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반하다. 2화

고산자(박범신 지음)

by 망초

지도 그리는 일에 미쳐서 열 살도 안된 어린 딸을 혼자 두고 몇 년씩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 사람이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산을 산으로, 강을 강으로, 마을을 마을로 오로지 걸음의 수로만 측량하여 정확한 지도를 만들었다 하여 관가에 끌려가 초주검이 되도록 고문을 당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여염집을 고쳐 주거나 선박을 수리해 주거나 넉넉한 노잣돈까지 챙겨 주는 사찰을 보수해 주는 일로 전국 답사의 경비를 마련하던 차에, 어느 깊은 암자 수행 중인 비구니와의 인연이 한 점 혈육을 떨구게 되고, 이십여 년이 지나서 다시 찾아낸 그 비구니 혜련은 천일기도 중이라고 얼굴 한번 보여 주지 않은 채 '그때 그 스님은 여기 없다'는 말만 하여, 무력하게 돌아선 사람의 이야기, 《고산자 》.


불과 160여 년 전에 완성된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김정호의 호) 김정호(1804?-1866?) 불러내어 가상 인터뷰를 진행해 본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채 200년도 안 되었는데, 선생님의 인생과 맞바꾼 대동여지도보다 훨씬 정확한 지도를 지금은 전 세계인이 지니고 다닙니다.

몸도 성치 않은 어린 딸 순실이를 옆집 아낙에게 맡기면서까지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집을 떠나 몇 년씩이나 동가식서가숙하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요?


나는 어렸을 적부터 땅의 형상과 물의 굽이굽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어디든 가고 싶었다.

바람은 언제나 시도 때도 없이 불었다.

처음에 그는 길을 따라다녔고, 다음엔 물을 따라다녔고, 일고여덟 살이 넘어서는 주로 산을 따라다녔다. 따라갈 수만 있다면 새가 되어 바람조차 따라가고 싶었다.(박범신 지음, 고산자 62, 63쪽)


엉터리 지도 때문에 홍경래의 난(1811-1812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지원대가 모두 시신으로 발견된 건 4월 끝물이었다. 예상을 뒤엎고 그들의 시신은 곡산 방면 고달산 상봉 능선 아래 비탈에서 발견됐다. 추위를 면하려 했는지 두세 사람이 꼭 안고 죽어 있었고, 돌틈에서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죽은 사람도 있었다. …… 그의 아버지는 앞서 길을 뚫어보려 했던 것인지 상봉 턱밑의 비탈길에 거꾸로 처박혀 있었다. …… 아버지의 품속에선 관아에 있는 군현도를 급히 베낀 필사본 지도 한 장이 나왔다. 그러나 그 지도는 한 마디로 말해 엉터리 지도였다.

한참 먼 학봉산과 고달산이 앞뒤로 붙어 있었고, 물길도 따로 없었으며, 물길처럼 이어져 있어야 할 산이 뚝딱뚝딱, 흐름 없이 각놀고 있었다. …… 아니 지도가 차라리 없었다면, 오히려 그렇게 무모하게 죽음의 산속으로 들어가 박혔을 리 만무했다.(위의 책 59, 60, 61쪽)



대동여지도를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귀한 보물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대동여지도 이전에 있던 지도와의 차이점은 무엇이고 지도 제작에 도움을 준 사람이 있는지요?


분첩절첩식이라고 하는데 필요에 따라 나누거나 합칠 수 있다는 점, 휴대할 수 있다는 점, 목판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인쇄할 수 있게 했다는 점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지요.




정호 너는 땅 끝에서 땅 끝까지, 땅의 지도를 그리고, 나는 하늘 끝에서 하늘 끝까지, 하늘의 지도를 그리는 거야. 그래서 합치면 우주만물의 지도가 되는 거지.

그렇게, 총명하고 꿈이 깊은 한기(최한기 1803년-1877년)였다.(위의 책 57쪽)


위당(신헌 1810년-1884년)이 먼저 손수 술을 따른다.

