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노래(김훈 지음)
- 나으리, 좀 전에 적의 협선 다섯 척이 진린(임진왜란 때 파견된 명나라의 도독, 장수)의 해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적선들은 동쪽 연안 수로에 붙어서 다가왔습니다. 명의 수군은 교전하지 않았습니다.
진린과 고니시 유카나가(일본 장수) 사이에 내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 알았다. 위치로 돌아가라.
척후장(적의 상황을 살피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돌아갔다. 동틀 무렵에 또 한 척의 척후선이 다가왔다. 척후장은 오지 않고 수졸을 보냈다.
- 나으리, 명군 해역 안으로 들어갔던 적선들이 다시 적의 기지로 돌아갔습니다.
격군(사공)들을 깨워 대장선을 진린의 해역 안으로 몰아갔다. 진린은 붉고 푸른 깃발로 뒤덮인 사령선 누대 안에 앉아 있었다.
- 적의 밀사들이 장군께 다녀간 줄 아오만……
진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조선 수군이 천병을 염탐하는가?
진린의 부관들이 내 쪽으로 접근했다.
- 부관들을 물리쳐 주시오.
진린이 한참 후에 부관들을 물리쳤다.
- 적선들이 장군께 다녀갔다고 들었소이다.
- 그렇소. 고니시가 사람을 보내왔소. 적들은 전쟁을 포기했소. 통제공(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부르는 말), 이미 끝난 전쟁이오. 고니시가 나에게 선물로 수급(首級. 적군의 목 또는 머리) 이천 개를 주겠다고 합디다. 내가 조선에 와서 약간의 공을 취한들 조선에 누 될 일은 없지 않소?
- 장군 막하에 많은 수급이 쌓이기를 바라오. 저도 장군께 수급을 몰아드리리다. 그래, 적들이 수급을 실어 왔소?
- 아니요, 남해도에 쌓아 놓고 있다고 합디다. 남해도에 연락선을 보내 실어 올 터이니, 배를 한 척 통과시켜 달라고 했소.
……이 자를 여기서 베어야 하나, 허리에 찬 칼이 천 근의 무게로 늘어졌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임진년(1592년)에 총 맞은 어깻죽지가 쑤셨다. 정유년(1597년)에 형장에 으스러지던 아랫도리가 결려왔다. 나는 진린의 선실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서 이 자를 베어버리면, 아마도 사직은 끝장이 나고, 전쟁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었다.(칼의 노래 310-311쪽)
이순신 장군이 적의 총탄에 스러지던 1598년 노량해전에서의 일이다. ‘적의 전체를 내 전방에 두기 위하여 선택한 노량 바다, 적보다 먼저 들어가서 적 퇴로의 진행 방향에서 포진하기 위해 선택한 노량’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대접전을 벌이는 중에, 우리 편이어야 할 명나라의 장수와 왜군의 밀사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
명나라의 군대는 이순신 장군의 시점에서 본 이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역사적 기록에서도 우리나라 백성이나 군대, 조정, 심지어 임금을 업수이여기는 일이 많았다.
당진에 도착한 수군이 남해로 오지 않고,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서울로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명의 수군은 동작나루까지 마중 나온 조선 임금으로부터 통곡을 앞세운 애끓는 환영을 받았다. 그때 동작나루에서 명 수군 총사령관 진린은 조선의 하급 관리 한 명을 붙잡아 목에 노끈을 묶어서 끌고 다녔다. 피투성이가 된 조선 관리는 네 굽으로 기면서 개처럼 끌려다녔다. 임금은 외면했다. 조선 중신들이 역관을 보내 만류했으나 진린은 듣지 않았다. 그 하급 관리는 마포나루에 파견된 영접 실무자였는데, 진린이 나루에서 뭍으로 오를 때 신발이 물에 젖었다는 것이었다.
영접 행사가 끝나고 다시 한강을 따라 내려온 명의 수군은 강화도로 갔다. 그해 봄이 가고 여름이 다 가도록 명의 수군은 강화에서 나오지 않았다.(위의 책 166쪽)
무술년(1598년) 여름에 진린의 함대 오백 척은 강화를 떠났다. 강화를 떠난 진린의 함대는 곧바로 남해안으로 내려오지 않았다. 진린의 함대는 한강을 거슬러서 동작나루까지 올라갔다. ……
그날 비가 내렸다. 동작나루에서 임금은 울먹이며 진린을 맞이했다. 임금이 진린의 손을 잡을 때, 함대는 대포를 쏘고 폭죽을 터뜨렸다. 바람이 불어, 비에 젖은 곤룡포가 임금의 허벅지에 감겼다. 임금을 맞을 때 진린은 칼을 벗지 않았고 근위 무사들을 물리치지 않았다.
