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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아의 방주 Apr 11. 2023

나는 어떻게 한국어 강사가 되었나

한국어 강사를 시작하게 되었던 이야기


2021년, 친구의 권유로 나의 첫 직업이었던 한국어 강사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수업이었고, 저녁에만 수업을 진행하면 되었기에 처음 시작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전에 일하던 경험이 있고, 강의 자료도 내가 따로 만들 필요 없이 만들어진 자료로만 수업을 하면 되었기에 큰 부담없이 시작을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게 된 학생들은 최대 6명의 소규모 그룹 수업이었다. 한국어 강사의 시급은 학생 수만큼 받는 것이 아닌, 시간당 급여로 받는 것이었기에 전문직이라고 생각하면 높지 않았고, 최저임금을 생각하면 높았으나 주 5~6시간도 안되는 시간을 가르치는 것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소득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애초에 아예 한국어 실력이 제로 베이스인 학생들에게 한글 발음부터 하나씩 가르쳤기에 나의 가르치는 실력 = 학생들의 실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책임감이 커지게 되었다.

게임데이로 진행했던 사진. 이때 나는 말랐다... 그립네 


당시 낮에는 목수 자격증을 따서 아빠와 인테리어 현장 일들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의 사업을 내가 이어서 하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빠와 일을 하면 할수록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그로 인해 항암치료 부작용이었던 통증이 다시 생기기도 했고, 결국엔 핸드폰에 아빠 번호만 떠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상황을 보며 '더이상 아빠와 같이 하다간 내 몸이 남아나질 않겠다' 라는 생각으로 1년간 일한 후 아빠와의 이별을 선언하였다. 당장에 그만두더라도 적게나마 수입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하려고 하였으나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 책임감을 더 느끼게 되기도 하고, 링크드인에 올려둔 프로필을 통해 다른 수업들도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처음 속했던 곳에서는 영어로 한국어를 가르쳤기에, 어느정도 경험만 쌓이면 가르치는데 크게 문제되는 것이 없었다. 아울러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학생들도 한국어 실력이 향상됨에 따라 한국어로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고, 가르치는데 어느정도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감도 생겼으나, 나는 '자격증'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어 교원 자격증'은 전혀 필요가 없는 자격증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내가 이제 전문적인 한국어 강사로써 일을 하고 싶다면 남들 다 있는 한국어 자격증 정도는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점은행제를 통해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1년 3개월정도 소요)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60점만 넘으면 되었기에 출석과 토론(댓글달기)만 모두 하고 과제는 제출하지 않아도 모든 과목을 패스할 수 있었다. 강의의 경우도 학문적인 내용이 많았기에 (교수법이라던지, 역사, 문화 등) 실제적인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은 없었기에 그냥 시수만 채우곤 했었다. 그럼에도 마지막에 한 달간의 실습과정이 있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교안도 써보고, 현재 일하고 있는 영어로 학습하고 있는 한국어 PPT 외에 순수 한국어로만 만들어서 가르치는 것도 제법 새로웠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한국어를 가르쳐보신 경험이 없었기에 짧은 소규모 미팅에서 도움을 드리는 것도 꽤 보람찼다.



이렇게 한국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동시에 여러 군데의 온라인 한국어 어학원들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링크드인의 프로필을 업로드 하고, Upwork 등 프리랜서 사이트들에 프로필을 등록하면서 한국어 강사 일자리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영어로 계속 한국어를 가르치다보니 오히려 영어가 1언어였던 싱가포르나 나이지리아 때보다 영어 실력이 향상되었기에 이전보다 더 자신있는 태도로 면접들을 보게 되었고, 덕분에 (지금은 다 정리했으나) 7군데 정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나의 링크드인 프로필.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대가 참 애매하다. 한국어 강사들의 시급(2만원~5만원 사이, 각자 재량)이 낮지 않기에 어느정도 구매력이 있는 유럽, 북미가 메인이 되거나 나의 경우엔 호주 정도가 주요 타겟층이 되는데, 시간대 때문에 힘든 경우가 많다. 나도 여느 회사원과 다름없이 9-6로 일하는 경우가 제일 흔했는데, 보통 직장인들의 경우 퇴근 시간 이후에 수업을 진행했는데,


유럽의 퇴근 거의 밤 11시 이후라 사실상 포기였고 (주말에 주로 진행했다)

북미의 퇴근 시간은 한국의 새벽시간이었고,

호주의 퇴근 시간이 그나마 5시~7시 정도,

그리고 나의 메인 수업인 말레이시아의 경우 8시~11시


수업시간이 있었기에 굉장히 들쭉날쭉한 삶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1~2시간 수업을 진행하고 숙제제를 하거나 컨텐츠를 만들었고, 낮 시간 동안에는 수입과 관련된 일들은 하지 못하다가 다시 오후 5시부터 10시~11시까지 중간 중간 1~2시간의 쉬는시간과 함께 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매일 이렇게 일한 것은 아니었고, 1:1 수업 등은 일정 이슈가 너무 많았기에 굉장히 불규칙하게 수업이 진행되었고, 또 남는 시간에는 여느 프리랜서들과 비슷하게 새로운 일을 따오려고 계속 일을 찾으며 생활을 했다. 그 덕분에 처음 월 30만원으로 시작했던 나의 수입은 최고로 찍었을 때 월 400까지 받기도 했으나 평균적으로는 150~250 사이의 편차가 큰 들쭉 날쭉한 수입이었기에 불안한 삶을 유지하였다. 더군다나 내가 가르치는 곳은 대학교 어학당이 아니었기에 (물론 여기도 엄청나게 불안하지만) 월단위로 결제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다음 달에 학습을 그만두게 되면 다른 반과 합쳐지면서 수업이 없어지거나 아예 통째로 사라지게 되면 수입이 뚝 떨어졌기에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게 쉽지 않았다.



특히 시간이 지나면서 가르치는데 능숙해지고, 어떤 문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되는지 이제 점점 깨닫게 되며 강의 실력이 좋아지고는 있었으나, 막상 내가 받는 수입은 다르지 않았다. 학생들이야 나를 보고 수업료를 지불하는 것이 아닌, 내가 속해있는 언어센터에 지불을 하는 것이고, 내가 수업을 얼마나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학생들이 알지 센터가 알아주는 것이 아니기에 수업을 잘한다고 학생들을 더 받거나 수입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었고, 학생 수만큼 비례해서 수업료를 받는 것도 아니기에 수업 시수를 늘리지 않는한 수입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내가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준비해서 수업을 진행하고, 그에 대해 학생들이 만족한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은 없구나' 라는 생각

+

지금은 내가 아직 30대 초반의 젊고 재미있는 선생님이라는 무기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나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여전히 학생들에게 지금처럼 웃으며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함

+

사실상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중계만 하며 수수료를 받아가는 언어센터들을 보는 나의 마음


이 합해져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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