고 또 독서 관련 수행 평가도 필요하여 독서를 하라고 하지만, 학생들이 책을 읽게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도서관에 가는 일도 귀찮아하여 학급에 간단한 서가를 비치해 놓고 책을 읽게도 해 보았으나 그것도 성과가 크지 않았다. 현재의 학교에 와서는 과감하게 모든 학생의 책상에 책을 한두 권 올려놓았다. 책은 표지가 예쁘고 내용이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으로. 교과교실제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전의 어떤 방법보다 성공적이었다. 이 방법에는 치밀한 작전이 필요했다. 수업 시작 전에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독서의 세계로 유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쉬워야 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짧아야 하고, 감동의 물결이 빨리 와 닿는 책을 골라야 했다. 이 작전 때문에 나는 어린 시절 읽지 못하였던 동화를 풍성하게 읽는 재미를 덤으로 얻기도 했다.

 제목이나 책표지 그림에 현혹된 아이들이 도서관까지 가거나 학급문고 비치대에 놓여 있는 책을 고르는 노력이 없어도 되는, 자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책을 집어 들고 읽는 일은, 엄마가 식탁 위에 차려 준 밥을 먹는 일만큼 쉬운 일이었다. 

 일단 교실에 들어와 책상에 앉으면, 교과서 보기 전에 그 책을 본다. 재미있다. 그 다음은 책 읽으라는 말 안 해도 스스로 읽는다. (수업이 시작되어도 몇은 몰래 그 책에 빠져있다. 모르는 척 해 주기도 하다가 가끔은 제재를 한다. 이들에게 제일 무서운 벌은 한 달간 독서 금지!) 그리 두꺼운 책이 아니므로 특별히 시간을 내지 않아도 수업 시간 전 잠깐씩만 읽어도 일주일이면 끝을 보는 책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책상 위에 책을 두어 독서를 하게 하니, 많은 학생이 일주일에 한 권 정도의 동화책을 읽고, 또 ‘책은 재미있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나의 제 일의 독서교육 목표이다. 책은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번 한 학생은 이후 스스로 독서를 해 나갈 것이므로. 

 학생들이 자기 책상 위의 책을 읽으면서 혹은 읽은 후 나와 찐한 눈빛을 교환한다. 내가 그 책에서 받았던 감동을 그도 받고 있음을 서로 나눈 몇 마디의 말로 확인한다. 이러한 관계를 맺은 그와 나는 이제 명목만의 사제지간이 아니다. 감동이라는 자양분을 서로 공유한 사이가 되고, 교실 밖에서 만나도 특별한 사이가 된다. 이런 특별한 관계의 학생이 점점 늘어날 때의 기분은 몽롱할 정도이다.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기쁨보다 훨씬 고차원적이라고 나는 장담한다. 이럴 때 나는 그동안의 육체적 피로, 업무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날아감을 느낀다.  


 이런 고백이 사실일까? 놀라지 마시라. 사실이다. “선생님,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을 것은 처음이에요.” 이 고백을 한 학생은 중학교 3학년이었다. 온 나라가 떠들썩거릴 정도로 방방곡곡 도서관을 짓고, 연예인을 불러 독서행사를 하고, 천문학적 숫자의 독서진흥 예산을 쏟아 부어도 가정과 사회에서 소외된 한 여린 학생에게는 모두 남의 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내가 하는 조그마한 이 프로젝트에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 학생이 처음 읽은 이 한 권의 동화가 그의 자존감을 높이고 사회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도한다.         

 교직의 꽃은 무엇일까? 담임활동? 교장? 교과수업? 모두 가능한 말이다. 한때 교장을 꿈꾸기도 했다. 

 발령 받은 첫 해, 평가에서 최하점수인 50점대를 받았다. 엄혹한 군사정권 하였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북한의 서울 수몰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평화의 댐 성금 3,000원을 내라는 지시를 거부한 당시 20대 초임 발령자 대여섯 명이 모두. 이후 사회민주화 운동과 맞물린 교육민주화 운동의 언저리를 맴돌던 우리는 시험 문제까지 학교 측의 검열에 걸려 수정당하고, 옷 입는 것까지 교사의 품위 운운하는 선배 교사들에게 지적당하는 시절의 교사였다. 