무주의 유배지로 마지막 찾아가 만난 것이 무오년이었으니까 위당의 술을 받는 게 벌써 여러 해 만의 일이다. 동여도를 내놓은 그 이듬해였을 것이다. 술을 좋아하는 위당을 위해 진달래주 한 동이를 메고 초옥에 찾아들었을 때, 뒷짐을 지고 마당가에 서서 천지 가득 피어 있는 봄꽃들을 처연히 바라보고 있던 위당의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무인의 신분이면서도 문인 못지않게 인문에도 깊은 식견을 가졌던 위당으로서는 치세의 꿈을 다 접고 오랫동안 벽지에 유배되어 있던 시절이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가 청구도, 동여도를 완성시키고 마침내 필생의 꿈이었던 대동여지도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위당의 도움이 제일 컸던 게 사실이다. 위당이 없었다면 비변사 깊은 서고에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는 수많은 지도들을 어찌 볼 수가 있었겠는가.(위의 책 185쪽)


낯설지 않은 보살에게서 순실이를 넘겨받는 장면, 죽음의 문턱까지 가 있는 천주교도 순실이를 꺼내오는 장면도 인상적이지만, 비구니의 몸으로 내 아이 순실이를 낳은 혜련 스님을 물어물어 남해안 어느 암자에서 찾아내었으나 백팔배 하는 뒷모습만 보고 돌아서야 했던 장면은 독자들의 숨도 멎게 합니다. 혜련 스님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인가요?


나로 인해 스님이 받았을 고통이란 죽는 일보다 가볍지 않았을 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혜련 스님은 지금 천일기도 중입니다.

주지스님의 말소리가 아직 귓가에 얼쩡거린다. 천일 동안 이 석굴에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것인지, 천일기도 중 며칠이 지나갔는지, 그런 건 말하지 않아 알 수 없다. 굳은 사방이 암석으로 둘러싸여 정결하고 오붓하다.

"…… 스님!"

한참 만에 그가 참지 못하고 먼저 운을 뗀다.

……

이곳이 남해도 상령 기슭이던가.

한편에선 지나온 삼천포 앞바다가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망망대해 남해가 눈앞에 드는 걸 보건대, 미조가 가까운 곳이 틀림없다. 새삼 돌아온 굽잇길들이 두서없이 떠오르는데 스님은 여전히 말이 없다. 기다리다 못해 차츰 부아가 나는 느낌이다. 얼마나 먼 곳을 돌아 이곳에 왔는지 알면, 하다못해 돌아앉기라도 해야 예가 아닌가.

그의 목소리가 좀 샐쭉해진다.

"혜련 스님, 저 …… 고산자 김정호외다!"

"아주 ……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좀 돌아보세요. 황해 고달산에서 해주를 지나 …… 태안을 거쳤다가 오는 길입니다. 혜련 스님도 다 아시는 …… 바로 그 길입지요. 고달산 상봉엔 …… 예전처럼 눈이 쌓여 있었어요. "

그 대목에서 그는 갑자기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만다.

……

"순실이는 다 컸습니다."

……

"순실이를 망월암 공양보살께서 약현골 내 집에 데려올 때 …… 고갯마루에 숨어 그 모든 걸 스님께서 보고 있었다는 것도 이제 압니다. 생각하면 참 독한 분이세요. 혜련 스님은……"

"…… 처사님!"

혜련 스님이 이윽고 가만히 침묵의 빗장을 푼다.

"처사님께서 아시는 혜련 스님은 …… 이미 …… 이곳에 없습니다."

……

"돌아앉아 얼굴이라도……"

"제겐 얼굴이 없습니다. 만사 …… 앞과 뒤가 하나인 것을 …… 그리 먼 길을 다니시고도 모르시겠습니까?"

"혜련 스님!"

"……지삼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지부 시아본사……"

갑자기 혜련 스님이 소리를 높여 염불을 외기 시작한다.

……

방금 막 석굴을 나섰는데도 석굴 안에서의 모든 게 꿈인 듯하다.(위의 책 218-223쪽)


<장백산(백두산) 근처 대동여지도 목판 원본의 모습으로 추정됨-위 책을 찍은 것>

이미지 출처 ㅡ 네이버


2025. 12. 21.

작가의 이전글이 책에 반하다.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