……
장맛비가 계속 내렸다. 진린의 군사는 한강에 배를 대놓고 배 안에서 사흘을 먹고 마셨다. 조선 조정은 술과 안주를 날랐고 조정 대신들이 지휘선으로 올라가 명의 장수들을 접대했다. 한강 연안 고을 관기들이 배에 올라가 술을 따랐고 풍악을 울렸다.
……
나는 수영 외항에서 진린을 맞았다. 함대 오백 척은 섬굽이 사이의 물목을 가득 메우고 다가왔다. 진린은 경호 무사 스무 명, 전속 요리사 일곱 명, 행정관 다섯 명, 군의관 세 명, 통역관 세 명, 무관 다섯 명, 시종 열 명을 직속으로 거느리고 있었다.
진린은 키가 크고 뚱뚱했다. 손등은 털로 뒤덮였고 입에서는 지독한 마늘 냄새가 났다.
……
나는 진린에게 물었다.
- 군량은 싣고 오셨소?
진린은 술잔을 상 위로 때려 붙였다.
- 배들이 고프신 모양이군. 그래, 천병을 부양할 양식도 없으시오?
- 조선 수군은 조정의 군수 지원을 받지 않는 군대요.
진린은 껄껄 웃었다.
- 고생들이 많으셨겠소.(위의 책 272-273쪽)
조선의 임금이 있는 자리에서 조선의 관리를 개처럼 끌고 다니고, 조선의 임금은 이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치욕스러움! 함께 전쟁을 수행할 동맹군이기보다 점령군의 행세를 취하는 명군과 그 우두머리 진린을 앞에 둔 이순신 장군의 분노!
소설의 여러 곳에서 선조 임금은 울고 또 징징댄다.
섬과 섬 사이에 적의 복병이 숨어 있는지를 살핀 후에야 가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삼도의 수군을 지휘하여 시급히 적을 무찌르라. 임금은 멀리서 통곡한다.
너는 각 포구의 병선을 지휘하여 즉각 경상 해안 쪽의 적을 없애라. 나라의 치욕을 어찌하랴 어찌하랴.
부산 동래 연안에 왜선이 수없이 정박해 있을 뿐 아니라, 자꾸만 적의 군세가 늘어난다 하니, 남쪽 바다의 장수는 무얼 하고 있느냐. 너는 수군을 이끌고 물길로 나아가 적의 증원 병력을 부수어라. 바다에서 잡아야 상륙하지 못할 것 아니냐. 가을이 깊어가니 시름 또한 깊다. 또 한 해를 이대로 넘기려느냐.
서울에 있는 군사들에게 조총을 훈련시키고 있으나, 총이 모자라고 또 망가진 것이 많아서 군사들은 다만 막대기를 들고 총 쏘는 시늉만 하고 있다.
……
너는 빼앗은 왜적의 조총을 많이 쌓아두고 있다 하니 그중 성한 것들을 골라서 서울로 보내라.
전란은 언제 끝나려느냐. 이제 조정의 가난이 물로 씻은 듯하여 종이가 모자라 문서와 전적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
……
너는 속히 종이를 장만해서 조정으로 보내라. 이것이 어찌 임금인 내가 할 소리겠느냐. 임금의 민망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너는 마땅히 헤아리라.
적이 오지 않았고 내가 적에게 가지 않았던 기간에 임금이 남해안 수영으로 내려보낸 유지는 대체로 이러했다. 임금은 멀리서 보채었고, 그 보챔으로써 전쟁에 참가하고 있었다.(위의 책 219-220쪽)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유언과 함께 팔다리가 막연해지는 것으로 소설은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전공에 대한 욕심 때문에 명나라 수군 장수 진린이 왜적의 적장 고니시와 내통하는 일이 없었다면, 그래서 수군과 철수하는 육군 병력 전체를 상대로 한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지 않았다면, 실제 이순신 장군도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치욕을 피할 길 없었을 것이고, 소설의 결말도 지금처럼 완벽하지 않았을 것이다.
- 나으리, 총알은 깊지 않사옵니다.
나는 안다. 총알은 깊다. 총알은 임진년의 총알보다 훨씬 더 깊이, 제 자리를 찾아서 박혀 있었다. 오랜만에 갑옷을 벗은 몸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서늘함은 눈물겨웠다. 팔다리가 내 마음에서 멀어졌다. 몸은 희미했고 몸은 멀었고, 몸은 통제되지 않았다.
- 북을……계속……울려라. 관음포……멀었느냐?
……
나는 내 시체를 이 쓰레기의 바다에 던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졸음이 입을 막아 입은 열리지 않았다. 나는 내 자연사에 안도했다. 바람결에 화약 연기 냄새가 끼쳐왔다.
……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 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 이미지 출처 -
중앙 SUNDAY 2024.05.30.
블로그 곰코의 자유공간 2024.11.25.
KBS 역사스페셜_힌신, 이순신의 바다(2025.12.21)
영화_노량, 죽음의 바다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