 1996년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학교마다 설치된 학교운영위원회로 학교예산이 평교사나 학부모에게 공개되면서 학교 현장은 민주화의 첫발을 내디뎠다. 2년 임기에 한 학교에서 중임이 가능하여 나는 1기부터 5기까지 내리 학교운영위원 활동을 하였다. 학교 운영 전반에 관한 심의 권한을 가진 학교 운영 위원으로서의 교사 생활은, 교장으로부터 학교에 치맛바람 날리는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긴장하게 하는 기분 좋게 부담스런 생활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근무하는 학교마다 이것저것 내 손길이 가지 않은 것이 없었고 나는 교장의 마인드로 평교사 생활을 하였다. 학교안전공제회 회비를 납부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폐휴지 가져오게 한 제도를 없앤 일부터 여중으로 있던 학교가 공학으로 바뀌면서 교정의 신사임당 동상을 뭘로 바꾸면 좋을까를 논의했던 일, 교과서를 선정하는 일, 초빙교장을 선택하는 일, 위탁급식 업체를 선정하는 일 등, 정말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보람있게 생각하는 일은, 당시 1,000명 가까운 학생 수의 큰 학교임에도 C 위탁 업체의 횡포로 학생들이 제대로 된 급식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 교육청 관내에서 가장 먼저 급식 체제를 직영으로 전환한 일이다. 곡류, 육류, 김치, 떡류, 가공식품 등의 분야로 나누어 업체 선정 공고를 내고 서류를 받으니 거의 캐비넷 하나가 가득 찰 정도로 많았다. 학부모 운영위원과 제비를 뽑아 업체 실사를 나가고, 영양사 모집 공고를 내었더니 30 여명이 몰려 왔던 일. 이러한 일을 모두 해 내고 나니 세상에 어려운 일이 없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일도 많고 선배 교사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일도 많았으나, 분명한 것은 그 젊은 날 동지들과 교육에의 열정을 불태웠다는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전진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육에서의 무게 중심이 업무가 아닌 학생에 있는 나 같은 교사에게도, 승진의 기회는 열리고 있었다. 교장과 교감 다음으로 중요하다 싶을 자리가 주어졌고, 인정도 받았고 성취감도 맛보았다. 한발만 더 들어갔더라면 나도 지금쯤 교장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한 발짝을 들여 놓는 일, 내 살아온 날들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되면서 내 교직의 궤도는 원래의 길로 다시 돌아왔다.


 한 책상 한 책 두기 방식에서, 네 개의 책상을 한 모둠으로 만들어 10권 가량의 책 바구니를 올려 두는 방식으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독서량이나 수준이 다른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하여. 가끔은 내가 직접 읽어 준다. 너무 좋은 글 혹은 지금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하다 싶은 글이 발견되면. 소규모 학교여서 한 학년을 다 가르치므로 나에게 배운 학생은 내가 읽어준 책을 모두 귀로 들었다. 학년이 올라가서 나를 만나면 잊지 않는 말 “고래가 보고 싶니?” 내가 학생들을 만나서 처음 읽어 준 동화 제목이다. 

   민규를 비롯한 몇 명은 이렇게 내가 직접 읽어 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나에게 책 읽어 달라고 조르는 학생을 좋아한다. 이런 학생이 많은 학급을 좋아한다. 이런 시간을 사랑한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내 생활이 너무 귀하게 생각된다. 오후 5시, 학교 뒷산의 쓸쓸한 나목을 바라보며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아직 열매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많은 학생들에게 알찬 열매가 맺힐 따뜻한 가슴을 마련해 주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교직 30년차, 50대 후반의 내 인생은 이러한 견결한 아름다움이 있었노라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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